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제대 후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종강을 맞이하고 자유를 만끽하던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일을 나가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오시더니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아들, 경찰서에서 우편물 왔어! 확인해 봐!"
경찰서? 나한테? 왜? 그런 의아함을 느끼며 방문을 열었더니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우편물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확실히 보낸 곳은 경찰서였지만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위법과는 거리가 멀었고 최근에 딱히 짚이는 사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우편물을 뜯어본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안에 든 것은 사건 조사를 위해 사이버수사대에서 출석하라는 내용의 통지서였고 사유는 저작권법 위반이었다.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매우 희박했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게임은 불법으로 복사하는 게 기본이었고 광랜이 도입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가 넘쳐났다. 대상은 게임, 음악, 만화, 영화 등 종류 불문이었다. 그때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 행복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내 취미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PC 패키지 게임은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몰랐다고는 하더라도 결국 나 또한 이에 일조한 셈이다.
그 업보가 돌아온 것일까.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통지서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으신 사이버수사대의 형사님은 생각보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문제의 시작은 제대 후 네이버 블로그에 재밌게 본 만화책에 대한 리뷰 글을 올리면서였다. 당연히 설명과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장의 만화책 스캔 이미지를 첨부하였는데 이게 저작권법 위반이었다. 그때는 나 또한 저작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수익을 창출해야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고 오해하고 있다.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르다. 수익 여부가 저작권법 위반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실제로 처벌될지 아닐지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상황 파악을 대충 마친 나는 인터넷 검색에 돌입했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검색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례가 나왔고 한 법무법인이 합의금 장사로 유명하다고 악명이 자자했다. 학생은 직장인보다는 조금 깎아주는 모양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대신 용돈을 아껴 쓰고 모은 돈을 한 번에 날리게 생겼다. 무지의 대가는 꽤 컸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며칠 뒤 경찰서에 출석해 간단히 조사를 받고 형사님께서 연락처를 하나 주시며 합의를 잘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집 앞에서 조금 서성이다가 전화를 걸었다. 합의금으로 얼마를 부를지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사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뭐라고 얘기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왜인지는 모르지만 합의금을 받지 않고 용서를 해주셨다. 저작권자의 아량이었을까, 생각지도 않게 일이 잘 풀려 얼떨떨했다. 나는 이후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블로그를 초기화했다.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 사건으로 인해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값진 소득이었다.
십수 년이 흘렀다. 나는 초기화를 시켰던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때와는 달리 저작권과 크게 관계없는 주제라 걱정은 없다. 다만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은데 캡처 이미지가 발목을 잡는다. 보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관련 이미지가 필수인데 단순한 캡처 이미지 또한 저작권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 설령 감동을 받았거나 홍보를 위한 좋은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저작권법 위반의 소지가 있어 여전히 섣불리 실행하진 못하겠다.
이전의 경험 때문에 불안감도 커졌기 때문이다. 혹시 안전한 방법이 있을까 검색을 해보지만 여전히 달라진 건 없다. 이런 나의 고민과는 달리 캡처 이미지를 당연하게 사용한 리뷰 블로그는 넘쳐난다. 유튜브까지 포함하면 수익을 위해서라면 저작권 따윈 내팽겨진 지 오래다. 다들 그렇게 해왔으니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혹은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남들이 다 하니까 그걸 믿고 흐린 눈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가 한다고 해서 불법이 합법이 되는 건 아니다.
경찰서에 다녀온 기억이 나를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알면서도 저작권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 세태가 이러한데 나만 저작권을 지킨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당연히 있다. 나는 저작권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되고 나 또한 불이익이 없다. 이른바 같은 울타리 안에 함께 있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내 권리가 소중한 것처럼 타인의 권리 또한 존중해야 한다. 고로 내가 리뷰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에 대해 망설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저작권은 고통을 수반하는 창작의 어려움을 견뎌낸 사람들을 지켜주는 도구다. 창작자가 마음만 먹으면 그 도구는 화살이 되어 저작권을 위반한 자들에게 날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화살을 쏘는 창작자는 매우 극소수에 불과한 것 같다. 이러한 저작권자들의 용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또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저작권에 대해서 공부하고 어떤 행동이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저작권에 무지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적어도 저작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로 인해 행동의 제약도 생겼지만, 사람의 자유란 애초에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되는 법이다. 자유가 아닌 방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 머릿속에 오로지 자기뿐이다. 고의든 아니든 저작권을 침해하는 사람들 또한 그렇다.
결국 법적인 의무도 중요하지만 왜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지 스스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본질적인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이 나처럼 합의금 문제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창작의 고통을 견뎌낸 이들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한 명씩이라도 계속 늘어난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저작권이 존중되는 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관심이 모여 창작의 힘을 지켜줄 커다란 울타리가 되는 날을 기다리며, 나는 계속 저작권에 관심을 갖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