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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Oct 13. 2020

팀장이 되고 나서 두통이 시작됐다

팀장으로 산다는 건2_#1

처음 팀장이 된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직원 30명의 보안 솔루션 개발사의 마케팅팀장. 팀원은 한 명, 벤처였습니다. 회사 전반적인 체계가 없는. 초창기라 제품 개발과 투자에 집중하고 있었고, 이제 마케팅과 영업에 나설 차례였죠. 제로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첫출근해서 '회의록' 양식부터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후일담이었지만 대표는 제가 예전 회사에서 작성했던 문서들(PPT)이 맘에 들어 채용했다고 했습니다.


입사 직후 얼마간은 팀장이란 자리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표가 지시하는 업무를 쳐내기도 바빴고, 예전 회사에서 팀장의 지휘하에 일하던 구조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밑에 있던 직원은 통번역 담당이라 정식 팀원은 아녔거든요. 그러고 보니 팀장인 제가 혼자 업무를 다 했었네요.


'팀원'으로 다시 입사

그러다 본격적으로 팀장이란 자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건 팀원을 뽑으면서입니다. 몇 개월 동안 기본적인 영업 베이스(회사소개서, 영업제안서, 제품/기술설명서, 투자제안서 등)를 만들어놓고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팀장이 어떤 자리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사전학습이 없던 저는 면접 전날 서점에서 면접 관련 책을 찾아봤습니다. 눈에 띄는 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한다는 면접 질문 리스트이었죠.


"서울 시내에 맨홀이 몇 개 있을까요?"


지원자들에게 했던 질문 중 하나입니다. 답을 찾아가는 논리를 보는 질문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머리끝까지 빨개지는 창피한 질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 질문을 이해하고 했던 건 같지 않습니다. 어색한 면접이 끝나고 두 명의 팀원을 뽑았습니다. 당시 제가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한 명은 동갑, 한 명은 한 살 위였습니다.


이상한 면접

팀원 두 명이 출근했던 첫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침에 회사소개부터 시작하려던 계획은 갑작스러운 대표의 호출로 어그러졌습니다.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방 미팅을 가는 바람에 며칠을 자리를 비우게 되고,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회사소개는 팀원들이 출근한 후 2주가 지나서야 가능했습니다.


그 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교육을 할까 하면 대표가 부르고, 고객사가 부르고, 내부 유관팀장이 부르고. 하루에 미팅이 8개까지 있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작은 성과도 있었기에 제가 갖는 만족감은 있었는데, 우리 팀원들은 의기소침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지고 맙니다.


회사홍보 자료를 작성해달라는 PR팀장의 요청에 팀원에게 그 업무를 맡겼는데, 마감 당일이 되자 품질이 문제였습니다. PR팀장이 뭐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미안합니다'란 말 한 마디만 하고 제자리에 와서 제가 재작성했습니다. 업무를 맡았던 팀원은 그 상황이 어땠을까요? 제대로 된 설명도 못 들은 상태에서 본인은 최선을 다했는데, 억울하게 질책을 받았다며 속상해했습니다.


"진짜 속상한 사람은 접니다!" 감정이 격해져서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팀원은 울면서 나갔고, 깜짝 놀란 다른 팀원이 들어와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줬습니다. 제가 대표와 외부로 돌고 있던 사이 팀원 둘은 타부서에서 오는 요청업무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제 입사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았는데 업무처리가 쉽진 않았겠죠. 결과도 신통치 않고, 팀장은 봐줄 여유도 없고. 이런 작은 스트레스들이 홍보 건으로 터진 거였습니다. 상황을 알겠다고 하고 나오는데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더군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반차를 냈습니다. 집에 다닿을 쯤에 인사총무팀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김 팀장님, 쉬시는데 죄송한데요. O대리하고, X대리가 방금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 아직 대표님께는 보고 안 드렸습니다."

"네... 내일 출근하면...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붙잡아야죠.... 그때까지는 보고 말아주세요."


하늘이 노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팀원의 사표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머릿속은 풀 수 없는 매듭이 가득 찬 것 같았습니다. 전 직장 상사분께 전화를 드리려다 면목이 없어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자포자기 심정에 다시 서점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면접 질문은 멍청하게 뽑았지만, 팀장의 할 일에 대해 제대로 말해주는 책이 있으려니 하고요. 하지만 불행히도 당시만 해도 '팀장'을 타겟팅한 책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냥 '인사' 관련 서적이 있는 매대를 계속 맴돌 뿐이었죠. 그러다 '조직행동론'이란 대학교재를 뽑아 들었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두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능력, 로버트 카츠, 출처 : https://bit.ly/30ZykBL


책에서는 관리자를 실무(일선), 중간, 최고 층으로 구분해놨는데, 이를 실무자, 팀장, 임원으로 치환해서 이해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Technical Skills(업무 능력)은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실무 지식과 직무 능력을, Human Skills(대인 능력)은 동기 부여, 관계 유지, 갈등 해결 능력 등을, Conceptual Skills(개념화 능력)은 현상을 보고 본질을 파악하여 의미를 부여하며 구조화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을 말한다."


'아... 팀장인 나는 실무자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능력을 요구받고 있었어. 팀원이었을 때는 그냥 내 일만 잘  하면 됐었고, 어차피 결정은 팀장이 할 테니까. 대인 관계라고 해봤자, 팀장과 같은 팀 팀원들이 대부분이었잖아. 근데 지금은 아니지. 폭발적으로 확대된 거야. 대표와 유관부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팀원도 챙겨야 하는데, 실무는 많고, 때때로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해야 할 판국이니... 두통약도 소용없었지.'


관리자의 세 가지 능력

다음 날, 팀원 두 사람과 면담에서 그들의 말을 먼저 들었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한없이 바빴던 제 상황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퇴사원 제출은 3개월 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변함없다면 그때 다시 내라고요. 이어서 대표와 면담도 했습니다. 팀 상황을 설명하고 일주일에 적어도 반나절은 팀원 교육 시간으로 할애하기로 약속받았습니다. PR팀장, 개발팀장, 인사총무팀장에게도 협조를 구했습니다. 팀원들의 실력이 올라올 때까지 도와달라고 하고, 업무협조는 저에게 직접 해달라고 했습니다.


팀원들을 위한 몇 번의 미팅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진짜 팀장'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가 중심이 아니라 '팀원'이 중심인 게 진짜 팀장의 모습이었습니다. 퇴근길에 팀원들이 문자를 보냈습니다. 한잔 하는 얘기였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제 말을 따라줬습니다. 맥주가 달달하다는 걸 느낀 하루였습니다. 나중에 팀원들과는 사석에선 친구처럼 지내게 됐습니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이 준비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팀장을 임명합니다. 직장인 커뮤니티를 살피면 팀장이 됐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은 단골 포스팅입니다. 회사는 팀장이란 직책은 주지만 리더십까지  않습니다. 팀장이 된 본인의 상황인식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을 갖는 것은 그 자리에 필요한 능력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팀장은 팀원이 성과를 만들도록 환경을 만들고 독려하는 자리이며, 이를 위해 대인 능력, 개념화 능력이 팀원 위치 때와는 구별될 만큼 요구됩니다. 바로 이 점이 처음 팀장이 된 분들이 맞는 첫 번째 도전입니다. 또한 이미 팀장인 분들도 자신의 리더십의 현재 상황을 돌아보는 좋은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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