팀장으로 산다는 것 #14
(영화의 일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에 가볍게 볼거리만 제공할 줄 알았는데, 여러 가지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담배 제조업계를 대변하는 가상 조직, '담배연구아카데미'의 대변인 닉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담배 유해성에 대한 대중들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교묘하게 프레임을 바꾸는데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활약 중 결정적인 한 장면은 '조안'이라는 토크쇼에 출연한 장면입니다. 흡연의 폐해라는 주제에 나온 패널들은 15살 청소년 폐암 환자(윌리거), 전국폐건강협회장, 청소년흡연반대부모회장, 흡연의 유해성을 입증하려는 의원실 보좌관 등으로 그에겐 100% 적대적인 환경입니다. 방청객도 야유를 보내며,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토크쇼가 시작하려는 데, 그가 선제적으로 입을 엽니다.
닉 : "윌리거(청소년 폐암 환자)가 죽으면 우리는 고객을 잃는 것이죠. 저는 윌리거가 살아서 흡연을 계속하길 희망합니다."
보좌관 :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닉 : "잠시만요, 한 가지만 설명을 드릴께요. 론 구디 씨(보좌관)는 윌리거가 죽길 바랍니다. 그래야 의회 예산을 딸 수 있거든요. 당신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합니다."
보좌관 : "뭐라고요?"
닉 : "사실은요, 우리는 5천만 불 상당의 청소년 금연 캠페인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동의하듯이 우리나라 청소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요." (Because I think that we all agree that there is nothing more important than America's children)
그는 '돈'을 수단 삼아 상대를 비열한 존재로, 담배회사는 좋은 일을 하는 존재로 프레임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귀중하다고 여기는 명제에 자신들을 엮었죠. 그는 청중들로부터 환호까지 받게 됩니다.
[팀장에게 힘을]
우리는 일을 하면서 대부분 녹록지 않은 상황과 맞닥뜨립니다. 열심히 준비한대도, 사전에 검토한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요.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방법의 하나가 '구도'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절대 명제에 관련됐음을 설득할 수 있다면 자기 일의 정당성을 자연스레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 흡연 예방 캠페인을 담배회사가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같은 얘기라고 하실 수 있는데요, 2006년에 다국적 담배회사 중 하나가 실제로 국내에서 벌인 캠페인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의 사업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캠페인에 나섰을까요? 진짜 그들은 청소년들이 금연하길 원하는 걸까요?
저는 이런 캠페인 자체가 청소년들의, 흡연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고 봅니다. 청소년 시기부터 흡연을 시작한 사람이 더 오래 흡연을 한다는 것을 이미 담배회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니, 이상한(?) 캠페인을 하는 겁니다. '담배는 생각하지마'라고 하면 담배 생각이 더 나게 마련이니까요.
전략을 짤 때, 토론을 준비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해볼까 고민하지만, 프레임 자체를 바꿀 수 있다면 아주 쉽게(?) 세세한 것들은 뒷따라 해소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팀장님들께 이 영화를 추천합니다.
해고대행서비스회사의 베테랑 직원, 라이언(조지 클루니 분)은 미국 국내 출장을 연중 270일 이상 다닙니다. 그는 고객사를 대신해서 해고를 통보하고, 퇴직 후 지원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요. 퇴사자들로부터 욕을 먹고, 상해 위협도 받지만, 그는 사실 비행기 출장을 즐깁니다. 천 만 마일리지를 모아 항공사 플래티넘 카드를 얻는걸 고대합니다. 그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 갑니다. 남아있던 가족인 동생, 누나와의 교류도 거의 없습니다.
이런 그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신입 사원 나탈리가 새로운 온라인 퇴사 통보 시스템을 제안했기 때문입니다. 사장은 시간과 비용을 아껴줄 이 시스템에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는 출장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될 수 있는 상황. 그는 나탈리와 동행 출장을 떠나게 됩니다. 해고 통보를 하던 자리에서 분노를 드러내던 해고자에게 라이언이 한 마디를 던집니다.
"꿈을 포기한 대가로 받은 첫 월급이 얼마였죠?" (How much did they first pay you to give up on your dreams?)
알고 보니, 그는 대학에서 전공했던 프랑스 요리를 포기하고 지금의 직장에서 일을 했던 겁니다. 그는 퇴직은 끝이 아니라 꿈을 찾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해 줍니다. 해고 통보란 고객사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을 대신 하는 것이라는, 건조한 기능 위주의 나탈리의 생각에 결국은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팀장에게 힘을]
꿈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합니다만, 바쁘게 살다보면 꿈을 잊고 사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멍할 때가 되는 것이죠. 그럴 때는 반드시 애초에 어디로 향하기로 했었는지를 상기해야 합니다. '내가 처음 팀장이 됐을 때, 어떤 팀장이 되고자 했었는지', '내가 처음 이 팀에 왔을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
팀장을 위한 책, 조언, 기사들은 대부분 팀장이 무얼(What) 해야 하고, 어떻게(How) 해야 할지에 대한 얘기들이 넘쳐납니다. 실무적으로는, 세부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Why) 팀장이 되었는지 잊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출장 중에 비행기 안에서 나탈리와 라이언의 대화에는 '하는 일'과 '역할'의 차이에 대한 대화를 나눕니다. 기능적 업무에만 빠져 있는 팀장님들이 다시금 방향타를 잡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생각, 일과 사랑에 대한 생각 등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로서의 의미도 큰 영화라 생각됩니다.
70세 은퇴자가 패션 IT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소 황당한 스토리 아닌가 싶었는데, 영화관에서 나올 때는 잔잔한 감동과 자성의 기분이 충만했었습니다. 영화 원제의 부제가 'Experience never get old'(경험은 늙지 않는다)입니다.
처음부터 주인공 벤(로버트 드니로 분)의 인턴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장 줄스(앤 헤서웨이)가 애초에 외부 홍보를 위해 만들었던 인턴 제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벤의 성실과 충성, 그리고 배려심에 다들 마음을 열게 됩니다. 줄스 곁을 지켜주면서도 주제넘게 먼저 나서는 법이 없습니다.
방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동료 직원에게 벤은 자기 집에 머물도록 해줍니다. 깔끔히 정리돼있는 옷장을 보던 동료가 묻습니다.
"잘 정리되어 좋아 보이는데요... 손수건은 왜 그렇게 갖고 다니시는지 모르겠어요."
"손수건은 남에게 빌려주기 위해 준비하는 거야." (The best reason to carry a handkerchief is to lend it.)
[팀장에게 힘을]
권위를 모두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장을 돕는 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살겠다'란 다짐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팀장일 때 적용해볼 수는 없을까?' 생각이 들었지요. 카리스마 있는 만능 팀장을 꿈꾸던 시절이었습니다.
우선 먼저 듣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팀원의 말을 자르고 내 말을 앞세웠겠지만, 참았습니다.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휴대폰을 아예 꺼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 지났을까. 팀원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다음 문제였습니다. 그 판단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선 말이 나와야 했으니까요.
벤이 말했던 그 손수건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팀원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휴식이 필요한 팀원에게는 휴가를, 학습을 원하던 팀원에게는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저와의 문제가 있던 직원에게는 제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상호이해가 부족했던 부분은 양해를 구했습니다. 팀장은 결국 여러 장의 손수건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소위 '빅 데이터'의 위력(?)에 관해 얘기하면서 자주 언급됐던 영화입니다. '빅 데이터'는 대개 비정형 데이터에서 인사이트를 추출하는 건데, 영화상의 데이터는 빅 데이터는 아니고, 선수들의 경기 성적이었습니다. 어디서 뚝 떨어진 데이터가 아니라 구단들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효용성은 어떤 시각을 가지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진짜 묘미입니다.
메이저리그 만년 꼴찌,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성적도 안 좋은데 돈이 없는 구단 사정으로 그나마 쓸만한 선수들도 타 구단에 넘겨야 하는 상황. 구단주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은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타 구단에 갔다가 피터 브랜드를 만납니다. 별것도 아닌 친구 같은데, 그 구단주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조언을 구하죠. 미팅이 끝난 후 피터를 찾아갑니다. 여러 얘기 끝에 빌리 빈에게 호감이 있던 피터는 이렇게 얘기해줍니다.
"선수를 사는 게 아니라, 승리를 사야죠."
"승리하려면, 출루를 사야지요." (To buy wins, you buy runs)
저는 이 대사를 듣고 머리를 한 방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하는 업의 진짜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습니다. 오클랜드 구단의 기존 스카우터들은 선수의 성격, 부상, 사생활 등을 가지고 영입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거든요. 야구란 결국 누상에 주자를 많이 내보내서 점수를 얻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출루율이 좋은 선수를 영입하는 게 맞는 얘기지요. 그 외 다른 것은 지극히 부차적인 것입니다.
[팀장에게 힘을]
도매 영업을 전국 단위로 하며 지낸 시절이 있었습니다. 연간 100일 넘겨 출장을 다니면서 나름으로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실적이 크게 향상되지 않아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다 이 영화를 보고 사업 성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성공요소에는 흔히 낮은 매입가, 친절한 서비스, 빠른 배송 등등이 있습니다만, 이 같은 일반적인 성공요소들 외에 다른 뭔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계'였습니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새로운 비즈니스 룰이 필요했습니다. 매입에서는 중요 메이커 중 대리점 체계가 약한 고리부터 공략했습니다. 매출에서는 고객사의 고객사를 공략해서 인텔 인사이드의 'Push & Pull'이 가능한 마케팅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안면, 인연, 업력이 중요한 시장이었지만 철저히 이윤과 실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기 시작했습니다. 5년 만에 우리는 해당 시장 점유율 1위의 업체가 되었습니다.
기획안을 작성할 때, 좀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이것도 붙여 보고, 저것도 붙여 보려는 유혹이 듭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것 같습니다. 별도 붙이고, 조명을 달기도 하듯이. 하지만 너무 많아지면, 조화가 깨질뿐만 아니라 트리가 그걸 견디지 못합니다. 결국 핵심은 하나이고, 그것이 전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