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리지만, 나의 속도로

10년 동안 8급에 머물렀다.

by 이송이

3년 전에 7급을 달았다.

육아휴직을 오래 해 동기들에 비해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내게는 의미 있는 진급이다.


아이를 넷 낳고 키우며 육아휴직을 여러 번 썼다.

그 시간들이 남들에게는 ‘경력 공백’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 삶에선 가장 치열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을 무사히 버텨내는 것이 기적 같았고,

그 무수한 밤들과 아침들 속에서 나는

엄마로서, 한 인간으로서, 내 자리를 묵묵히 지켜냈다.


그렇게 8급에서 10년 가까이 머물렀다.

돌아보면 그 시간 동안 나는 자주 웃었고, 자주 울었고,

아이들을 키워내며 나도 자라며

삶이란 것을 더 깊이 배워갔다.


그래서인지 동기들이 하나둘 6급을 달기 시작할 때

나는 이제야 7급을 달았다는 사실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의 속도로 잘 가고 있어.’

그렇게 믿으며 지냈다.


그런데 요즘 조금 불편하다.

새로 부서에 발령 난 직원이 있는데

5년 만에 7급을 단 초고속 승진자다.

입사 연도로 보면 나보다 10년 후배인데

7급으로 승진한 시기가 나와 비슷하다.


행정과, 정책기획담당관 등 소위 말해 요직,

남들은 가고 싶어서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주요 부서에서만

근무한 일을 잘하는 친구다.


머리로는 괜찮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걸음의 속도가 다르고

나는 내 삶의 우선순위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주눅 든다.

나는 너무 오래 멈춰 있었던 건 아닐까.

나이는 많고 승진은 느린,

그래서 조직 안에서 어색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내가 오래 고민하고 행간에 머물러있을 때

뭐든 척척 빨리 빨리 해내는 그 앞에서

난 작아진다.


그럴 때면 난 맨발로 걸으며 마음을 토닥이고

글에 내 어지러운 생각들을 풀어내며 마음을 달랬다.

햇볕이 좋고 바람이 불면, 다시 나를 믿게 된다.

내가 살아낸 시간은

누구와 비교당할 수 없는 고유한 시간이었다는 걸.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

내 안에서 천천히 자란 마음,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묵묵히, 천천히, 나의 속도로 걷고 있다.



비교가 마음을 흔들 때,

나는 내가 살아낸 시간을 기억한다.

그 누구의 길도 아닌,

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