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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페이지 Aug 03. 2020

옆으로 세 발짝

2020. 8. 2. 일 / 229 days

아침부터 우린 부산스러웠어.

대구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점심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 와중에 아빠는 새벽 동안 보채던 널 아침에 엄마에게 맡기고 잠들었어. 그래서 오랜만에 엄마가 다인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게 되었단다.

언제나처럼 튀밥을 반찬삼아 먹이다 엄마는 리타이어. 2/3이라도 먹었으니 됐지 뭐.


가는 길에 할머니를 모셔가기 위해 할머니 댁으로 향했어. 휴가철인지 고속도로엔 차가 많았다. 대구로 가는 우리 차는 막힘없이 달려 나갔어.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의 더위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차들은 줄지어 서서 거북이걸음을 걷고 있었는데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빠는 저 행렬에 끼지 않아 되려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


할머니와 함께 식당에 도착하고서야 다인이는 잠에서 깨어났어. 할머니 품에 안겨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할머니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를 십여분. 그제야 잠이 좀 깼는지 할머니를 보고 방싯방싯 웃기 시작하더라.

할아버지께서 도착하시자 메인 메뉴인 오리 수육이 등장했어. 오리를 수육으로 먹는 건 처음이었는데 맛이 괜찮았어. 소스도 맛있었고 그 위에 뿌려진 금가루는 아무 맛이 없었지만 제일 맛있었어. ... 농담이야.

식후에 나온 들깨칼국수는 아빠가 너무 좋아했어. 아빠는 들깨가 들어간 음식을 무척 좋아하거든. 엄만 들깨를 안 좋아하지만 맛있더라.


식당 맞은편에는 카페도 들렀어. 벽돌로 지은 집인데 개화기 분위기가 살짝 나는 것이 매력적이었어. 디카페인 커피가 메뉴에 있어서 너무 행복한 시간 보냈단다.

아참, 산양유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었는 것도 잊지 말자.


할아버지는 일하러 가시고 할머니와 아빠 엄마 다인이는 고모역에 들렀다 할머니 댁으로 향했어. 폐역이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는 소식에 전부터 가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가게 되어 좋았단 말이야. 그런데 안에 곰팡이 냄새가 살짝 나서 아쉬웠어.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는 에어컨 틀고 잘 놀았어. 튀밥도 먹고 떡뻥도 먹고 잠도 조금 자고. 엄마 아빠는 할머니께서 내어주신 과일과 아로니아 차를 마셨지.

부지런하신 할머니께서는 잠시 앉아계시다가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셨어. 엄마는 할머니 옆을 얼쩡거리며 주방보조를 자처하고 말았어. 어른이 일어나시는데 앉아있기도 그렇고, 옆에서 봐야 음식 배우는 것도 있고 겸사겸사. 그러다 다인이가 울음소리로 엄마를 불러서 아빠랑 교대를 했어.


아빠는 할머니께 맛있는 가지구이를 선물했어. 할머니께서 가지를 어떻게 구워 먹냐고 물어보시자 신이 나서 요리를 시작한 거지. 가지구이는 아빠가 정말 잘하는 요리 중 하나거든. 집안이 온통 가지 구운 기름 냄새로 엉망이 된 것은 안 비밀.


집에 가기 전에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국수는 무척 맛있었어. 맛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싯물을 한통 넣어주셔서 사히 잘 받아왔단다.


집에 돌아가려 하는데 다인이의 울음이 걱정이었어. 차가 달리면 미간을 찌푸린 채로 손발을 꼬물거리다가 튤립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는데 야외활동이 길어진 탓인지 잠을 못 자고 계속 보채지 뭐야. 괜찮아지나 싶으면 울음소리가 커졌다가 잠잠해졌다가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하니 엄마도 마음이 지쳐서 울적해졌어. 그 와중에 발견한 휴게소 안내표지는 너무나 반가웠어.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려나 해서 수유실을 찾아 걸었는데 화장실 기저귀 갈이대만 발견하고 수유실을 못 찾겠는 거야. 엄마는 마음이 급해서 그만, 이 휴게실에는 수유실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돌아섰어. 그때, 아빠가 엄마 손을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세상에. 수유실에 아이 놀이방까지 있더라.

경부고속도로 만세!


밥도 먹고 옷도 갈아입고 새로운 곳을 볼 아본 덕분인지 우리 다인이는 웃기 시작했어. 엄마도 마음이 풀렸지. 뱃속에 있을 때 물리적인 탯줄로 연결되어있다가 태어나면서 끊어져 다인이와 엄마는 이제 각각의 객체라고 생각했는데 심적인 탯줄이 아직도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집에 오는 길에 당근 마켓에서 나눔을 받았어. 보행기와 걸음마 보조기를 받아 뿌듯한 마음이었어. 7월 21일 그러니까 217일에 팔을 난간에 걸치고 다리를 일으키기 시작하기에 곧 일어서겠다 싶어 찾고 있었는데 마침맞게 받아두게 됐어.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쓰게 될 것 같아.

다인이 네가 오늘 처음으로 스스로 벽을 잡고 일어선채로 옆걸음을 세 발짝 띄었거든.


엄마는 너무나 놀라고 감격했어.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걷는 게 아닌가 걱정도 앞서더라. 외할머니는 다인이가 걷는 영상을 보시고는 다리가 휘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셨어. 엄마가 마사지 해주면 괜찮겠지 뭐.

오늘 하루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네 옆걸음보다 인상적인 일이 있을까? 한 번 성공하더니 두 번 세 번 연달아 침대 난간을 잡고 뒤뚱뒤뚱 움직이던 모습은 다시 떠올려봐도 너무 귀여워.


다인아. 너는 오늘도 엄마의 세계를 넓혀주었어. 너의 동작 하나하나가 신비롭고 감동적이야. 생떼 지옥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더라만 아직 아기니까. 의사소통이 어려워 그런 거라고, 가장 불편한 건 말 못 하는 너라는 걸 계속 되새길게. 가끔 엄마가 까먹고 우울한 표정을 지을 때는 네가 엄마를 조금만 위로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하루도 고마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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