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송이 May 08. 2023

무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면사무소 민원실 이야기


민원대에 앉아 민원 업무를 한 지도 1년이 넘어간다. 네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로 살다가 4년 만의 복직에 난 의기소침해 있었고 자진해서 민원 업무를 보겠다고 했다. 10여 년 전, 신규자 때 보던 업무였다. 업무 강도가 별로 쎄지 않다고 얕잡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다른 것은 민원 업무의 종류였다. 주민등록 등본과 인감 증명서 그리고 가족관계 등록부 발급 업무와 전입 신고 등이 주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정도 일 줄 알았다.


국세청 업무인 국세 납세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부가가치세표준증명원, 사업자등록증명원 등의 서류 발급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업무인 농업경영체등록 확인서까지도 발급이 가능했다. 그뿐 아니다. 외국인등록증명서와 체류지변경 등 외국인 관련 업무도 주민센터에서 모두 해야 한다. 주택 임대차 신고도 해야 하고 말이다.


면사무소 민원대에서 해야 할 업무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가끔은 민원인이 요청 서류를 손에 받아들고 어느 프로그램에 접속해야 하는지 한참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볼 때가 있다. 이 프로그램 접속했다 다시 저 프로그램으로 옮겨타고 두 개의 모니터에 몇 개의 프로그램이 켜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하자마자 먼저 와서 기다리는 민원인이 있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컴퓨터를 켜고 서고에서 인감 용지를 가져와 셋팅을 마쳤다. 인증기 프로그램부터 주민등록프로그램과 가족관계 프로그램 그리고 카드 결제 시스템까지 재빠르게 세팅 완료했다.


띵동. 버튼을 누르자 1번 손님이 내 앞에 와서 앉았다.


“안녕하세요. 어떤 거 해 드릴까요?”

첫 손님이니 활짝 웃는 얼굴로 민원인의 입을 바라보며 원하는 서류를 기다렸다.

“인감 두 통, 등초본 각 한 통 그리고 지방세 완납증명서요.”

“인감은 일반용이시고 초본은 주소 변동 사항 포함해 드릴까요?”

“주소 뭐요?”

“아 과거에 이사 다니신 내역 다 나오게도 할 수 있고 아니면 현재 주소만 나오게 할 수도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라던 민원인은 문자를 확인하더니 “주소 변동 사항 포함이라고 적혀있네요.” 했다.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민원인이 물었다.

“국세 완납 증명서는 여기서 안 되죠?”

“됩니다.”

“아 정말로요? 그것도 해 주세요. 그럼 세무서 갈 필요 없겠네요?”

“그럼요. 여기서 다 해 드려요.”

“설마 농업경영체사실증명서도 여기도 돼요?"

“네 됩니다. 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거의 다 돼요. 말씀만 하세요.”

“와 정말 편해졌네요. 여기저기 들릴 각오하고 나왔는데 여기서 다 되겠네요.”

“그럼요. 여기서 다 해 드릴게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기다리시는 동안 커피 한잔하시라며 모닝커피 한 잔을 얼른 가져다드렸다.



이렇게 몇 분의 민원을 더 해결해 드리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민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셔서 내가 먼저 일어나 “선생님,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아.. 사망 신고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사망진단서요. 병원에서 끊어주신 사망진단서 원본이 필요합니다.”

머뭇거리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난 관계가 어떻게 되시냐고 언제 돌아가셨냐고 물었다.

“내 처요. 5월 2일에 사망했죠.”

“사망신고 얼른 하셔야죠. 다른 자녀분들은 안 계세요?”

어느새 팀장님이 내 옆에 와서 “어르신, 할머니가 어디에서 돌아가셨어요?”

하고 물으셨다. 난 속으로 왜 그런 걸 물으시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할아버지의 대답을 듣기 전까지 난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서요.”

팀장님은 얼른 “그럼 사체검안서 있으시죠? 그거 가지고 오시면 돼요." 했다.

난 속으로 아차 싶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다음에 이어진 어르신 말씀에 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졌다.

“우울증이 있었소...... 아직도 내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아요. 근데 사망신고를 이렇게 서둘러 해야 하나요? 아까 직원분이 지금이라도 당장 해야 할 듯이 말을 해서 내가 아주 마음이 혼란스럽소...”


난 또 간과했다. 그분이 민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는 내게 한 건의 민원이었다.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초심을 잃지 않기를... 늘 처음의 감사하고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한 명 한 명의 민원을 처리하고자 했는데 오늘 나의 행동은 전혀 그 마음을 반영하지 못했다.


할아버지께 너무 죄송해서 “어르신, 아까 제가 그렇게 말씀드려 죄송해요.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넘으면 과태료가 있으니 이번 5월 안에는 꼭 사망신고하러 오셔야 해요.” 할아버지도 그제야 편안해진 얼굴로 사망신고서를 손에 쥐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문을 나가셨다.


할아버지가 나가고 사망진단서와 사체검안서의 차이점에 대해 찾아봤다. 이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이 둘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몰랐다. 사망진단서는 의료기관에서 사망했을 때만 발급이 가능하다. 그러하니 집에서 사망해서 사망진단서가 없는 아까 그 어르신이 내 말을 듣고 얼마나 당황스럽고 걱정이셨을까. 집에서 돌아가시면 사체검안서를 받아오면 되는데 말이다. 중간에 팀장님이 도와줘서 정말 다행이라 여기며 앞으로 민원인을 상대할 때 조금 더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다.


하루 종일 이 일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는 내 말 한마디에 눈동자가 흔들리던 할아버지의 걱정이 태산인 그 얼굴이 자꾸 마음에 찾아든다. 이 일을 글로 풀어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내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 전문성이 쌓여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무뎌져서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을 경계하자고 다짐해 본다. 글을 쓰면서 하루 종일 쪼그라져 있던 내 마음들을 가지런히 펴본다.



#공무원일기

#민원실일지

#더나은사람이될거야

#내일의나는오늘보다더나은사람일거다

#쓰면서내삶을품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업맘에서 워킹맘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