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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Nov 28. 2023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_ 자식

- # 자식에 대해 묻습니다

# 9     

 혼자 농사지으며 노모. 근처 도시에 사는 아들과 딸이 가끔 찾아와 청소를 해줍니다.

 어느 날 아들과 딸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유, 언제까지 사실 건지...”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노모는 그게 마음이 쓰였다지요. 내가 너무 오래 사는 건 아닌가... 그렇다고 맘대로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아들과 딸이 찾아오는 것도 반갑지 않게 됐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나눌지 신경이 쓰였거든요. 안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난청이 왔습니다. 한 번 난청이 오자 생각하는 힘도 약해졌고 이내 치매. 아들과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모를 요양원에 맡겼고 노모 이름으로 된 너른 밭 역시 이내 팔았다지요.     



 이번에도 홀로 사는 노모. 귀가 어둡고 눈도 어둡습니다. 그런데도 홀로 삽니다. 다행히 군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이 있습니다. 반찬을 해준다거나, 청소 도우미를 보내준다거나, 몇 년에 한 번 썩어 무너진 지붕을 보수해 준다거나.

 원하는 사람에게는 센서를 달아 일정 시간 사람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군에 설치된 비상 감지기에 비상 신호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순회 돌보미가 전기나 상수도 사용량을 체크하기도 합니다.

 노모의 방은 옛날 집 그대로여서 어두침침합니다. 황토를 바른 벽. 손을 안 본 지 오래입니다. 벽지도 오래되어서 삭아 떨어진 곳이 많습니다. 벽 아래 장판에 부스러진 흙이 쌓이면 노모는 앉은걸음으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쓸어냅니다. 벽지라도 새로 바르면 좋으련만.

 가끔 방문하는 아들이 쓰러져 가는 대문 안쪽에서 뚝딱뚝딱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합니다. 지나가던 이웃이 뭐 하는 거냐고 묻습니다. 제 엄마 위해 뭘 하나 싶어서.

 “예. 주말에 경치 좋은 이곳에서 친구들과 고기 구워 먹을 때 쓰려고 평상을 만드는 중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웃. 네 엄마 방이나 한번 들어가 봐라, 하고 싶지만 참고 맙니다. 오면 고개만 삐쭉 들이밀고 “잘 계시죠?” 하는 놈인 줄 잘 아니까.     



 ㄱ 씨의 아들. 미국 유학 가서 5년 만에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며느리와 함께 아이 둘을 낳고 무척 고생하면서. 장한 아들. 그런데 취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부모는 도와준 게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수입이 없으니까. 얼마 안 되는 연금 생활. 처음 유학갈 때부터 두 주먹만 쥐고 간 길. 5년 동안 가지고 간 카드 두 장을 이리저리 돌려막고, 부모는 부모 대로 카드 몇 장으로 요술 아닌 요술을 부려가며 아들에게 얼마라도 보내며 버텼다가 결국 목구멍까지 한도가 차고 말았습니다. 요술을 부리려고 해도 한도가 자꾸 깎여 벼랑에 서게 된 것. 

 카드가 연체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는 애가 타서 죽을 지경입니다. 아들 내외는 아무 연고도 없는 외국에서 더하겠지요. 

 카드사에서 하루가 멀게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옵니다. 재판에 들어간다고 협박 아닌 협박 편지가 오고... 입이 바싹바싹 마릅니다. 혹시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직에 지장이 생길까 봐. 연체 50일째. 부모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신용 회복 제도를 알게 되어 서류를 챙깁니다. 미국에 연락해서 이런저런 서류를 만들어 보내라 합니다. 서류를 챙기려면 두 시간 반 떨어진 영사관에 가야 하는데 맡고 있는 연구실이 있고 시차도 있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사관이 하루 종일 문을 여는 것도 아니고.

 겨우겨우 어렵게 서류를 만들어 신용 회복위원회 접수 신청을 합니다. 이것도 이용자가 많아 대기 날짜가 장난이 아닙니다.

 다행히 서류를 받아줍니다. 잘될 거라고,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담당 직원이 위로해 줍니다. 새카맣게 탄 아비의 입술을 보고 하는 말이겠지요. 아버지는 묻고 또 묻습니다. 신용에 정말 문제가 없는 거냐고.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아니냐고. 직원은 물을 때마다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염려 마시라며.

 그날 저녁 아버지는 모처럼 죽음처럼 잠에 빠져듭니다. 그동안은 자다가도 하룻밤에 몇 차례씩 벌떡벌떡 깼었는데.     


니체 씨. 당신은 자식이 없지요? 

그게 좋은 건가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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