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페이지 Aug 04. 2020

금리단길

2020. 8. 3. 월 / 230 days


엄마 주변 사람들은 아이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사람들이라 늘 감사한 마음이 들어. 오늘 만나기로 했던 혜정이이모도 그중 한 명이야. 약속시간을 12시쯤으로 정하며 "아기가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유동적이라 12시에 못 맞출 수도 있는데 당일 오전에 새로 연락 줘도 괜찮을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걱정 말고 연락 달라는 답변을 받았어. 이렇게 배려를 해주니 가능하면 12시에 맞춰보겠다는 의지가 되려 샘솟는 거 있지.


우리 다인이가 평소대로 잠에서 깨어난다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12시까지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꼭 이런 날은 평소 같지 않아야겠지? 그래. 넌 타고난 이야깃꾼이야.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자더라. 그렇지만 아침잠을 덜 자고 밥을 조금 일찍 먹어 엄마는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단다.


혜정이이모에게 메시지를 보냈어. 정시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고. 어디쯤이냐고. 그랬더니 다인아. 네가 시트콤 같은 연출을 놓쳤더니 이모가 챙겨준다. 집 이래, 큭.


바로 준비해서 구미로 온다면 빨리 와도 두 시간이니 같이 밥을 먹기는 힘들 것 같아 오늘의 약속은 이틀 뒤로 미루기로 했어. 함께 나서기로 했던 아빠에게도 뒤늦게 소식을 전하게 되었지. 그러자 아빠는 오늘은 밖에 나가기로 한 날이니 나가보자며 엄마와 다인이를 준비시켜서 금오산으로 향했어. 며칠 비가 내린 후라 밖은 습하고 더웠지만 아빠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할 수는 없지. 우리는 원래의 목적지였던 구미역 뒤편 골목으로 향했어. 금리단길이라 불리는 곳이지. 수요일에 한 번 더 오기로 했지만 뭐 어때. 맛있는 집들이 잔뜩 있단 말이야.


엄마의 여행 스타일은 계획적이고 아빠의 여행 스타일은 즉흥적이야. 그래서 음식점을 갈 때도 엄마는 검색해서 찾아가고 아빠는 지나가다 쓱 들어가는 편이지. 오늘은 아빠 스타일로 밥집을 골라보려 했는데 월요일이라 그런지 마땅한 가게가 눈에 띄지 않았어. 그래서 엄마의 검색력을 빌어 일본식 튀김 덮밥을 만드는 집으로 향했단다.


쿠모산이라는 음식점은 금오산을 일본 사람이 발음한 것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어. 예전에 구미역 뒤편을 지나다 문득 봤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위치는 그때와는 다른 곳이었어. 엄마가 예전에 혜정이이모와 효영이이모가 놀러 왔을 때 데려갔던 느와르식당이라는 음식점이 있던 자리더라고. 괜히 그때 생각이 나서 반가웠어. 아직 다인이가 생기기 전의 이야기란다.


인기 있는 음식점인지 우리 앞에 대기열이 조금 있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착석할 수 있었어. 아빠는 튀김 덮밥을, 엄마는 튀김이 올라간 메밀을 시키곤 유모차에 앉은 네가 지겨워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간만의 외출을 즐겼단다. 음식은 금방 준비되었어. 오목한 그릇에 각각 밥과 메밀이 담기고 메뉴에 해당하는 튀김이 가지런히 올라간 맛있어 보이는 한 그릇 식사가 테이블 위에 놓였어. 엄마 아빠가 뭔가 먹고 있으면 다인이는 세상 억울한 배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기 때문에 너에게는 떡뻥을 간식으로 내어주며 식사를 이어갔어.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자 정말 바삭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오랜만에 맛있는 튀김을 먹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어.


밥을 먹고는 빙수를 먹으러 갔어. 밥 양이 평소보다는 적었기에 간식을 먹기 딱 좋았거든. 조금 전 지나가다 본 빙수집에 들렀는데 말끔한 인테리어의 매장이 우리를 반겨주었어. 무척 잘 꾸며놓은 넓고 예쁜 공간이었는데 아빠는 사장님의 취향보다는 최신 인테리어를 택한 것 같은 느낌이 난다며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선을 긋더라.


하지만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모두 예쁘게 나와서 엄마는 매우 만족했어. 그런데 다인아. 엄마 가방 속의 뭐가 마음에 들었길래 그렇게 한참을 머리를 박고 일어나지 않았던 거니? 가방에 꽂혀있던 덕분에 엄마 아빠는 조금 편하게 빙수를 맛볼 수 있었어. 빙수 맛은 soso.


집에 오는 길에 우린 병원도 들렀어. 병원 맞은편 도서관에 차를 대고 두 달 만에 의사 선생님을 만났단다. 키도 조금 자랐고 몸무게도 묵직해졌대서 조금 안심했어. 밥반찬으로 떡뻥과 튀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엄청 살찌지 않는 걸 보니 앞으로는 간식으로 떡뻥 몇 개 더 먹어도 되겠다 그렇지?


병원에 들린 건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다인이를 쭉 지켜봐 주신 의사 선생님께 아기가 탈없이 자라고 있나 확인도 받고, 다인이의 사소한 행동이 문제는 없나도 물어보기 위함이었어. 발목의 짓무름, 귀 뒤를 긁는 증상, 좁쌀처럼 일어나는 피부, 피부 곰팡이를 여쭤보겠다고 가놓고는 네 가지 항목이 많았는지 곰팡이는 결국 까먹고 못 물어봤어. 나머지 증상은 아토피의 연장선. 돌 지나고 나을 확률도 있다고 말씀해주시는데 정말로 나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벽을 잡고 걷기 시작했는데 다리에 무리가 가지는 않냐고 여쭤보았거든. 그것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셨어. 의사선생님의 한 마디는 마음이 참 편해져. 병원에 왜들 가는지 알 것 같아.


저녁이 되자 엄마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져서 배달음식을 먹었어. 오래간만에 꽁치구이를 먹었더니 행복해졌어. 그리고 다인이를 씻기고 아빠에게 맡긴 뒤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단다.


내일은 엄마가 다인이와 함께 자기로 했어. 아빠랑 하루만 더 자고 엄마랑 자자. 이제 엄마랑 자도 밤에 밥 달라고 떼쓰지 않을 거지?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건 좋지만 이제 이가 자라니까 밤에 빠빠 먹는 건 그만. 엄마에게 협조 부탁해 딸.


오늘도 열심히 놀아줘서

행복하게 웃어줘서

고마워 아가.



매거진의 이전글 옆으로 세 발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