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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페이지 Aug 06. 2020

쉬어가기

2020. 8. 4. 화 / 231 days

집 밖에 머문 시간이 어제처럼 긴 날은 오랜만이었어. 그래서일까. 오늘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말았어. 길고 긴 우기가 끝나자마자 바깥 기온은 성큼성큼 올라갔고 덩달아 집안의 온도도 높아졌지. 오랜만에 거실 에어컨을 켰더니 그나마 시원하더라. 없었다면 인류는 멸망했을지도 몰라.


다인이의 식사시간에 맞춰 엄마와 아빠는 포지션을 바꾸었고, 아빠가 실컷 자고 일어난 뒤 엄마는 아침밥을 준비했어.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고기라고 대답하길래 냉동고에 남은 돼지고기를 꺼내 김치찌개를 준비했어. 일주일 전에 솔이 삼촌이 찾아왔을 때 배달시켰다가 양이 많아서 남겨두었던 설렁탕이 아직 멀쩡하기에 김치찌개에 육수 대신 부어 넣었더니 돈코츠라면 맛이 나는 김치찌개가 완성되었어. 엄마는 자취를 해서 일찍부터 요리를 해 먹었는데 김치찌개를 끓이면 항상 똑같은 맛이 나는데 맛있지가 않았어. 김치 볶고 고기 볶고 양파와 파 볶고 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는 김치찌개가 어째서 맛이 없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다만 지금은 기름에 파를 볶고 마늘을 볶고 양파를 볶고 김치를 볶고 돼지고기를 볶은 후 물을 넣고 김치 국물을 조금 넣은 뒤 새우젓을 넣어 끓이는 덕분에 예전보다 맛난 한 끼를 먹을 수 있게 되었어. 끓이는 방법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왜일까. 요리는 정말 신비한 영역인 것 같아.


오늘의 이유식은 시판 이유식 전문 업체에서 받은 샘플이었어. 7~8개월 아이가 먹는 중기 이유식을 선택해 받았는데 다인이가 원래 먹던 것보다 쌀알의 입자가 굵더라.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밥을 잘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다가 밥 위에 튀밥을 좀 더 얹어주자 짜증을 내며 먹기 시작했어. 어쩌면 처음 먹어보는 미역이 들어있어서 그런 거였을까. 오후에 먹을 때는 물을 타고 조금 더 끓였지만 그리 나아지진 않는 눈치였어. 내일 닭고기가 들어간 샘플 이유식은 잘 먹어주련?


다인이 낮잠 재우려고 누워있다가 엄마는 잠이 들고 말았는데 눈을 떠보니 아빠가 널 데리고 거실에 나가서 놀고 있더라. 자라는 너는 안 자고 기운이 넘쳐가지고는.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아빠한테 미안하니까 일어나야지 하고는 다시 잠들어버렸어. 그리고 눈을 뜨니 아빠가 어제 먹고 남은 매운탕을 데워뒀더라. 며칠 전에 먹고 남은 돼지고기 김치볶음과 어머님께서 싸주신 밑반찬과 함께 맛난 저녁을 먹었어.


저녁을 먹고는 다인이 목욕시키고 하루 일과가 끝. 집 밖에 안 나가도 항상 뭔가 돈 쓸 일이 생기곤 했는데 오늘은 카드도 한 번 안 긁은 자린고비의 날을 보냈어. 이런 날이 많아져도 좋을 것 같아.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오늘도 잘 놀아주고, 걸음마 연습도 잘해주고, 많이 웃고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서 고마워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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