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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2. 2021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불행하다

시지프스의 형벌

어떻게든 육아에 도움을 주었던 남편은 일주일 동안 승진자 교육을 가느라 집을 비웠다. 지난 한 주는 교육포럼 발표자로 선정되어 발표 준비로 매일 늦었다. 남편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나는 집에서 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되었고 조직에서는 까마득한 후배들이 승진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된 지 오래다. 남편의 승승장구가 마냥 기쁘지 않음에 죄책감까지 느껴지는 이 몹쓸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남편의 출세가, 아이들의 성장이 내 삶을 채우는 기쁨의 전부일까 두려웠다.


요즘 내 삶이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느껴진다.  ‘시지프스’는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다시 밀어 올려야 한다. 바위는 다시 굴러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번번이 결과는 마찬가지이지만 ‘시지프스’는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밀어올리면 다시 내려오고 그러면 다시 밀어올리고 하는 시지프스의 모습에서 나를 봤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어린이집 보내 놓고 나면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거리와 빨래 거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가 잘 때 서둘러 집안일을 하고 오늘 저녁엔 또 뭐를 만들어 먹일까 머리가 쉴 틈이 없다. 매일 지속되는 고민이다. 이 끝나지 않는 엄마 노릇은 기약 없이 반복되고 계속된다. 이게 언제 끝날까 생각하다 죽어야 끝나겠구나, 라는 서글픈 생각에 이르렀다.


삶이 이런 것이겠거니, 이게 인간의 운명이겠거니 끝 모르게 이어진 생각의 조각들은 결국 나를 서글프게 만들고 말았다.  며칠 동안 계속되던 마음속 우울감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가장 슬픈 건 엄마 한 존재의 슬픔은 가족 전체로 급속도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우울한 엄마는 솟구치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고 그것은 늘 그렇듯 내 곁의 가장 귀하고도 무력한 존재를 향한다.


사람이 항상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다. 가끔 찾아오는 우울감도 귀한 손님처럼 잘 대접해야 한다. 그걸 잘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이제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그런 감정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 많은 내가 집안에 들어앉아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다고 느끼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느끼는 이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매일 아이들 먹거리 챙기고 집안 청소하고 정리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이 일상적인 노동을 무시하고는 삶은 이어지지 않음을. 이 위대한 일을 내가 해내고 있음이 장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친 내 마음을 다독였다.

활기가 없어진 무미건조한 날들

짓눌린 생기의 상태가 이어지는 날들

특별한 것 없는 날들

내 이름이 없어지고 엄마로만 살아가는 이 날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어질 엄마의 날들 이 날들을 지켜낸다는 게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일인지를 깨달으면서 조금씩 커가고 있는 중이다.




한참동안 마음에 걸려있던 이 글감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머릿속에 빙빙 도는데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금은 한 줄이도 써놓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써야지 하고 넘어갈 때도 많았다. 나중에 쓰려고 하면 그때 그 살아있는 감정이 되살아나지 않는다. 서툴고 거칠어도 그때 그때 써 놓는 게 맞다. 지금의 감정과 느낌은 지금 이때만 살아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애써 떠올리려 아무리 애써도 살려내지 못함을, 여러 번 경험했다.


4시에 아가가 깼다. 5시까지 젖을 먹였다. 그 후 잠시 망설였다. 지금 아가 잘 때 같이 잘까, 글을 쓸까. 이 날아가버릴 생생한 감정을 담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이 시간은 나의 소중한 잠과 맞바꾼 것이다. 지금 안 자면 하루 종일 잠을 보충할 시간이 없을지 모른다. 허나, 지금 안 쓰면 이 글감으로 다시 글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 이 마음 둘이 다퉜다. 결국 나는 쓰기로 했다. 그리고 썼다.


그 때 써놓지 않았다면 날아가버렸을 마음과 생각을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들춰보며 우울하고 심란했던 심경을헤아려본다. 아 그 힘든 시간을 내가 지나왔구나... 애썼다고 토닥이며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하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반복해서 내려오는 돌덩이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 중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삶은 형벌이 아니라 축복임을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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