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무너진다.
지금 일곱 살이 된 아이를 4년 동안 품에 안고 있었다. 더 빨리 직장에 복귀하려고 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를 집에 더 머물게 했다. 위로 초등생 세 명이 학교 가는 대신 집에 머물렀다. 난 세 명의 온라인 학습을 챙기고 영아기 아이까지 돌봐야 했다. 이렇게 4년을 보내며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 지자 복직했다.
“제가 아이가 많고 막내가 아직 어려서요. 집 가까운 면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면 합니다.”
복직원을 제출하러 간 인사팀에 사정했다.
다행히 네 명은 배려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나의 바람은 이뤄졌다. 면사무소에 출근한 첫날,
“야근할 수 있나요?” 팀 업무를 배정하기 위해 이 질문이 내게 날아들었다. 내가 갈 수 있는 팀은 세 개였다. 민원팀, 총무팀, 산업팀. 내 마음은 민원팀을 원하고 있었다. 오랜 육아휴직으로 엄마로 산 시간이 더 많으니 직장인 정체성이 많이 옅어진 상태였다. 주눅 들어 있었고,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야근이 자유롭지도 못한 것도 이유였다. 전에 해 본 업무가, 낮에 민원인에게 조금 시달리더라도 정시 퇴근이 보장되는 자리가 낫다 여겼다.
“아니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제가 야근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가능하다면 민원팀에 배치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을 민원팀에 머물렀고, 그 사이, 난 근속으로 7급으로 승진했고, 네 살이던 막둥이는 일곱 살이 되었다. 계속 민원팀에 머물 수는 없었다. 민원팀은 업무 스트레스도 없고 좋은 자리였으나 직급에 안 맞았다. 몸집은 커가는데 아직 몸에 꽉 끼는 작은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든 행사에 면정에서 배제되고 민원만 보면 되는데 나는 점점 그림자처럼 사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도 좋은지 헷갈렸다. 이러다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공무원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어느 날, 인사발령이 나고 총무 팀 회계자리가 비게 되었을 때, 난 곧바로 팀장님과 면장님께 회계 업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꽤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었다. 어느 자리를 내가 원해서 가게 되면 부담감이 생긴다. 내가 조금 힘들어하거나 버거워하면 남들은 분명
“네가 원해서 한다고 했잖아?!!!” 하고 비난 섞인 말을 내뱉을 것 같았다. 그래도 정지보다 성장을 택했다. 더 이상 정지해 있을 수는 없었다. 무슨 승진욕심이 나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 건 아니다. 그냥 직급에 맞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 다양한 업무 경험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 이 생각들의 총합이 날 움직이게 했다.
회계업무 맡은 건 잘한 일이었으나 시기가 부적절했다. 3월 4일 자로 회계 자리에 앉았는데 그날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다. 예산의 신속집행을 위해 일 년 치 공사가 상반기에 다 한다는 것을 몰랐다. 27건의 크고 작은 공사 계약을 위해 업체들이 계약서를 들고 서서 회계 담당자의 검토를 기다렸다. 계약이 무엇인지 계약서류를 위해 들어와야 하는 서류들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난 눈앞이 캄캄했다. 계약에 필요한 서류 리스트를 보면서 하나하나 체크하고, 계약대장 등록을 하는 데에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책상 앞에 각 명의 회계 담당자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주사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회계업무 새로 맡았는데요, 이호조에서 계약대장 등록하는데 계약 입력하라는 금액과 계약일 착공일 등 다 입력했는데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아요? 제가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요?” 이런 류의 질문을 수없이 해가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한 건의 공사가 진행되면 그 공사에 관급자재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도로포장 공사를 하게 되면 레미콘, 아스콘 등이 필요하다. 공사와 별개로 이것도 나라장터를 통해 계약을 맺고 구입을 해줘야 했다. 한 건의 공사마다 적게는 한 개, 많게는 세 개까지 관급자재가 필요했다.
"00마을 도로 공사건 내일 착공이라 레미콘 필요한데
업체라 계약 되었을까요?"
계약 업체는 관급자재를 빨리 사달라 보채니 차근차근, 차분히 일을 배우면서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책상에 서류가 쌓여갔고, 아무리 11시까지 야근해도 서류는 쉽사리 줄지 않았다. 속도는 더디고 실수는 잦았다.
‘괜히 이 자리에 온다고 했나.’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배워서 다행이야.’ 사이를 하루에 수도 없이 오가며 괴로워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날 괴롭힌 건 나 조차도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일을 해낼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만약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난 이 조직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품고 어떻게든 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야 했다.
매일 늦은 밤까지 이 서류 뭉치들을 들고 씨름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으나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나니 정말 숨은 돌릴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업무가 손에 익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이제 집에도 일찍 가서 방치되어 있던 아이들도 챙길 수 있었는데 인사발령이 났다.
다른 면으로의 전보인사였으나, 거기 가서도 회계 업무를 맡으면 되니까 많이 걱정하지 않았다. 예상은 빗나갔다. 내게 맡겨진 업무는 서무였다. 또 새로운 업무. 일상 업무 배우고 익히는 데도 버거운데 마을 축제가 코 앞이다. 축제가 나의 주된 업무가 되었다. 보탬-e 시스템을 통해 시 보조금을 타 오는데도 여러 날 진통을 겪었다. 다시 야근이 시작되었다. 아직 영유아기 아이르 돌보는 직원은 하루 두 시간의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데 내게 그런 삶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나면 혼자 남아 축제에 필요한 이런저런 시간을 챙기는 데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버리는지 매일 밤 10시, 11시가 다 되어 퇴근한다.
가정은 내팽개치고 일에 파묻혀 사는 것이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 분명 엄청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비록 4개월 머물렀으나 회계 업무를 맡기 전과해본 후의 지금 내가 다르듯이 이 서무 업무, 특히 축제 업무까지 하고 나면 많이 성장해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 터널을 지나는 중이니 앞이 캄캄하다. 또다시 나의 느린 업무 속도와 업무 능력은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른다. 해내면 보람차고 못하면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자괴감이 든다.
삶과 일의 균형은 완전히 깨졌다. 엄마로만 살았던 그 많은 시간을 만회하고 있는 걸까. 천천히 차근차근 배우고 싶었는데 상황은 휘몰아치는 폭풍우다. 천천히 배울 시간이 없다는 건가. 너무 많이 뒤처져 있느니 빨리빨리 배워서 성장하라는 건가. 지금은 버겁고 힘들고 두렵고 떨리지만 이 터널을 빠져나가고 나면 무럭무럭 자라 있을 나를 생각하며 힘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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