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에 피아노 독주곡으로 작곡되었으며, 이듬해인 1912년에 라벨 본인이 관현악으로 편곡하였다. 제목은슈베르트의 두 왈츠집 <고귀한 왈츠>, <감상적인 왈츠>를 따와 오마주한 작품이지만, 음악은 슈베르트의 왈츠 형식을 빌리되, 이를 라벨 특유의 현대적 어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라벨은 이 작품의 첫머리에 상징주의 시인 앙리 드 레니에의 문장 'Le plaisir délicieux et toujours nouveau d'une occupation inutile(쓸데없는 일에서 오는 달콤하고도 새롭게 느껴지는 즐거움)'을 인용해 왈츠가 주는 감각적 쾌락의 세계를 암시하기도 했다.
전체 7개의 짧은 왈츠와 하나의 에필로그로 이뤄지며 지휘자나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관현악 버전은 보통 17분 내외로 쉬지 않고 연주된다. 전통적인 왈츠 형식의 우아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화성과 리듬의 실험을 통해 위트와 반전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피아노 독주곡 초연 당시에는 작곡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연주되었고, 왈츠 선율 사이로 등장하는 불협화음과 대담한 전개에 일부 청중들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며, 당시에는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그러나 드뷔시 등 동료 음악가들은 이 실험적인 시도를 높이 평가했으며,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드뷔시는 이 곡을 듣고 라벨의 작품임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라벨은 <밤의 가스파르>와 같은 곡에서 보여준 화려한 기교 대신, 더 투명한 질감으로 화성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뚜렷한 대비를 추구했다. 이런 의도대로 관현악 편곡판은 다채로운 색채와 정교한 음향 배치를 통해 각 왈츠마다 개성을 부여하면서도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하도록 설계되었다. 오케스트라 버전에는 두 대의 하프, 첼레스타, 글로켄슈필과 같은 다채로운 악기 편성을 통해 반짝이는 색채감과 풍부한 음향을 실현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의 관현악 버전이 1912년 발레 <아델라이드, 꽃의 언어(Adélaïde, ou le langage des fleurs)>의 무대 음악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라벨 자신이 구상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19세기 초 파리 살롱 사회를 무대로 펼쳐지는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이 발레는 1912년 4월 22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무용수 나타샤 트루하노바와 알프레드 베케피가 주연을 맡았다. 오늘날에는 발레 자체는 공연되지 않으나, 라벨의 음악은 여전히 콘서트 레퍼토리로 자주 연주된다.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전체 7개의 짧은 왈츠와 하나의 에필로그로 구성된 모음곡으로, 각 곡마다 뚜렷한 성격과 정서를 지니면서도 서로 유기적인 흐름을 이루어 한 편의 왈츠 연작시처럼 이어진다. 경쾌하고 선명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느리고 감상적인 분위기, 익살스럽고 역동적인 장면까지 다채로운 표정을 펼쳐 보인다.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비교적 긴 길이와 극적인 전개로 앞선 왈츠들을 회상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신비롭고 쓸쓸한 정서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각 곡의 템포와 분위기 사이의 대비가 풍부하게 살아 있어, 다양한 왈츠의 세계로 이끈다.
제1곡: Modéré – très franc
제2곡: Assez lent – avec une expression intense
제3곡: Modéré
제4곡: Assez animé
제5곡: Presque lent – dans un sentiment intime
제6곡: Vif
제7곡: Moins vif
제8곡: Épilogue: Lent
도입부부터 박진감 있는 3박자 왈츠 기본 리듬이 뚜렷하게 울려 퍼진다. 관현악 버전에서는 목관악기와 바이올린이 경쾌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며, 왈츠 특유의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듯한 리듬감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 이 주제는 밝고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 고전적인 빈 왈츠의 우아함을 연상시키면서도 선명하고 현대적인 음색으로 다가온다. 특히 라벨은 이 부분에서 화성 진행에 헤미올라 리듬을 활용해 세련된 리듬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초연 당시 청중이 당혹스러워한 불협화적 어법은 이미 이 첫 곡부터 등장하는데, 이는 색채감을 강조한 라벨 특유의 작곡 기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첫 곡이니만큼 분위기를 활기차게 열어주며 다음 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분위기는 느리고 감상적으로 바뀐다. 마치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추는 느린 왈츠처럼 부드럽고 관능적인 선율을 들려준다. 현악기군이 연주하는 긴 호흡의 선율은 한층 로맨틱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풍기며, 관악기들은 속삭이듯 조화롭게 연주된다. 제1곡이 밝은 조명 아래 화려한 무도회장의 왈츠였다면, 제2곡은 조명이 밝지 않은 무도회장의 구석에서 속삭이는 연인들의 왈츠를 연상시킨다. 음악의 흐름은 마치 숨결이 느껴지듯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전개되고, 중반부에는 감정이 깊어지는 듯한 급격한 다이내믹 변화도 나타나 귀를 사로잡는다. 라벨은 이 느린 왈츠에서 풍부한 현악기의 음색과 하프의 반주를 통해 감미롭고도 농밀한 분위기를 빚어내며 ‘감상적’인 왈츠의 제목에 걸맞은 낭만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보통 빠르기로 돌아와 전통적인 왈츠의 기품이 있는 밝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선율이 주를 이루는 이 곡은 마치 미소를 머금고 추는 춤곡처럼 들린다. 목관과 현악이 주고받는 경쾌한 멜로디는 제2곡의 느린 분위기에서 벗어나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으면서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은 절제된 우아함을 유지한다. 전형적인 ABA 형식으로 진행되어 처음의 주제가 중간의 변화를 거쳐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초반에 들었던 멜로디가 후반에 재현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치 무도회장에서 한 쌍의 무용수가 춤을 추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 처음 춤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중간 부분에서 잠시 조바꿈을 통해 새로운 색깔을 입혔다가 다시 원래 주제와 조성으로 복귀하여 안정감을 준다. 제3곡은 전체 모음곡에서 밝고 사랑스러운 숨결과 같은 역할을 가진다.
이 곡은 상당히 활기차게 연주된다. 모음곡의 중간 부분에서 생동감을 극대화하는데, 이 왈츠는 템포와 열기가 갑자기 솟구치는 듯한 분위기로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리듬이 만들어내는 스릴과 박진감이 두드러지며, 기본 3박자를 유지하면서 악센트의 위치를 변화시키거나 당김음을 사용하여 음악이 마치 두 배 빠르게 질주하는 느낌을 준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빠른 악구들을 주고 받으며 악기군마다 색채를 활용한 대화가 펼쳐지고, 퍼커션의 경쾌한 연주는 활력을 더하며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이 곡은 장난기 어린 왈츠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무도회장의 익살스러운 해프닝이나 살짝 비틀거리는 춤 동작이 연상될 정도로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보여준다. 라벨은 이 곡을 통해 왈츠 장르의 밝고 흥겨운 풍광을 한껏 드러내면서도, 세밀한 관현악 기법으로 소리의 입체감을 풍부하게 살려 청중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다시 템포의 대비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아주 느린 왈츠로 매우 부드럽고 속삭이는 듯한 음악적 대화가 펼쳐진다. 클라리넷이나 첼로의 솔로 연주가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멜로디가 시작되며 친밀하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나머지 악기들은 그 선율을 섬세하게 감싸는 화음으로 뒷받침한다. 이 부분에서 라벨의 관현악 색채가 특히 빛을 발하는데, 첼레스타와 하프가 어우러져 반짝이는 반주를 깔아주거나,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높은 음역에서 조용히 주고받는 순간 등 마치 한밤중에 듣는 조용한 왈츠 모음곡처럼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곡은 혼잣말로 추는 춤처럼 내면적이고 사적인 느낌이 강하다. 선율은 크게 고조되는 부분 없이 좁은 음역 안에서 속삭이다 사라지듯 끝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여운과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 곡을 들을 때는 소리의 질감에 있어 미묘한 변화와 악기 배합에서 오는 색채감에 귀를 기울이면 좋다. 작지만 의미심장한 한숨 같은 이 왈츠가 다음 곡의 활발함을 준비하며 슬며시 막을 내린다.
가장 짧고 번뜩이는 곡이다. 길이가 1분 정도 되는 짧은 이 곡은 쉼없이 튀어오르는 악상들과 경쾌한 리듬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는다. 관현악의 각 파트가 짤막짤막한 동기들을 주고 받으며, 마치 서로 장난치듯 익살스럽게 연주한다. 음량과 음색 면에서도 갑작스러운 전환, 대비가 두드러져 예측하기 힘든 전개에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갑자기 포르테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투티 이후 곧바로 찾아오는 피아니시모의 가벼운 속삭임과 같은 극단의 대비가 이어지는데, 이 곡의 위트 넘치는 전개가 백미라 할 수 있다. 리듬적으로는 불규칙한 악센트와 싱커페이션이 활용되어 3박자 왈츠 기반 위에 장난기 어린 엇박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음악은 한순간 비틀거리다 금세 균형을 찾는 춤사위처럼 들린다. 무도회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익살맞은 춤꾼이 연상되는 곡이다.
이 모음곡의 클라이막스와 같은 드라마틱한 전개가 돋보인다. 이 곡은 ABA 형식으로 구성되어 중간 부분에서 클라이막스를 형성하며, 전체 악곡에서 가장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한다. 도입부에서는 제5곡의 여운을 잇는 듯 신비롭고 나른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곧 서서히 긴장감을 쌓아가며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중간부에 이르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풍부하게 울려 퍼지면서 장엄하게 흘러가는데, 특히 금관 악기와 팀파니가 더해져 왈츠라기보다는 교향시의 한 대목처럼 웅대한 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이 순간은 마치 무도회의 밤이 정점에 달해 모든 무도회 손님들이 화려한 춤을 추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런 폭발적인 절정 뒤에는 다시 초반의 분위기가 돌아오며, 그 분위기는 차츰 가라앉는다. 다시 찾아온 A부분에서는 처음의 신비롭고 부드러운 선율이 한층 깊어진 슬픔과 회한을 담은 듯한 음색으로 변주된다. 여기서 조금씩 느려지는 템포와 점차 약해지는 다이내믹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곧 다가올 에필로그의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에필로그는 앞선 7개의 왈츠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며, 하나의 독립된 짧은 곡이라기보다 앞에서 선보인 왈츠를 회상하고 정리하는 마무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템포는 느리고 분위기는 꿈결처럼 아련하다. 피아니시모의 여린 소리로 시작하여 관악기와 현악기가 번갈아 가며 앞서 지나온 왈츠들의 주제 조각들을 속삭이듯 되풀이한다. 이를테면 첫 번째 곡의 리듬 동기나 두 번째 곡의 일부 서정적인 선율이 멀리서 희미하게 메아리치듯 등장하기도 하고, 다섯 번째 곡의 친밀하고 프라이빗한 정서가 변형된 화음으로 암시되기도 한다. 이런 회상의 단편들이 명료하게 들려오기보다 몽환적인 안개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듯해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선율이 살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라벨은 이 에필로그에서 관현악 색채를 최대한 절제하며, 마치 음악의 잔향만 남기는 듯한 효과를 나타낸다. 특히 첼레스타의 맑은 울림과 하프의 아르페지오, 목관악기의 새소리 같은 높고 가는 음형은 앞서 활기찬 춤의 기억들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이고도 쓸쓸한 밤 공기 속으로 녹아들게 한다. 황홀하고도 다채로웠던 왈츠의 향연은 이 에필로그에서 한숨을 내쉬듯, 잔잔히 사그라들고, 조용한 여운과 함께 막을 내린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여운이 사그라들 때, 마치 무도회의 밤이 끝나고 무도회장에 남은 불빛과 추억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광경이 그려진다.
https://youtu.be/V8kLmFvYso4?feature=shared
라벨의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는 이렇게 왈츠 장르에 대한 헌사와 해석을 동시에 담아낸 걸작으로, 우아한 전통과 모던한 아이러니가 어우러진 음악 여행과도 같은 곡이다. 각 왈츠의 개성을 느끼면서 전체를 관통하는 왈츠의 리듬과 색채를 놓치지 않는다면, ‘쓸데없는 일에서 오는 달콤하고도 새롭게 느껴지는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은 오는 2025.05.15.-16. 2025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정기 연주회 '2025 서울시향 드뷔시와 라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는 객원지휘로 휴 울프가 포디엄에서서 서울시향을 이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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