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by 이강원

작품 배경과 구성

소비에트의 억압 속에서 탄생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작곡자가 자신의 내면을 암암리에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1947-1948년 즈다노프의 예술 탄압이 한창일 때 이 작품은 완성되었지만,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는 곡을 발표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서랍 속에 간직해야 했다. 이후 스탈린 사후 분위기가 누그러진 1955년에야 비로소,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독주로 레닌그라드에서 초연되었으며, 러시아 안팎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이스트라흐는 이 곡의 헌정자이자 실질적 협력자이기도 했다. 초연 전부터 연주 해석과 카덴차 구성에 대해 쇼스타코비치와 긴밀한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특히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이어지는 카덴차 부분의 구성과 연주적 표현에 깊이 관여했다.


이 협주곡은 전통적인 3악장 형식에서 벗어나, 느림–빠름–느림–빠름의 네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고전 협주곡보다는 오히려 바로크 협주곡의 형식을 연상시킨다. 각 악장은 '녹턴', '스케르초', '파사칼리아', '부를레스카'라는 제목을 갖고 있으며, 단순한 기교 중심의 협주곡을 넘어 교향곡적 서사와 내면적 깊이를 지닌 구조로 전개된다. 특히 3악장 이후 이어지는 카덴차는 얼핏 하나의 악장처럼 보여질만큼 3악장과 4악장을 서사적으로 연결해준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쇼스타코비치가 당대에 바로크적 구성 원리에 관심을 가졌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관현악 편성에서도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당국의 요구에 따라 때때로 과장된 승리의 팡파레를 삽입하던 쇼스타코비치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트럼펫과 트롬본을 과감히 배제하고,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의 목관악기, 네 대의 호른, 튜바, 팀파니, 탬버린, 실로폰, 첼레스타, 하프 등이 포함되어 다채롭고도 어두운 색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룬다. 이러한 음향적 배치는 독주 바이올린의 고독한 내면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트럼펫의 빈자리는 오히려 깊은 정서적 울림으로 채워진다.


음악적으로 이 협주곡은 고전적 형식미와 현대적 표현어법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 개의 악장은 각각 뚜렷한 개성과 상징을 지니고 이어지며, 비탄과 풍자, 정적과 광기와 같은 이중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악장과 3악장은 느리고 비통한 정서를 띠며, 2악장과 4악장은 빠르고 풍자적이며 때로는 악마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실제로 오이스트라흐는 1악장을 ‘억눌린 감정의 표현’, 2악장을 ‘악마적’이라 묘사한 바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협주곡을 넘어, 쇼스타코비치가 겪었던 정치적 억압과 예술적 고뇌, 그리고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을 날카롭게 투영한 음악적 자서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장으로 엮은 고독과 저항의 드라마


제1악장: 녹턴 (Nocturne.Moderato)

‘녹턴’이라는 부제가 붙은 1악장은, 마치 한밤중 고요 속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독백처럼 깊고 음울한 정서를 담고 있다. 서두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낮고 어두운 음역대로 조용히 주제를 노래하고, 오케스트라는 이를 은은하게 떠받치며 배경을 형성한다. 선율은 형식적 구분 없이 흐르듯 변모하며 이어지는데, 마치 우울한 내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과정에서 오케스트라는 짙고 어두운 색채로 배경을 만들어내며, 클라리넷과 바순 등 목관 악기들이 교대로 등장해 독주 바이올린의 흐름을 섬세하게 받쳐준다. 이러한 어둡고도 부드러운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고독하게 이어지는 바이올린 독백을 더욱 선명히 부각시킨다.


이 악장의 두드러진 특징은 극도로 절제된 감정 표현에 있다. 전반적으로 감정이 크게 고조되거나 음악이 급격히 전개되는 구간 없이, 느리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길게 지속된다. 쇼스타코비치의 의도대로 겉으로는 강렬한 감정을 억누른 채 절제된 노래가 이어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깊은 슬픔과 불안, 그리고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내면의 침전물이 서려 있는 듯하다. 바이올린이 간헐적으로 들려주는 섬세하고 감정 어린 선율 속에서는, 숨 막히는 어둠을 비집고 나오는 한 줄기 위안과 희망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오케스트라는 전체적으로 독주자와 충돌하지 않고 절제된 대위법적 반주를 조용히 이어간다. 특히 현악기군과 목관군이 완전히 양분되어, 번갈아 독주를 받쳐 주는 독특한 편성이 돋보인다. 클라이맥스 없이 점점 가라앉던 음악은 악장 말미에 이르러 더욱 고요해진다. 독주 바이올린은 약음기를 달고 한층 속삭이듯 연주하며, 현악기들과 하프는 사라질 듯 미묘한 반주로 그 뒤를 이어받는다. 그렇게 1악장은 매우 조용하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된다.



제2악장: 스케르초 (Scherzo.Allegro)

쉼 없이 튀어나오는 제2악장 스케르초의 첫 음은, 1악장의 잔향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3/8박자의 경쾌한 리듬과 날카로운 음형 위로, 독주 바이올린과 플루트가 장난기 어린 주제를 제시하며 이 악장이 시작된다. 얼핏 듣기에는 밝고 유쾌하게 들리는 선율이지만, 여기에 머금은 미소는 왠지 모르게 공허하고, 인위적인 즐거움을 가장한 듯한 인상을 준다. 실제로 한 해설자는 이 부분을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의 웃음’에 비유했는데, 이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그 속은 텅 빈 껍데기와도 같은 희극성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당시 겉으로는 당국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던 예술가들의 처지를 떠올리면, 이러한 음악적 풍자는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윽고 분위기가 반전되는 트리오 부분이 등장한다. 스케르초의 광란 속에서 잠시 2/4박자로 바뀌며 나타나는 이 구간은, 다소 느긋하면서도 어딘가 민속적인 색채의 선율을 들려준다. 이는 마치 꼭두각시 놀음 뒤에 숨어 있던 조종자가 문득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표면적으로는 즐거움과 환희의 춤곡처럼 들리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이 선율에 묘한 비틀림과 광기를 불어넣어, 음악을 점차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이때 유대인 전통음악인 클레즈머 풍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왁자지껄한 민속 무도회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는 당시 소련에 퍼져 있던 반유대주의 정서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은근한 저항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트리오가 끝나면, 다시 처음의 스케르초가 돌아오고, 음악은 흥분에 찬 광기의 분위기로 물든다. 빠른 템포와 함께 조성이 끊임없이 변화하며, 꼭두각시였던 인형은 이제 자신이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할 만큼 광기에 휘말려 간다는 해석도 있다. 이처럼 소용돌이치는 풍자와 조롱이 가득한 음악 속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현란한 기교를 총동원하며 오케스트라 위를 춤추듯 질주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에 자신의 DSCH 모티브(독일식 음명 D–E♭–C–B, Dmitri SCHostakovich의 이니셜에서 유래)를 은밀히 숨겨 놓았다. 이 네 음으로 이루어진 동기는 다양한 음형 속에서 변형되어 등장하며, 이후 교향곡 제10번, 현악사중주 제8번 등 여러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세계에 관심이 있다면, 이 음형을 기억해 두는 것도 좋다. 2악장의 종결부에서는 독주 바이올린과 팀파니, 실로폰 등 타악기까지 가세하여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며, 마치 악마가 조롱과 승전의 웃음이 뒤섞인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악장은 마무리된다.



제3악장: 파사칼리아 (Passacaglia.Andante) –Cadenza

이윽고 무겁고 장중한 장송 행진곡으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파사칼리아(Passacaglia)’는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변주 형식으로, 반복되는 저음 주제(오스티나토 베이스) 위에 다양한 변주가 층층이 쌓이며 전개되는 구조를 갖는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런 고전적 형식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느리고 장중한 성격의 이 악장을 작곡했다. 먼저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저음 현악기군이 묵직하고 엄숙한 8마디 가량의 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된다. 이 저음 진행은 마치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묵묵히 반복되며, 그 위로 호른이 맥박처럼 뛰는 리듬을 더하고, 현악기의 아르페지오 등이 차고차곡 쌓이며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변주가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음형과 악기가 더해지며 텍스처는 점점 풍부해진다.


한 차례 조용하게 연주되는 목관 악기들의 변주가 지나간 뒤,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하여 애절하고 내밀한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점차 마치 비탄에 찬 탄식처럼 들리며, 점차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대화를 이어가는 가운데, 변주의 흐름은 점점 격정적으로 고조된다. 3악장은 가장 내밀한 감정이 응축된 지점으로, 장대하고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음악학자 보리스 슈바르츠는 이 부분을 두고 ‘마치 대리석에 새긴 듯 간결하고 품위 있게 표현된 장엄함’을 지녔다고 평했는데, 말 그대로 거대한 기념비 같은 장중함과 비통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20세기 작곡가들 중에는 엄숙한 파사칼리아 형식을 활용해 강압적 권력의 거대한 바퀴와 그에 짓눌린 개인들의 비극을 묘사한 사례가 있다. 예컨대,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에서 주인공이 겪는 참상을 파사칼리아로 형식으로 표현한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쇼스타코비치 역시 파사칼리아 악장을 억눌린 시대의 비탄의 노래처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되는 저음 주제는 끝없는 억압의 굴레이자 역사적 숙명을 상징하며, 그 위에 펼쳐지는 독주 바이올린의 통곡은 그 억압에 짓눌린 개인들의 절규를 대변하는 듯하다.


여러 변주를 거치며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 독주 바이올린이 무거운 저음 주제를 연주하며,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에 맞서 싸우듯 장대한 울림을 터뜨린다. 이어 바이올린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원래 선율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번에는 한층 더 짙은 비탄과 장렬한 정서를 머금은 채 돌아온다. 음악은 한층 고양된 분위기로 속도를 늦추며 거대한 절정에 이른 뒤 점차 잦아든다. 장송곡 같은 파사칼리아의 변주부가 마무리되면, 곧이어 독주 바이올린의 긴 카덴차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카덴차는 통상적으로 1악장이나 마지막 악장 말미에 삽입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에서 3악장 파사칼리아와 4악장 부를레스카 사이에 독립된 악장처럼 배치했다. 오케스트라의 장대한 연주가 뚝 끊기고 나면, 카덴차에서는 마치 시공간이 정지된 공허한 무대 위에서, 현실과 꿈의 경계 너머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독주 바이올린의 고독하고 처절한 독백 속에는 앞서 등장했던 주요 악상들이 하나둘 회상되는데, 2악장의 DSCH 모티브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고, 스케르초에서 등장했던 클레즈머 풍 테마 역시 바이올린의 최고음역에서 날카롭게 되살아난다. 이내 음악은 점차 속도를 끌어올리며 격정을 불태우고, 피날레 악장의 첫 마디를 힘차게 밀어올리듯 끌어내며, 쉼 없이 4악장으로 돌입한다.


제4악장: 부를레스카 (Burlesque.Allegro con brio – Presto)

4악장은 바이올린의 카덴차에 이어 등장하며, 광기로 뜰끓는 해학과 풍자가 응축된 인상을 풍긴다. ‘부를레스카’는 풍자극을 의미하는데, 그 이름처럼 이 악장의 분위기는 짙은 익살과 풍자, 그리고 날 선 광란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카덴차의 마지막 음과 동시에 팀파니가 우렁차게 내리치며 악장이 시작되는데, 이는 앞서 바이올린의 절규와 폭발시킨 감정을 단숨에 차단하는 듯한 강한 충격을 주는 효과를 자아낸다. 팀파니의 강렬한 타격에 실려 등장하는 주제 선율은 빠르고 힘차며, 다소 공격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그 과장된 에너지로 인해 오히려 익살스럽고 희화화된 느낌마저 자아낸다. 이것은 마치 폭압적인 권력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다 되레 희극적으로 보이는 역설적인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목관 악기들과 독주 바이올린이 주고받으며, 마치 광대의 춤을 연상시키는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대목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현란한 스케일과 아르페지오를 펼치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벌인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춤추는 곡예사처럼, 극한의 기교를 아찔하게 선보이는 순간이다. 그 사이사이 오케스트라는 변화무쌍한 리듬과 선율을 휘몰아치듯 펼쳐내고, 앞선 악장들에서 들려왔던 동기들이 마치 기억의 파편처럼 스쳐 지나간다.


악장은 점차 통제 불능의 에너지로 폭주하고, 선율과 리듬, 악기들의 음색이 뒤엉킨 혼돈 속으로 질주한다. 그 끝에서 음악은 더는 형태를 갖추려 하지 않고, 광기의 소용돌이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코다에서는 앞서 등장했던 주요 주제들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고, 관현악의 다이내믹 역시 급격한 강약 변화를 반복하며 흥분을 극도로 고조시킨다. 그 절정의 혼돈 속에서, 처음부터 내달리던 팀파니의 강렬한 동력이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압도하며, 모든 악상을 매섭게 짓누르는 가운데 곡은 막을 내린다. 이 결말은 겉보기에 전 악단이 폭발적인 A장조의 승리를 향해 질주하며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그 환희의 피날레가 과연 진정한 승리의 환호인지, 아니면 거친 폭력에 의해 강요된 가면을 쓴 환희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https://youtu.be/Pbazgm099I8?feature=shared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늘 그렇듯, 명랑해 보이는 장면 뒤에는 웃음을 머금은 채 울고 있는 영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숨막히는 부를레스카가 청중에게 깊은 전율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협주곡을 마무리한다는 사실이다. 독주 바이올린은 마지막 순간까지 극한의 기교를 쏟아내고, 오케스트라 역시 장대한 결말을 빚어낸다. 이렇게 해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고통과 풍자, 비애와 해학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여정을 거쳐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음악 속에 담긴 암울한 시대의 은유와 예술적 승화를 함께 느끼며, 이 작품이 전하는 깊은 여운과 메시지를 곱씹어보길 바란다.




이 곡은 오는 2025.05.15.-16. 2025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정기 연주회 '2025 서울시향 드뷔시와 라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번에는 객원지휘로 휴 울프가 포디엄에서서 서울시향을 이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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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usic.apple.com/kr/playlist/20250515-2025-%EC%84%9C%EC%9A%B8%EC%8B%9C%ED%96%A5-%EB%93%9C%EB%B7%94%EC%8B%9C%EC%99%80-%EB%9D%BC%EB%B2%A8/pl.u-PDbYPegsork9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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