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무엇인가
3개월간 집을 떠나 있던 엄마가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엄마는 고관절과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처음 집을 나설 때는 그 누구도 이별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3월에 고관절 수술을 받고, 한 달 후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으면서 회복을 위해 퇴원 후에도 이모댁에 머물러야 했다.
사실 엄마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도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지만, 수술만은 극구 거절해왔다. 10년 전 한쪽 무릎 수술을 받았을 때 재활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 기억 때문에 엄마는 아무리 수술을 권해도 "그 고통을 다시 겪느니 차라리 이렇게 살다 죽겠다"며 자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이번 겨울, 이모가 눈길에 넘어져 허리를 다쳐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모는 엄마와 비슷한 상태의 환자들이 수술 후 성공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다. 그 후 이모는 담양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수술받을 것을 우리 엄마와 자녀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설득과 거절이 반복된 끝에야 겨우 엄마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사실 수술 후 2개월 정도 지나면 엄마가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아빠까지 장폐색으로 응급수술을 받고 입원하게 되어, 두 명의 환자가 한 집에서 지낼 수는 없어 엄마는 조금 더 이모댁에 머물게 되었다.
아빠는 광주 병원에, 엄마는 서울 병원에 입원하고, 자식들은 두 곳을 나누어 오가며 두 분을 돌보는 힘겨운 시간이 흘렀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고된 날들이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간병했고, 다행히 아빠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퇴원할 수 있었다.
이모는 정성을 다해 엄마를 돌봐주었다. 한 끼도 대충 차려주는 법이 없었다. 이모의 밥상에는 매 끼니마다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었고, 엄마는 그 덕분에 살이 오르며 많이 건강해졌다. 수술 후 경과를 보러 간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노력 끝에 다리를 130도까지 굽힐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100점 만점"이라며 칭찬해주셨다.
엄마는 고관절 통증은 거의 느끼지 않는다고 했고, 무릎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호전되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두 차례 수술로 몸과 마음이 지친 엄마는 충분히 자고 조금씩 움직이며 회복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어느 정도 회복되자 잠도 덜 자고 더 많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엄마에게 낯선 이모댁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 길고 심심했다. 엄마는 이모에게 자꾸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시골집 아빠는 매일 자식들에게 "엄마 언제 오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았다. 두 분은 이제 만나야 했다.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내려왔다. 아빠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나는 엄마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아빠를 만나면 꼭 안아달라고.
우리가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집에 안 계셨다.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작은 언니와 함께 마을회관으로 아빠를 모시러 갔다.
"아빠, 막둥이 왔어."
막둥이를 본 아빠는 동그란 눈으로 "엄마도 왔냐?"고 물었다. 나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조금 걷다가 아빠가 또 묻는다.
"엄마 왔냐?"
드디어 거실에 들어선 아빠. 엄마는 약속대로 아빠를 안아주었다. 아빠도 엄마를 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우리 가족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빠, 엄마 없이 살아보니까 힘들었지?"
아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두 분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5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살며 처음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노부부는, 아무리 투닥거려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둘 다 깨달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따뜻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