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 관람한 클래식 공연은 140회였다.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 개인 일정이 중복되면서 몇몇 좋은 공연을 많이 놓치긴 했지만 올해도 음악으로 참 풍성한 한 해를 보냈다.
이제는 음악이 흐르는 삶이 너무나 당연해졌기 때문에 임팩트가 강렬한 연주가 있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나름대로 음악적 경험을 안고 저녁 시간을 보내며 고단한 하루를 다양한 감정을 안고 마무리한 정도.
하지만 연말쯤 되면 꼭 한 해를 뒤돌아 보게 된다. <공연 결산>을 통해서 말이다. 올해는 어떤 공연들이 좀 더 기억에 남아 있을까?
콘서트 부문
1. 이자벨 파우스트 &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12.15)
조반니 안토니니와 이자벨 파우스트의 만남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에서 빛났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는 연주였다. 예상치 못한 해석에 시종일관 미소짓게 만들었기 때문. 특히 이 곡은 앞서 연주하였던 곡들보다 연주 퀄리티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올해 올린 모든 곡을 통틀어 KV 219가 가장 좋았다고 기록해 볼 수 있겠다.
2. 안토니오 파파노 경 & 런던 심포니(10.2)
클린컵에 가까운 말러 교향곡 1번이었다. 말러 특유의 쪼가 느껴지지 않은 연주였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었지만, 정돈된 연주에서 오는 편안함과 객석에 좋은 연주를 내보내려는 파파노의 열정이 잘 느껴진 연주로 기억되는 공연이었다.
3. 사이먼 래틀 &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11.20)
예정대로 브루크너를 들어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은 남는다. 여러 프레이즈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였던 브람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대 출력의 상한선이 보일지언정 섬세한 셈여림으로 곡을 풀어내는 구간을 비롯하여 두터운 질감과 온화한 음색으로 연주하였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오페라 부문
1. 예술의전당 기획 <오텔로>(8.18)
매력적인 빌런은 무엇일까. ‘악함’을 강조하기 위해 과잉된 표현이 이뤄져야 할까? ‘이아고’역을 맡은 바리톤 프랑크 바살로는 그런식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간사한 면모를 드러내며, 오텔로에게 질투심을 절묘하게 심어주는 치밀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탄탄한 성량으로 안정적인 노래를 들려주는 기본기도 좋았기 때문에 만족감은 배가됐다.
2. 서울시오페라단 <토스카>(9.8)
질투심 많은 ‘토스카’역을 맡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bis 때문에 공연 중간에 자신을 존중해달라는 멘트를 날린 게오르규가 연말이 되어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정작 관객에 대한 존중이 없었던 오페라 가수를 보고선 성숙한 관객, (때때로) 보다 성숙한 안내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보았다.
협주곡 부문
1. 파보 예르비 & 도이치 캄머필하모닉(12.18)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그려낸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선 자유로운 루바토의 세계가 여전했고, 특별히 발산하지 않는 에너지와 휴지부 비스름한 구간을 가져가며 감정적인 몰입감을 훌륭하게 전달해냈다.
2. 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Ⅱ(6.30)
연주를 하던 도중 객석을 바라보며 관객과 함께 소통하는 모습, 반짝거리는 협주곡 2번,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뒤늦게서야 캐치하면서 설득력이 있었던 협주곡 4번까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연주였다.(일구쌤 채널에서 영상으로 후기를 남긴 공연이기도 해 8번 항목에 기록할까 했지만 협주곡 부문으로)
독주 부문
1. 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 리사이틀(1.3-10)
연주자로부터 곡을 소개 받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마노프스키의 폴란드 민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통해 쫓고 쫓기는 멜로디, 표현적인 색채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건 이 곡의 8번 장송 행진곡이 1부에서 연주하였던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2. 세르게이 바바얀 피아노 리사이틀(8.30)
앞서 언급한 지메르만과 이유는 비슷하다. 바바얀이 조금 다른 건 에르마니아 민속 음악, 카탈루냐 민요 선율을 객석에 전달함으로써 일종의 ‘문화’를 소개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공연에서 미스터치가 있고, 음형의 전개가 지저분해 보였던 것들을 기록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논해야 하는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3.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6.15)
자유로운 루바토, 평소에 잘들리지도 않는 구간을 특별히 조명하여 강조하는 음형. 음악가가 전달하는 색다른 해석. 음악으로 퍼즐을 맞춰가는 재미.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은 그런 연주였다.
실내악 부문
조성진과 친구들(10.27)
이 공연에 참여한 몇 음악가들은 바로 전날까지 각자 바쁜 스케줄을 보냈었다. 조성진은 협연 일정으로, 몇 음악가들은 2024 서울국제음악제 참여 연주자로. 그럼에도 이들은 적절하게 앙상블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연주자 인력풀이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해보았던 날이다. 특별히 리게티 트리오를 연주하면서 불협을 통해 감정을 쪼개고 또 강조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시립교향악단
1. 하델리히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4.25)
하델리히가 연주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였다. 독특하게도 핀란드의 신화적인 뉘앙스를 일부 전달하며 오리지널 버전에 보다 적합해 보이는 연주이기도 했다.
2. 바실리 페트렌코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6.21)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졌던 연주였다. 드보르자크의 체취는 덜 나는편이었지만, 20일에 연주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연주(지속적인 음이탈)를 생각하면 SPO가 ‘다시 보니 선녀 같다’고 표현해야…
KBS교향악단
1. 799회 정기연주회(2.24)
미하일 잔데를링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은 짜임새가 돋보인 연주였다. 회색빛의 거리에서 나비 한 마리를 조명하며 작은 희망을 비추어낸 듯한 연주가 기억에 남는다. 앞서 채도의 변화를 통해 매 순간 노래하는 를뢰의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도 내게 있어서는 굉장히 훌륭했다.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를 듣는 것처럼.
2. 정명훈의 Chorall II(7.12)
사실 최근 그의 행보와는 달리 새로운 레퍼토리로 공연이 기획되어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연주가 아니었나 싶다. 종교음악과 오페라적 성격 사이에서 중립이 이뤄진 연주로 메조 소프라노 김정미와 소프라노 황수미의 곡선과 직선이라는 두 선의 절묘한 차이가 인상적인 연주였다.
감사한 사건
1.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5.25)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비평과 글쓰기 강의’를 통해 칼럼니스트로 전문 매체에 처음 글을 올린 일종의 ‘사건’이었다. 테너 로베르토 사카는 나름 연륜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첫 날 공연과는 달리 두 번째 공연인 25일 공연에서는 기량면에서 너무 아쉬웠던 시간이었다.
2. 정명훈 &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10.5)
온쉼표의 제안으로 프리뷰, 즉 공연을 소개하고 곡을 해설을 해보았던 ‘사건’도 있었다. 나의 첫 해설은 10월 5일 공연이었는데, <운명의 힘> 서곡을 설명하기 위해 B급 감성을 살려 발표자료를 제작한 게 나름대로 ‘킥’이었다. 그게 일정부분 먹혀들어 대만족. 공연 자체는 앙코르로 연주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이들의 정체성을 잘 드러난 유려한 연주였다고 기억된다.
끝으로
음악가가 늘 같은 해석만 들려주지 않는 것처럼 나의 감상과 다른 이들의 감상이 다른 게 늘 재미가 있다. 올해도 함께 웃고 떠들며 공감해주셔서 감사함을 느낀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그리고 어제 있었던 안타까운 사건에 마음이 편치가 않다.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며 유가족분들께 온 마음을 다해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