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무는 아직 나에게 너무 넓고 크다
회계 업무에 겨우 익숙해질 무렵, 다른 면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4개월 동안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나와 어렵게 배운 회계였기에, 당연히 계속 이어서 할 줄 알았다.
익숙한 업무를 놓지 않아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있었고, 그래서 이 변화가 그렇게 크지 않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새로 도착한 면에서 면장님은 내게 말했다.
“송이 씨가 서무 보세요.”
나는 짧게 말했다.
“저는 회계 보는 줄 알고 왔는데요...”
이미 정해진 인사 앞에서 더 이상 말을 보탤 수 없었다.
공무원 조직은 대개 기존 직원들의 자리 배치를 먼저 마무리하고, 새로 온 사람은 남은 자리에 배정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는 ‘서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서무.
낯설지 않은 단어였지만, 막상 내 자리가 되고 나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서무가 뭔지 다시 찾아보았다.
서무는 해당 부서 내부의 직원들을 챙기고, 상급기관에서 내려온 문서를 담당자에게 전달하며, 제출된 자료들을 다시 상부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면 서무는 이장단, 부녀회, 주민자치위원회, 기관사회단체 등 모든 단체들을 연결하고 조율한다.
한마디로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비서이자, 외부적으로는 단체들의 비서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풍부한 경력과 유쾌하고 단단한 성격이 요구된다.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고, 말 많은 사람들과도 감정 소비 없이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늘 하늘같은 선배들이 이 업무를 해오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그래서 막상 이 일이 내게 주어졌을 때, 감개무량까진 아니어도 가슴이 벅찼다.
드디어 나도 인정받은 걸까 싶었다.
그런데, 날 너무 과대평가했다.
한 달 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내 무능을 뼈저리게 체감했다.
늘 성격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왔지만, 그것은 편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무는 만인의 비서이자, 엄마 같은 품이 필요한 자리였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상부에서 내려온 공문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다시 회수해 상부로 올리는 일의 반복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번에 주민자치위원회 라인댄스반 의상 구입 해 줘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되나요?”
“연말 김장 행사 보조금 신청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이름은 ‘주민자치’인데 자치는커녕 모든 결정과 집행이 서무에게 의존됐다.
부녀회의 보조금 신청부터 정산까지, 이장님들의 끊임없는 방문과 요구까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집중할 틈이 없었다.
업무 속도는 느렸고, 방법도 요령도 몰랐다.
서무 업무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그런데 마침, 면에서는 마을 축제가 곧 열린다며 관련 업무까지 내게 맡겼다.
시 보조금, 도 보조금을 따기 위해 사업신청서를 쓰고, 반려되고, 수정하고...
이 모든 걸 몇 차례나 반복했다.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내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졌다.
밝았던 내가 점점 어두워졌다.
조직에 충실할수록, 내 아이들의 삶에선 엄마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게 가장 마음 아팠다.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갈팡질팡했다.
“언제까지 현실에 안주만 할 순 없어. 나도 이제 7급인데, 선배인데, 서무 업무 맡았으면 책임지고 성장해야지.”
하다가도,
“그럴 거면 본청으로 들어갔지. 내가 면에 한 번 더 있겠다고 한 이유는, 넷째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였잖아.”
이 두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싸웠고,
어떤 날은 이 마음이, 또 어떤 날은 저 마음이 이겼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면,
엄마 없는 아이들처럼 방에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에이, 못 해 먹겠다.’
하고 돌아눕다가도,
아침엔 다시 출근길에 생각한다.
‘그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
그러던 어느 날, 서무 맡은 지 두 달쯤 됐을 때였다.
회계 담당 직원이 휴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선택의 기로였다.
‘서무’를 계속할 것인가, 다시 ‘회계’로 돌아갈 것인가.
말은 쉽다. 그냥 회계로 가면 된다고.
하지만 서무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리를 옮기자고 말하는 건
마치 내가 이 업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 같았고,
또 아이들 핑계를 대는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늘 이런 선택의 순간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이번에도 망설였다.
선배들과 팀장님은 하나같이 말했다.
“지금 서무 잠깐 하다가 회계로 가는 건 모양새도 그렇고, 여기서 버티면 크게 성장할 거야. 좀 더 있어보자.”
모두가 말렸지만, 내 마음은 서서히 회계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팀장이 되기 전, 언젠가는 서무 업무를 반드시 맡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도, 나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고유 업무’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일.
조직 안에서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서무는 내부적으로는 직원을, 외부적으로는 단체를 보조한다.
반면, 회계는 조직의 살림을 책임지는 실무자다.
나는 지금,
잠깐 익혔던 회계를 더 익히고 싶다.
공무원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회계를 제대로 마스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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