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보러 가봐야지 했다가 일정에 밀려 끝나기 2일 전에 겨우 다녀온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이번 전시는 로버트 리먼이 수집한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에서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이르는 프랑스 회화 전으로 2025년 11월 14일부터 오늘까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1에서 진행되는 전시. 보통 평일에 전시를 보러 가는 편인데, 전시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급하게 주말에 다녀오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작품들을 너무 정신없이 본 느낌이 들어 만족스러운 전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작품들을 남겨본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의 첫 시작은 달리가 오마주한 베르메르의 원작 <레이스를 뜨는 여인>으로 시작. 바로크 원작을 달리만의 해석으로 그려낸 부분이 흥미로웠던 작품을 지나 처음 만나게 된 섹션은 Section 1 - 더 인간다운, 몸. "오랫동안 예술의 중심이었던 인체의 표현이 19세기에 이르러 인간 중심의 사고로 옮겨가는 양상"이 담겨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중 나의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폴 고갱의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 이전부터 다뤄져 온 '인체'라는 주제가 아름다움과 신화적으로 표현되었다면, 이 섹션의 작품들의 화가들이 표현한 '인체'가 '더욱 인간다운 몸'으로 표현이 되는 부분이 느껴졌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범죄를 저지를 때만큼이나 교묘한 속임수와 영악함, 그리고 대담함이 필요하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그리지 마라. 의도적으로 꾸미고, 마지막에 자연스러움 한 점을 보여라 - 에드가 드가
다음으로 넘어간 섹션은 Section 2 - 지금의 우리, 초상과 개성. "개성과 사회적 유형을 담아 유행했던 19세기 인물화의 특징과 다양한 인물의 군상"들이 담겨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전시 섹션 중 가장 사람이 많았던 전시실로 이곳에서는 초상화 느낌의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섹션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품인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잘 느껴지던 작품이었다.
우리는 세상의 감각으로 느낀다. 색채, 형태, 소리 - 그 모든 것은 감각의 창을 통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어떤 형상도 혼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야만 존재는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 에두아르 뷔야르, 1888년 11월 11일 일기에서
사람이 정말 많아서 겨우 빠져나와 이동한 세 번째 섹션, Section 3 - 영원한 순간, 자연에서. "산업화 시대에 변화한 자연의 의미와, 야외에서 직접 마주한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려낸 작품들이 많았는데, 나의 취향을 가장 저격한 섹션이었다. 사실 내가 인상주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연'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루기 때문인데, 풍경에 집중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색채를 담아낸 작품들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한다. 가장 첫 작품이었던 앙리 에드몽 크로스의 <별이 있는 풍경>. 신인상주의적 기법이 가득 담긴 작품으로 유화가 아닌 수채화와 먹, 펜으로 그려진 그림이 한동안 눈길을 사로잡았다.
역시나 나의 취향을 저격했던 섹션이라 내 눈이 또 사로잡혔던 작품은 세잔의 <자 드 부팡 근처의 나무와 집들>. 처음에 살짝 봤을 때 수채화 작품인 줄 알았더니 자세히 보니 유화였던 세잔의 작품. 반 고흐의 작품처럼 두껍게 칠해진 유화 그림들도 매력이 있지만, 세잔의 작품과 같이 수채화처럼 맑고 얇게 칠해진 작품도 그 나름의 매력이 가득했다. 반 고흐의 그림도 그렇고 나는 유독 남프랑스에서 그려진 작품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작품 감상의 결론, 언젠간 꼭 남프랑스에 가봐야겠다(?).
우리 눈에 닿은 모든 것은 허물어지고 사라지지 않는가? 자연은 늘 같은 잘에 있지만, 우리에게 비치는 모습은 단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 너머에 있는 자연의 영원함을 전율로 담아내야 한다. 그 예술 안에서 영원의 한 조각을 맛보게 해야 한다. - 폴 세잔
행복했던 세 번째 섹션을 지나 다음으로 도착한 섹션, Section 4 - 서로 다른 새로움, 도시에서 전원으로. "도시, 교외, 농촌을 오가며 변화하는 파리의 모습을 담은 예술가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던 곳이다. 센 강변을 따라 늘어선 울창한 밤나무의 풍경을 담아낸 시슬레의 <밤나무 길>은 무언가 시골과 도시 그 중간의 느낌이 함께 느껴지던 작품이었다. 그 중간의 접점을 완벽하게 담아낸 그림이라 그랬는지 작품에 담긴 '도시'라는 주제가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오던 작품이었다.
다시 도시를 마주하는 이 기쁨이란! 농부들과 시골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날 때 새로운 영감이 샘솟는다. 시골의 고요함과 이곳의 소란스러움처럼. - 빈센트 반고흐, 1886년 1월 2일 테오 반 고흐에게 쓴 편지에서
전시의 마지막 섹션, Section 5 - 거울처럼 비치는, 물결 속에서. "빛과 색채의 실험을 가능하게 한 물가 풍경"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던 섹션으로 세 번째 섹션에 이어 나의 취향을 다시 한번 저격해 버렸던 섹션이다. 섹션을 둘러보며 눈길이 닿은 작품은 보나르의 <베르농 근처 센강의 집>은 작품의 색감이 모네를 떠올리게 만들던 작품. 찾아보니 그림의 풍경인 '베르농'이 바로 모네의 '지베르니' 옆 동네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작품에 담긴 빛과 색채가 모네의 작품과 비슷했는데, 보나르의 작품은 좀 더 색감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눈에 담은 작품은 블라맹크의 <샤투에 뜬 배>. 반 고흐의 임파스토 기법을 좋아하기에 블라맹크의 작품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인상주의의 '빛'을 야수파의 특유의 '강렬함'으로 표현해 낸 작품이라고 한다. 센강의 빛이 강렬한 색으로 표현되고, 거친 붓질로 그려진 작품은 '센강'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그려냈는데도 보나르의 작품과 이렇게 느낌이 다르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니. 참 놀라운 그림의 세계란.
포근히 감싸 않은 황금빛 해안, 작은 해변에 부딪히는 푸른 바다, 나만의 바닷가. 저 멀리에는 푸른 산의 실루엣이 펼쳐져 있어. 평생 그릴 소재가 넘쳐나. 이제야 나의 행복을 찾은 것 같아. - 폴 시냐크, 1892년 생트로페에서
그렇게 다섯 번째 섹션까지 멋진 작품들을 눈에 담은 후 전시 관람을 마무리했다. 솔직한 감상평을 남겨보자면 이전 이건희 컬렉션 때도 같은 장소였음에도 이렇게나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번 전시는 그랬다. 우선 특별전시실의 통로가 좁아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구조였다. 르누아르의 작품 같은 유명한 몇 작품에서 사람들 정체가 너무 심한데 통제는 없고, 보기 위해 줄을 서면 중간에 껴들어서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는 것도 의미가 없고, 겨우 본다 해도 전시를 보는 눈 앞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어서 찍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당황스럽고. 이번 전시는 기대했던 만큼 작품은 좋았지만 그 외 것들로 실망도 참 컸던 전시였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인상주의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전시라고 그나마의 위안을 얻어보며, 전시회 후기는 여기서 마무리.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거울처럼 비치는 물이다. 수면에 하늘이 조각조각 비치며 생명이 숨 쉬듯 매 순간 변화하며 살아 움직인다. 흘러가는 구름, 신선한 바람. 서서히 사라지다가도 불현듯 눈부시게 쏟아지는 빛. 관찰하는 법을 모르는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모든 것이 물빛을 바꾸고 수면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 클로드 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