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수 없는 타이밍

결심의 시간

by 이송이

남편이 말했다.

“이제 나이가 드니까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것 같아. 빨리 승진해서 외청으로 나와야겠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그럼 나는 어떡해? 나도 나이 들어가는데, 이제야 본청 들어가서 일 열심히 해야 하잖아. 나도 걱정이야.”

입꼬리는 올렸지만 속은 복잡했다.

웃음 뒤에는 오래 미뤄둔 불안이 있었다.


나는 네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어쩌면 일한 시간보다 쉬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입사동기들은 이미 6급으로 승진하고 팀장이 되었지만,

나는 이제야 7급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조금씩 뒤로 미뤄온 시간이었다.


2022년 1월, 나는 본청을 마다하고 면사무소로 복직했다. 아이가 아직 어렸고 그 아이는 무려 넷째였다.

민원팀에 있으면서 오랜만에 사회에 나와 워밍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민원업무는 다른 업무보다 업무 난이도가 낮고 스트레스도 별로 없다. 하루 종일 민원인을 상대하는 게 조금 힘들지만 어쨌든 6시가 되면 일은 끝난다. 잔무도 스트레스도 없다.


민원 업무를 본 지 2년 정도 지나자 조금씩 다른 업무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때, 회계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이 일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나도 모르니까 낯선 업무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컸다. 어쨌든 후배들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조금씩 업무를 익혀나갔다.

그러다 다른 면으로 인사이동이 되었다. 면사무소에서 다른 면사무소로의 전보는 보기 드문 행운이었다. 더군다나 집과 가까워서, 아이들을 챙기기에도 좋았다. 다둥이 엄마를 위한 배려가 작용했다.


옮긴 면사무소에서의 시간은 다사다난했다.

처음 맡은 서무 업무가 발목을 잡아 축제 업무까지 도맡았다.

고된 날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일도 배우고, 사람도 남겼다. 그러다 기회가 되어 회계업무를 맡게 되었고 다시 회계 업무를 맡은 지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이제야 자리가 잡히고, 일의 리듬도 익숙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이들 챙기면서 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협치담당관.

그곳은 내가 예전부터 마음속에 그려왔던 부서다.

내 글쓰기 역량을 업무에 녹여낼 수 있는 자리.

내 목소리를 조금 더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곳.

그런데 육아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면서 기회는 늘 내 앞을 스쳐갔다.

이제는 후배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더 미루면, 그 문은 완전히 닫힐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타이밍이라는 예감이 든다.


이제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지금 본청으로 들어가 3~4년 열심히 일하면,

50살 무렵에는 팀장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면사무소에만 머문다면,

그때도 팀장이 되지 못한 채 후배들이 내 위로 올라설 것이다.

그들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야 한다면,

그건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내 삶의 자존을 잃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본청의 삶은 치열하다.

야근이 많고, 보고서가 끊이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일의 양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제자리걸음하는 게 두렵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때로는 멈춤이 필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멈춤이 아니라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도, 육아도, 현실도

이제는 나를 막는 이유가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경험이 되었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

두려움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고,

나는 내 생을 ‘미뤄둔 가능성’으로 채우고 싶지 않다.

결심이 단단해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평온해진다.

이제, 나는 다시 앞으로 간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내가 선택한 속도로, 내 뜻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