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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Jul 16. 2023

늙은 엄마

늙은 엄마라 미안하다고는 말하지 않을래


밤에 씻고 나와서 거울 앞에 서서 스킨로션을 바르고 있었다.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던 민찬이가 내 등 뒤에서 말했다.

“엄마, 엄마는 왜 얼굴이 늙은 거야?”

살짝 당황한 내가 등을 돌려 민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 민찬아, 왜? 왜 엄마가 늙었다고 말하는 거야?”

조그마한 손으로 자기 얼굴에 손바닥을 올려놓고는 “그냥 엄마 얼굴이가 늙은 것 같아.” 한다. 아마 주름살을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엄마, 고운이 엄마는 안 그런데 엄마는 왜 그런 거야?”

민찬이의 말들은 점점 적나라하고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적할 내 말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나 난 최대한 민찬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서둘러 알아듣기 쉬운 말들을 골라 아이에게 설명해 줬다.

“민찬아, 고운이 엄마는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어려. 봐봐 엄마는 아이를 몇 명 낳았지? 네 명이나 낳았지? 그리고 민찬이는 그중에 네 번째 아이잖아. 하지만 고운이 엄마는 고운이 딱 한 명도 낳았고 고운이가 첫째 아이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더 늙은 거야.”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민찬이의 아리송해하던 얼굴이 ‘엄마가 더 늙은 거야’ 부분을 듣자 이내 우울해지고 만다. 그러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서는 “엄마, 엄마도 그럼 할아버지처럼 돌아가는 거야?”


(1년 전에 민찬이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랐던 아이는 장례를 치르고 몇 달이 지난 후,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왜 할아버지가 집에 안 오는 거야? 너무 오랫동안 안 오네.” 우린 그때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거라고, 이제 할아버지는 만날 수 없다고 알려줬고 그 이후 민찬이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그래 맞아. 민찬아 사람은 누구나 다 돌아가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오랫동안 민찬이 곁에 머무를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튼튼해지려고 수영도 열심히 하고 그러는 거야. 알았지 민찬아.” 그때야 민찬이 얼굴이 다시 환해진다.


오 남매 중 막둥이로 자란 난 늙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민찬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거기에는 우리 엄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젊고 예쁜 엄마가 맛있는 것을 챙겨줬다. 나의 늙은 엄마는 온종일 논밭에서 일하느라 내가 학교 갔다 올 때 한 번도 집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 말이다.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고 늙은 엄마가 부끄러웠다. 그런 내가 늙은 엄마가 되고 말았다.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10년 동안 난 네 명의 아이를 품었고 낳았으며 키우고 있다. 그중에 막둥이는 셋째와 네 살 터울로 태어났으니 출산이 더 늦었다. 그러니 어린이집 다른 또래 엄마들과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민찬이가 엄마가 늙었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친구 엄마가 누나처럼 젊고 빛이 나니 말이다. 더 많이 운동하고 먹는 것도 관리해서 튼튼해지기로 마음먹어본다.


정말 엄마처럼 일만 하면서 영혼까지 갈아 넣어서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하면서 살지 않을 거다. 다시,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젊게 살고 있다. 육체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늙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마음만은 늘 젊다. 내 앞의 어린아이가 나를 계속 웃게 하고 천천히 자라는 중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웃을 거리가 많다. 내게 너무 버겁기만 한 ‘네 아이 엄마’라는 자리를 다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이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내 마음을 녹이고 또 엄마로 살게 한다.

그날 밤, 민찬이는 잠자리에서 양치질하자는 엄마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제가 스스로 할게요.”

“응? 왜 민찬아? 엄마가 해 줄게.”

“괜찮아요. 엄마. 엄마 힘들잖아요.”


민찬이는 태어나 보니 누나도 있고 형도 두 명이나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며 자라다 보니 눈치도 엄청 빠르고 철도 빨리 들었다. 엄마가 자꾸 더 늙으면 돌아갈 것이 두려웠던 걸까? 엄마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 마음으로 민찬이는 이날 밤 양치질도 스스로 하고 엄마 말도 엄청나게 잘 듣는 아이가 되었다.

민찬아, 늙은 엄마라서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을래. 늙은 엄마인 건 엄마가 어떻게 상황을 바꿀 수가 없지만 민찬이 슬프지 않게 엄마가 몸도 마음도 관리 잘하고 튼튼해져서 민찬이 곁에 씩씩하게 머무를게. 걱정하지 말렴, 아가야.


#늙은엄마

#육아의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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