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책이면 어때
“내 인생에서 20년부터 21년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그땐 남의 감정이 나한테 와서 묻는 것도 싫고 내 감정이 저 사람한테 가서 묻는 것조차 싫었던 시기 같아요.”
힘내란 말이 돌아왔다.
그런 대답을 원해서 한 말이 아니라
이제 그런 감정에서 좀 벗어나 한 말이었는데.
어둠의 터널을 지난
후(後),
관계는 더 단출 해 졌다.
그때는 그래야 했다.
다음이 불 보듯 후회겠지만 ‘어쩌라고?’라는 생각뿐이었다.
안다고 해서 꼭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감정이라는 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도 결국 몰라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던가.
결국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하되 좀 덜 힘든걸 선택하는 거다. 더 좋음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차선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더 많은 게 인생이니.
적어도 내가 살아온 인생의 순간들은 그랬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라면
댓츠 오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