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송현, ‘TIMESCAPE’ 쇼케이스 리뷰

by 이강원

피아니스트 김송현이 피아노 소품집 <TIMESCAPE>를 발매했다. 앨범은 12개의 피아노 소품을 엮어 사계절을 그려내는데, 앞 트랙의 마지막 음이 다음 트랙의 시작 조성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배치한 치밀한 설계가 돋보인다. 나아가 마지막 트랙에서 마침표로 끊지 않고, 다시 트랙의 제일 첫 곡에도 동일한 문법을 적용해 앨범을 반복 청취하는 경우 앨범 전체가 하나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며 자연의 섭리를 음악으로 담아냈다.


수록곡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4월에 배치한 멘델스존의 ‘무언가’, 10월에 배치한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가을의 노래’와 같이 클래식 소품을 주축으로 하되 2월에는 프레드 허쉬의 'Valentine', 12월에는 키스 자렛의 'Be My Love' 같은 재즈 레퍼토리를 적절히 배합하여 다채롭게 트랙을 구성했다. 특히 5월에 배치한 거쉰의 ‘Embraceable You’는 뮤지컬 <Girl Crazy>에서 출발한 선율을, 얼 와일드가 고난도의 클래식 피아노 편곡 문법으로 재번역한 곡이다. 거쉰의 언어와 와일드의 필체가 겹쳐진 이 곡은 앨범 전반에 걸쳐 흐르는 ‘클래식과 재즈 사이‘ 경계를 상징하는 곡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콘셉트는 음악을 넘어 라이너 노트로도 확장된다. 실물 앨범을 구매하면, 120페이지 분량의 북앨범을 함께 받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연주자가 직접 쓴 시와 산문, 사진이 곡마다 배치되어 있어 음악이라는 청각적 경험을 시각과 텍스트의 영역으로 넓히며 공감각적인 감상을 유도한다. 특히 작가 목정원, 임경선, 이훤이 원고를 함께 읽고 조언하며 텍스트의 결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은 점이 앨범을 종합예술의 형태로 밀어붙이는 기획과 맞물린다.


결과적으로 <TIMESCAPE>는 앨범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는 비킹귀르 올라프손, 이고르 레빗을 떠올려보게 한다. 김송현의 이번 앨범이 특별한 이유는 피아노 소품을 활용해 심리적으로 곡을 듣기 편안하게 배치했고, 자칫 찰나의 호흡으로 흩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청자의 내면에 잔잔히 일렁이는 사유의 물결로 이끈다는 점이다. ‘헤비하지 않은 클래식’, ‘듣기 쉬운 피아노 음악’ 쪽으로 무게를 두면서 말이다.



지난 2026년 1월 6일, 한남동에 위치한 ‘사운즈S’에서 김송현은 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해당 쇼케이스에서는 다음 앨범에 대한 구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클래식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대중성을 살짝 비틀어 또 다른 틈새를 찾아내어 미분하듯 파헤치는 집요함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드러났다. 그런 경향이 이번에는 피아노 음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유연함으로 발현됐다고 볼 수 있겠다.


큐레이팅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대이다. 김송현의 이번 앨범은 방대한 클래식 레퍼토리 안에서 곡의 배경을 모르고 들어도 각 곡의 연결과 실물 앨범을 통한 감각의 확장, 그리고 청자의 경험 설계라는 질문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음악 소비 속도가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 리스너들을 단일 곡이 아닌 ‘앨범’이라는 맥락 안에 머물게 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한편, 쇼케이스 무대에서 확인한 김송현의 실연은 다이내믹의 편차가 크지 않은 구간에서 강점을 보였다. 적절한 페달링으로 주선율을 노래하듯 펼쳐냈고, 보조 선율도 배경을 풍부하게 만들어 냈다. 또한 과하지 않은 루바토로 곡에 뉘앙스를 더하는 순간들이 특히 돋보였다.


다만 성부가 중첩되거나 도약이 잦은 프레이즈에서는 미세하게 음형의 선명도가 흐려지거나 흐름에 층위가 생기는 대목도 감지되었다. 또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다이내믹이 확장되는 구간에서 고음역의 배음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점은 아쉬웠으나, 이는 소규모 공연장인 사운즈S의 음향적 한계로도 볼 수 있다.


잔향이 풍부한 대형 홀이라면 곡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오는 3월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이뤄지는 리사이틀에서, 홀의 잔향이 이 음악의 색채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확인할 수 있겠다.


글 이강원(클래식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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