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정한 그림들>과 함께 미술에세이를
잔뜩 취하고 싶은 가을이다. 4년 전 에세이 모임과 필사 클럽에서 만난 안나 작가가 대전에 왔다. 미술 에세이 쓰는 법을 알려주러.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응노미술관에서라니, 괜히 마음이 설렜다.
작년 초 대전으로 이사 온 후 아무 연고도 없는 밋밋한 이 도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때 이응노 미술관은 내게 작은 쉼터였다. 한없이 내가 작아질 때, 도망치고 싶을 때, 바람이 좋은 날에, 왠지 모르게 쓸쓸할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혼자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났다. 아무 말 없이 그림을 바라보는 그 시간들이, 내 안의 무너진 기둥들을 조용히 다시 세워주었다.
"그림은 조용해야 하고, 음악은 서러워야 하고, 시는 외로워야 한다." 윤형근 화백의 말을 인용하여 발표를 이어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강연자 바로 앞자리에 앉아 노트 위로 툭툭 떨어지는 눈물 방울을 감당하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결국 잠시 자리를 벗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마음속 어딘가는 여전히 울림이 있었다.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를 만들고, <나의 다정한 그림들>을 통해 ‘예술의 일상화’, ‘일상의 예술화'를 이야기하는 그녀. 대전까지 와서 강연을 준비한 나의 다정한 벗이자 글쓰기 선생님 앞에서 괜히 부끄러웠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고, 미술관 한쪽에 앉아 몇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 글을 읽어 내려가던 중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처음와보는 미술관 지하 강의실에서의 갑작스런 눈물에 나조차 놀랐다.
힘들었던 시절, 함께 책을 읽고 문장을 필사하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때의 다정한 순간들이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이끌어 주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마도 그 고마움이 내 눈물의 이유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묘하게 이어져있다. 에세이 모임, 필사클럽에서 '글'로 만나 서로의 문장에 마음을 기댔고, 2년 전에는 환기 미술관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 알록달록 단풍잎이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문턱에 대전의 아담한 미술관에서 또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그녀는 여전히 글과 예술, 삶의 경계를 다정하게 잇는 사람이고, 나는 여전히 그 다정함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우리가 예술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가을빛이 묻은 창밖 풍경처럼, 우리의 인연도 그렇게 한 겹 한 겹 쌓여가고 있다. 글로 만나고, 미술관에서 다시 만나고, 계절마다 조금씩 이어지는 이야기. 그녀와의 인연은 어쩌면 내 삶에 찾아온 가장 다정한 예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