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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Mar 07. 2024

클래식 음악과 반 고흐가 만났다.

2024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 시리즈 I

024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 시리즈I(사진=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지난 2월 29일 2024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실내악 시리즈가 예술의전당IBK 챔버홀에서 진행됐다. '반 고흐 작품으로 만나는 19, 20세기 음악가들'이라는 주제로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 풀랑의 <피아노와 목관 5중주를 위한 6중주>, 그리그의 <현악4중주 1번>이 연주되었다. 이번 공연은 '2023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실내악 시리즈 <사운드 팔레트>'와 비슷한 콘셉트로 기획되어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뒤편에 마련된 스크린에 반 고흐의 대표 작품을 시기별로 띄워냈다.



명화와 클래식 음악의 만남

공연이 시작되자 연주를 하기도 전에 이번 공연의 콘셉트를 알리는 화면 연출이 이뤄졌다. 스크린에 명화 '밤의 카페 테라스'를 띄어내곤 테라스에 앉아 있는 신원미상의 한 손님을 클로즈업했다. 그는 다름 아닌 빈센트 반 고흐였다. 고흐는 한국어로 관객들에게 환영인사를 건네며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이러한 부분은 공연 전반적으로 그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잘 나타내는 연출이었다.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선율에 맞춰 고흐의 작품 속 인물이나 오브제에 움직임을 주는 등 미디어 아트로 재해석한 형태였다. 이는 명화를 보다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

연주가 이뤄지기 전에는 해설자 김세환이 나서 고흐의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각 곡마다 주제가 되는 작품에 대해서 고흐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연계하는 방식이 돋보였다. 특히 해설할 때 표현 방법이 인상적이었는데 고흐가 쓴 편지를 연극톤으로 낭독하여 몰입감이 배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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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설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이번 공연은 작곡가들의 작곡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반 고흐의 일생과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려운 공연이다. 이를테면 베를렌의 시집 <우아한 축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던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이 연주될 땐, 고흐의 네덜란드 시기 여러 작품들을 함께 비추어낸 식이었는데, <우아한 축제>와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없는 상황이라 해설자의 리드가 중요했다. 그러나 해설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미술이었고, 음악은 추상적인 느낌만 전달하는 형태였다. 이로써 미술과 음악의 교차점에 따른 방향성을 선명하게 그려내지 못한채 음악을 미술의 일부분처럼 사용하게 해 아쉬움이 남았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반 고흐 작품으로 만나는 19-20세기 음악가들(사진=이강원)


명화를 보았고, 또 들었다.

물론 해설자가 미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연주의 방향성도 이에 맞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좋든 싫든 해설자의 리드에 따라 작곡 의도와는 별개로 그림에 초점을 맞춰 공연을 감상해야 했다. 


첫 곡은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을 목관 5중주로 연주하였고 스크린에는 고흐의 초기 네덜란드 시기 대표 작품을 조명하였다. 목관 앙상블의 음색을 보았을 때 호른의 음색이 나머지 목관악기에 비해 조금 튀어 오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두고 공연 초입부에 흔히 나올 수 있는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을 미술의 일부분처럼 활용하였다는 점과 투박하더라도 농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하였던 당시 고흐의 가치관을 생각한다면 음색을 정돈하지 않았던 것은 어느 정도 의도된 연주였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작은 모음곡 중 '미뉴에트'가 연주되었을 때 스크린에는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여줬다. 어두운 실내가 그려진 그림을 음악으로 해석한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고흐의 작품에 빠져들 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감상하게 할 것인가? 만약 전자였다면 연주의 색채감을 어둡게 하였을 것이고, 후자였다면 색채감을 밝게 하였을 것이다. 한데 아쉽게도 이번 연주에서는 전자나 후자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해석을 선택했다. 관객들에게 몰입의 순간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두 번째 곡은 풀랑크의 <피아노와 목관 5중주를 위한 6중주>가 연주됐다. 고흐의 파리 시기와 아를 시기를 함께 조명하였으며, '풍차가 있는 몽마르트의 전경', '아를의 눈 덮인 풍경', '해바라기',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과 함께 고흐의 여러 작품들을 비추어냈다. 1악장의 경우 스크린에서 '아를의 빨래하는 여인들이 있는 랑글루아 다리'를 띄어냈는데 노란색 계열과 파란색의 대비가 살아있는 작품인 만큼, 연주에 있어서도 익살스러운 파트에서는 템포를 굉장히 빠르고 힘차게 그려나갔으며, 구슬픈 파트에서는 그 흐름을 적절히 완화하여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3악장도 익살스러운 선율과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가 함께 공존한다. 이때 스크린에는 고흐의 '생트 마리 바다 위의 보트'를 시작으로 아주 강렬한 노란색으로 물든 '해바라기'를 띄워냈다. 1악장에서 익살스러운 파트에 위풍당당하고 빨랐던 템포가 3악장에 와서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어두운 면모는 조금 더 부각하는 연주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열정과 절망 사이의 변화가 1악장과 3악장에 걸쳐 뚜렷하게 드러나는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연주 전반적으로 태양빛을 좋아했던 예술가의 열정적인 내면과 고갱이 떠난 후의 절망감을 적절히 잘 배합되어 연주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3악장 끝자락에서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보았을 때는 인터미션까지 여운이 이어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목관 앙상블(사진=이강원)


마지막 곡인 그리그의 <현악 4중주 1번>의 경우 고흐의 생 레미 시기와 오베르쉬르우아즈 시기를 조명하였다. 연주의 완성도 측면에서 볼 때 앞선 곡에서 진행하였던 목관 앙상블에 비하면 완성도가 더 높은 편이었다. 대체로 호흡이 좋았고 연주도 훌륭했다. 특히 곡에서 표현하고 있는 전체적인 흐름과 미디어 아트와의 싱크로율도 좋은 편이었다. 1악장의 경우 스크린에서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을 함께 보여줬는데 이 중 사이프러스 나무의 질감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의 풍경을 표현한 듯한 연주가 들려왔다. 바람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활기찬 풍경 속에 까슬까슬한 현악기의 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2악장에선 스크린을 통해 '꽃 피는 아몬드 나무'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보여줬는데,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왈츠 선율과 불길한 기운을 미묘하게 잘 배합된 연주가 완성도 높게 흘러나왔다. 이 외에도 고흐의 여러 자화상이 교차되었던 3악장을 지나 '별이 빛나는 밤'을 집중 조명하였던 4악장까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향한 위로와 희망이 종합되는 일련의 과정이 진지하고도 역동적인 연주로 화답하듯 진행됐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현악사중주(사진=이강원)


이번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실내악 시리즈는 고흐의 생애 대표 작품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노란색과 파란색만큼이나 명확한 대비를 보여주는 연주가 인상적이었으며, 대체로 미디어 아트와 싱크로율이 돋보인 시간이기도 했다. 비록 시선이 분산되어 오롯이 음악에만 몰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 행복한 보상이 있을 거라는 고흐의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받는 등 감상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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