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뉴욕 플랫아이언 페이스트리 부티크 Lysée의 이은지 오너 셰프
한국, 프랑스, 미국의 파인 다이닝 씬을 넘나들며 올해 6월 뉴욕 플랫아이언에 자신만의 정체성과 감각을 녹여낸 페이스트리 부티크 Lysée의 이은지 오너 셰프를 만났다.
*본 기사는 유료 모바일 매거진 투룸매거진 25호에 수록된 콘텐츠입니다.
에디터 부소정 사진 제공 이은지
Lysée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Lysée는 제 성인 Lee와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 Musée의 합성어로 저의 디저트 갤러리라는 뜻이에요. 한국과 프랑스를 거쳐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지내는 제 정체성을 녹여냄과 동시에 세 나라의 문화가 조화롭게 담긴 공간과 디저트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셰프님의 이름에 갤러리라는 의미를 더해 이름 지은 공간이라고 하셨는데요, 미술을 좋아하시거나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예술 공간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미술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도 미술을 엄청 좋아해요. 두 분께서 참여하시는 사생대회에 따라가기도 하고, 화가 친구분들도 계시고 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미술을 많이 접했어요. 어려서부터 종이 접기나 도자기, 찰흙, 지점토를 가지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고, 그림 그리기도 무척 좋아했어요. 그러다 페이스트리 셰프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예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데 맛있게 먹을 수도 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무조건 저 직업을 선택해야겠다’ 싶었죠.
그러네요. 좋은 것에 좋은 것을 더해 다방면으로 즐길 수 있으니까요.
예쁘고 달콤한 디저트를 보고 먹으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힐링이 되잖아요. 그런 행복한 경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선물하고 싶었었어요.
Lysée를 열기 전까지의 이력이 굉장히 흥미로워요. 어린 나이에 유학길에 올라 파리에서 꽤 오래 지냈는데 뉴욕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막연하게 ‘뉴욕에서 언젠가 한번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18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제과, 제빵 과정을 이수하고 파리 소재 미슐랭 1스타 Ze Kitchen Galerie 레스토랑에서 3년, 미슐랭 3스타 Le Meurice 호텔에서 4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미식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오래 있었으니 마찬가지로 음식 문화와 미식 경험이 발달한 뉴욕에도 한번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차에 당시 근무 중이던 Le Meurice 호텔의 셰프님이 제게 부셰프(sous-chef) 포지션을 제안했어요. 그와 동시에 뉴욕 정식당의 총괄 페이스트리 셰프 제안도 받게 되어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 결과 뉴욕행을 결정했고요..
둘 다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네요.
둘 다 너무 감사한 제안이었는데 프랑스에서 10년 가까이 지내기도 했고, 이제는 저만의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컸어요. 제가 있었던 Le Meurice 호텔은 워낙 프렌치 위주의 메뉴로 구성되어 있어 아시아적인 요소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아시안 재료를 가미해 만들 수 있는 디저트 아이디어들을 별도로 기록해 놓고는 했어요. 전통 한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인 정식당에서 내가 여태까지 프랑스에서 배워온 스킬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해 잘 표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뉴욕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어요.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워낙 팬이었던 곳이기도 했고요.
그러면 뉴욕에 오신 이후부터 한국식 재료를 가미한 새로운 형식의 디저트를 만들기 시작하신 건가요?
동남아와 일본 요리를 바탕으로 한 프렌치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 Ze Kitchen Galerie에서 근무할 때부터 여러 작은 시도들을 하며 한국적인 재료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페이스트리 전문 셰프로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갈망이 커져서 Le Meurice 호텔로 옮겨 전문적인 스킬도 많이 배웠어요. 식재료부터 시작해 한국적인 미를 디저트의 모양새에 담아내는 것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요. 프랑스에서 쌓아온 이 모든 경험들을 접목해 실행에 옮긴 곳이 뉴욕의 정식당이었어요. 제가 처음 만들었던 게 유자 모양의 디저트였고, 이후에 된장과 옥수수를 넣은 디저트, 가마솥과 기와 모양의 디저트도 만들었어요.
정식당에서 근무하는 동안 프랑스 디저트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유럽인 최초로 준우승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2016년 3월부터 정식당에서 근무했는데 1년이 좀 넘었을 무렵 <Qui sera le Prochain Grand Pâtissier?>라는 프랑스 파티시에 경연 프로그램으로부터 섭외 연락이 왔어요. 뉴욕에 와서 초반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기에 이 방송을 보면서 다시 열정을 키워나갔을 만큼 굉장히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죠. 처음에는 제가 뉴욕에 있어서 참가하지 못할 것 같아 친구를 추천하겠다고 했더니, 비자가 있으면 상관이 없으니 생각해보고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고민하다 정식당 팀원들에게 나가도 괜찮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서포트를 해줄 테니 나가 보라’고 해주셔서 참가하게 됐어요.
프렌치 레스토랑, 프렌치 아시안 퓨전 레스토랑, 디저트 경연 프로그램, 그리고 뉴코리안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아오시면서 이제는 셰프님만의 공간이 생겼는데요, 이전까지의 경험과 창업은 또 다른 경험일 것 같아요.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가요?
정식당에서 5년간 페이스트리 셰프로 근무했을 때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정식당의 페이스트리 메뉴와 서비스를 발전시키는 데 저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았는데, 창업을 해서 오너 셰프로 일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더라고요. 2020년 2월에 저와 같은 페이스트리 셰프인 남편이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넘어온 뒤, 몇 달간 레시피 테스트와 개발을 하고, 메뉴를 짜고, Lysée를 열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고, 여기서 일이 터지면 저기서 또 일이 터지더라고요. 이 모든 것을 저희 둘이 책임을 지고 운영하다 보니 매일이 배움과 도전의 연속이에요. 그래도 함께 열심히 해주는 팀이 있고 와주시는 손님들이 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운영하고 있어요.
오픈 준비를 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저희 공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닥이나 천장, 기둥, 계단, 메뉴판 등 실내 인테리어에 쓰인 많은 자재들이 한국에서 들여온 것들이에요. 팬데믹으로 원목 기둥, 기와, 자개 벽 등 국산 인테리어 자재를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비용도 너무 비싸고 배송 시간도 오래 걸리더라고요. 매장 내 오븐 등 주방설비 및 기기 조달도 마찬가지였고요. 사실 2022년 2~3월 중 오픈 예정이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오픈이 몇 달간 미뤄졌다가 7월까지 미루는 건 아니다 싶어 6월에 오븐도 없이 오픈을 했어요. 조그만 미니 오븐을 두 대 빌려서 운영하다가 8월에 오븐을 받으면서 케이크 굽는 시간이 6시간에서 한두 시간으로 줄었죠.
많은 우여곡절 끝에 Lysée가 탄생하게 된 거군요. Lysée의 디저트 컬렉션에 대해 얘기해볼까 해요. 각각의 디저트마다 특색 있는 재료와 모양을 갖추고 있는데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디저트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여러 연구와 시도를 통해 더 좋은 게 탄생하기도 하고요. 디자인과 예술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기도 해요. 우선 식재료에 대해 잘 알아야 알맞은 재료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다른 디저트들과 차별성을 둘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하며 접근하기도 하고, 한식 요리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우엉 반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우엉을 넣어 만든 디저트도 있었어요. 또 지금 판매 중인 흑임자 간장 캐러멜 쇼트 브레드가 있는데, 거기엔 한식의 기본 베이스라고 할 수 있는 참기름과 간장이 들어가요.
생각했던 것만큼 잘 어우러지지 않았던 재료도 있나요? 머릿속에서는 무척 괜찮았는데 결과물이 생각한 만큼 잘 나오진 않았던 거요.
깻잎이요. 안에 유자와 청사과가 들어있는 디저트였어요. 한국적인 허브를 뭘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 제가 좋아하는 깻잎을 써볼까 했는데,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향이 약해서 ‘아 이래서 안 쓰는구나’ 싶더라고요 (웃음). 깻잎 향을 제대로 내려면 깻잎을 많이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전반적인 맛의 밸런스가 깨지고요.
어려운 재료이긴 하네요.
근데 생각만큼 결과물이 잘 안 나오니까 더 도전해서 해내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저것 해보다가 깻잎을 넣은 레모네이드와 머랭을 만들어봤는데, 그건 상큼하니 괜찮더라고요.
앞으로 출시될 메뉴에 담고 싶으신 맛이나 재료가 있을까요?
계절이 겨울로 넘어가면서 흑임자 간장 캐러멜 쇼트 브레드 대신 대추 크림을 사용한 쇼트 브레드가 나오고, 계절 음료로는 수정과와 고구마 라테가 추가될 예정이에요. 가급적 제철 재료를 쓰기 때문에 기존의 무화과 타르트는 서양배와 한국 배를 함께 섞어 만든 타르트로 바뀌어요. 요새는 그래도 뉴욕 내 다양한 아시안 레스토랑이 늘어나면서 아시안 페어(Asian pear)라고 불리는 한국식 배를 좀 더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디저트에 쓰이는 재료로는 많이 생소해하는 것 같아요.
일주일 중 5일은 영업, 하루는 영업 준비를 하시다 보면 단 하루 주어지는 휴일이 너무도 소중할 것 같아요. 보통 휴일에는 뭘 하며 보내시나요?
오픈 초기에는 한 달 반 넘게 남편과 거의 20시간씩 일했어요. 나중에 많이 쉬면 되니까 지금 열심히 해야죠 (웃음). 월요일 하루 쉬는데 장 보고, 밀린 일처리를 하다 보면 거의 하루가 끝나요. 여유가 나면 맛집에 가거나 새로운 메뉴 뭐할지 구상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해요.
그럼 셰프님이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맛집은 어딘가요?
너무 많은데… 뉴욕에서는 Jua라는 한식당을 정말 좋아하고, 고기 좋아하시면 한국식은 COTE, 아메리칸 스테이크 하우스 스타일은 Hawksmoor, 그리고 이탈리안 스타일의 Carne Mare라는 곳도 맛있어요. 칵테일을 좋아하시면 Double Chicken Please도 좋고요. 너무 많네요. 하나를 꼽자니.
셰프님이 앞으로 그리시는 삶의 모습이 궁금해요. 뉴욕에 계속 계실 예정이신가요 아니면 한국,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에 이은 네 번째 방을 구상하고 계신가요?
저는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Lysée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아예 좌석이 없이 운영을 하다 현재 2층은 디저트 갤러리이자 테이크아웃을 위한 공간으로, 1층은 손님들이 앉아서 디저트를 드시는 공간으로 꾸렸어요. 저는 모든 디저트 분야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접시 위에 디저트가 아름답게 올라가는 플레이팅 디저트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디저트 테이스팅 코스 등 다양한 기획을 하고 있어요. Lysée라는 공간이 단순히 디저트 가게를 넘어 디저트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선보이고 많은 분들이 더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이곳 뉴욕 본점부터 시작해 제가 오랜 시간을 보낸 파리와 서울에도 지점을 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LYSÉE
44 E 21ST ST NY, NY 10010
Open Wed–Sun, 12pm–6pm
웹사이트: https://www.lyseenyc.com/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ysee.nyc/?h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