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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Emilio Mar 30. 2021

일과 행복

예전 고객사 전략 수립 워크숍을 수행할 때였다. 전체 일정 중 중간관리자 대상 세션이 있던 날, 임원들은 딱히 할 일은 없었음에도, 대표가 큰 관심을 두고 있었던 탓에 워크숍이 열린 리조트까지 동행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논의 공간과는 별도로 자리를 만들어, 쉬면서 결과를 보고 받도록 조치했다. 토론을 거듭하던 중에 문제없이 일정들이 진행 중이란 의례적인 보고를 하려고 임원들이 있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한 임원이 눈에 확 들어왔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책상 앞에서 뭔가를 늘어놓은 채 분주한 모습이었다. “상무님, 뭐 하고 계신가요?"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좀 그럴 것 같아서... 명함 가져왔어요, 정리하려고." 일하는 시간도 아니었는데 뭔가에 쫓기는 표정이었다.


그동안 만나 본 임원 중에는 워크홀릭(일 중독자) 유형이 많았다. 생각이나 발상이 혁신적이진 않았지만 부지런하게 꼼꼼히 업무를 챙기고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던 사람들이다.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인정은 받았던 사람들. 흥미로웠던 것은 최근 코로나 사태에 따라 재택근무 도입에도 불구하고 회사 출근을 자청했다는 점이다. “일은 말이야, 사무실에서 내가 직접 챙겨야 돌아간다고. 그리고 사실 집보다 회사가 더 편해.” 그들 중 한 명이 내게 살짝 얘기해준 말이다. 매일 출근하는 그들의 부하 팀장들을 속 편히 집에서 업무를 볼 수 있었을까 싶다.


2018년 동유럽 세르비아에서 컨설팅 프로젝트를 했었다. (참고로 세르비아는 舊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가 있는 나라이며, 구매력 기준 1인당 평균 소득이 1만8천 불이었다) 출장 중반을 지나 파트너사 주최 오찬 약속이 있었고, 당일 오후 2시 반에는 다른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파트너사 담당 직원은 2시 반 일정을 미루라고 권했다. 오찬은 12시부터니 길어야 1시 반에는 끝날 거고, 거기서 30분 거리에 있던 약속 장소에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지만 하도 강권하는 통에 초대받는 입장이라 약속을 3시 반으로 미뤘다. 오찬이 전채요리부터 시작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즐겁게 얘기하다 보니 금방 3시에 가까워졌다. 외부 사람과의 식사가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 이래서 약속을 미루라고 했구나.’ 그들은 무척이나 여유롭고 유쾌해 보였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파트너 직원들은 오찬 후에 모두 퇴근했다고 했다. 우리 일정은 오후 6시 넘어까지 이어졌는데 말이다.



주 40시간제도(최장 52시간)가 시행됐지만, 한국 사람의 근로시간은 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3위로 최고 수준이다. 이웃한 일본과 비교하면 일 년이면 한 달, 독일과 비교하면 두 달 이상을 더 일하고 있다. 이쯤에서 일의 목적에 대해 자문하고 싶다. 행복하기 위해 일한다고 말하지만, 일할수록 불행하다 느끼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고, 혹은 이번 분기만 지나면 쉬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진도가 늦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이 중간에 치고 들어오기도 한다. 일을 다 하고 나서 쉴 생각을 한다면 휴식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가 될 수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쉴 날을 먼저 잡아 두자. 휴가 기안을 올려놓자. 그러고 나서 열심히 일하자. 마치 저축할 돈을 이체해두고 나머지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를 리더들이 먼저 결행해주면 사내에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세르비아 파트너 직원은 한국 출장을 와서 저녁 식사 중에 이런 말을 내게 해줬다. “미스터 김,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은 야근하는 직장인 때문이라지?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이제 선진국이잖아. 우리나라가 한국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사람들은 덜 스트레스 받고, 여가시간은 더 많은 것 같아. 한국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해. 개인의 행복은 어디 있는 거야? 당신은 행복을 일에 양보하지 않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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