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생일날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인데

올해는 어째 촛불도 많이 켜고 이것저것 했다..?

by 이생원

나는 10월 말에 태어났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기 전 가을 말미, 사주에서는 술월이라고 한다.

나름 외우기 쉬운 배열이라고 생각하지만 친한 친구들도 내 생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다들 나이를 먹어서일 것이다.


나이를 먹었다고 기억을 못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사는 게 바쁘다보니 본인 생일 챙기기도 힘든데 친구의 생일까지 기억할리야 만무하다.


다만 나는 원래부터 남의 생일을 기억하는 게 취미다보니 단톡방에서는 언제나 내가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뒤이어 다른 친구들이 얘기를 한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고등학생때까지는 반 친구들과 생일 선물을 주고 받는 게 매년 관례였다.

학생들의 용돈 수준이 얼마 되지 않으니 큰 건 받지 못하더라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집, 어머니의 교육방침에 의하면

생일자는 밥을 산다.

왜? 생일 선물을 받으니까인 듯하다.

사실 뭐 이유를 듣지는 못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나이를 먹고 다양하게 사람을 만나다보니 이건 우리집만의 방침인 경우가 많았다.

왜 생일자가 밥을 사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

아마도 보통은 생일인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서 사람들끼리 축하해주면서

밥도 사주고 그러는 게 익숙했던 삶을 살아온 것이겠지.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각각 살아온 길이 다르니까.

지금은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잘 되어있어서 서로 주고받기도 좋고.

어느새 생일자가 밥을 사야 한다고 내 뇌리 속에 박혀있던 관습은 거의 사라져있다.


단지 우리집에서만 여전히 생일자가 밥을 산다.




친한 친구들도 내 생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이나 형동생들이 내 생일을 잘 모르는 이유는 친한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건 내가 생일을 안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의 생일을 알게 되지만 보통 그 사람은 내 생일을 모르게 된다.

왜냐하면 두루뭉술하게 알려주기 때문이고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신경쓰게 하는 것도 싫고, 그냥 내가 그 사람이 좋으면 생일을 챙기는 것만 생각하지, 굳이 내 생일까지 챙김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 방법은 소모임을 하게 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소모임에서는 생년월일이 공개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잘 모른다.

카카오톡 친구가 되더라도 나는 생일을 안 뜨게 해서 보통 조용히 넘어가는 편인데, 한 번은 뜨게 했더니 연락 거의 없던 친구가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해서 다시 바꿨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생일 공개하면 그래도 기프티콘 몇 개는 더 들어오지만 그게 뭐라고.


가끔 생일을 숨기는 것에 대해서 기분 나빠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해 안되는 것이 한 두개가 아님을 알게 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요 몇 년간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의 생일에는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있지만 내 생일은 그냥 지나가곤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섭섭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오래된 친구들한테는 0%다.

다만 이제 알게 된 친구들 중에는 조금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내가 성격이 이상한 것은 맞는데,

나는 뭐 생일 축하든 뭐든 그 사람의 진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진심이 어떠냐가 중요하지

물질적인 선물이 있거나 혹은 말로 축하하거나 하는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랑 하루 차이 생일인 여동생이 있는데 친한 사이기도 하고 내가 마음을 주었기에

저 먼 타국에서 자기 생일 전날인 내 생일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데

말뿐인 축하, 혹은 선물 없는 축하는 필요없다는 뻘소리를 자주 하는 나지만

그런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느낀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즐겁게 보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이 세상의 인식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진 않았다.

기억나는 생일 선물은 10살 때 막내고모에게 받은 학습만화? 였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한 것은 국민학교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논일을 하느라 집에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모를까, 솔직히 그렇지는 않았으니 그런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그것을 슬퍼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히려 조금 염세적이고 시니컬해지기는 했지.


그렇다보니 나는 생일에 뭘 한다는 개념이 없어서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학생 때는 친구들과 놀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냥 집에 있거나 했는데 생일도 다른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 보통 그렇게 되는데 어릴 때부터 선행학습을 해버렸다.

한 번은 그래서 여자친구랑 조금 다퉜다.

생일에 퇴근하고 집에서 있는데 여자친구는 나오라고 하고 나는 귀찮다고 그냥 냅두라고 하고.

결국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었는데 뚱한 표정으로 저녁 먹고 여자친구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노무 자식이 뭘 그렇게 꼬장을 부렸을까 싶지만

당시 나는 내 규칙을 지키고 싶었던 것뿐이다.

여친을 생각하지 못한 걸 보면 아직 머리가 덜 여물기는 했었다.

지금은 반성 중이다.


남들이 봤을 때 이상할 것 같다고 생각은 한다.

뭐랄까, 남 생일은 드럽게 잘 기억하고 잘 챙기는데 자기 생일 얘기만 나오면 화들짝 놀라고 손사래 치는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다.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떻게 하겠는가.


올해 생일은 조금 예전과 패턴이 달랐다.

우선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생일을 챙겨준 친구들이 있어서 조금 마음이 따뜻해졌다.

생일 며칠 전에 만나서 어디를 같이 놀러갔는데 화장실을 갔다온 사이에 벤치에 티라미수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반전 영화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웃긴 것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성냥 두 개가 있었지만 모두 불을 붙이지 못해서 준비한 애들이 더 당황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바깥에서 붙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들의 계획도 나 때문에 틀어진 모양이었다.

불은 붙이지 못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따뜻한 불이 켜진 것 같았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감수성이 있는 사람 같은데, 평소엔 감수성이 제로에 수반한다.

그날따라 바람도 좋고 날이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내가 원래 생일에 투썸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으려고 했기 때문에 놀랐던 점도 있다.

그 얘기를 하니까 다들 신기해했다.

꿈에서 본 게 현실이 된 것인가.


문제는 이후 이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지 않고 보관했기 때문에 녹아서 먹지 못했다는 것.

친구들은 매우 안타까워 했지만 나는 그걸 먹은게 중요한게 아니라서 전혀 상관없었다.




정작 생일에는 혼자 타지를 다녀왔는데, 그 이유도 허무맹랑하다.

그냥 저렴한 가격에 뷰 좋은 호텔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그곳이 내 출생지라서 별 이유없이 갔다. 아무런 활동 계획도 없이.

내가 감수성은 거의 없는 사람이라 바다를 본다고 뭐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날 기분이 좋았던 것은 바람 때문이다.

바람은 확실히 좋아하는 편이라, 바닷바람이 머리를 난리나게 했지만 상관없었다.


생일에 여행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여행도 아니고 그나마 호캉스에 가깝다.

친구들은 내 생일인 줄 모르고 있다가 실수로 말해버려서 친구 한 명이 단톡에 내가 혼자 피자 먹고 있다는 얘기를 퍼뜨리고 생일 축하를 해주었다.


혼자 여행은 사실 재미는 없지만 시간은 잘 간다.

진짜 아무 것도 안하고 내가 잘하는 멍 때리기만 하더라도 하루가 퍼뜩 가버리고 원래는 호텔 사우나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뒷날로 넘기고 못갔다.

내가 여행을 와서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을 때 공통적으로 많이 들은 질문은,


1. 누구랑 갔냐

2. 뭐하러 갔냐

3. 진짜 혼자 갔냐

4. 혼자서 뭐하냐


정도가 되겠다.


일단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니까 누군가랑 같이 갔을 거라고 물어보는 것 같은데 대부분 직장인인데 평일에 누가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왜 혼자 갔냐고 누구라도 같이 가지 그랬냐고 하는 소리는 더욱 열이 오르는 소리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무 것도 안 할 생각이라고 하니까 왜 갔냐고 물어보는 자식도 있었다.

내 맘이다 인마!


이래서 내가 어디 간다고 말을 안 하고 댕긴다.


위에서 불을 못 붙인 티라미수 케이크를 챙겨준 친구가 기프티콘을 줘서 생일 밤에 똑같은 케이크를 구입해서 먹었다.


이번에는 불을 붙여서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생일이 지난 후 친구 부부로부터 합동 생파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연락이라기보다는 카톡에서 대화하다 그렇게 흘러간 것이긴 한데.

그들은 11월 초에 생일이고 나는 10월 말이라 굳이 합동 생파라고 불러야 할까에 대한 의문은 남지만 그냥 그렇게 노는 거니까 알았다고 했다.


내가 성격은 이상하지만 나름 합리적이고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다.


친구 와이프가 케이크를 사자고 해서 처음에는 성심당 과일시루를 얘기했다가 다시 스타벅스 케이크로 바꿨다가 결과적으로는 내가 카페에서 맛있다는 조각 케이크를 사가게 되었다.


생파 장소는 이사한 지 꽤 되었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집들이를 못한 친구 부부의 새집이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집 구경을 하게 되었다.


웃긴 것이 여러 문제가 생기기 전, 그러니까 작년도 그렇고 재작년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꽤 자주 봤었는데 올해에는 그렇게 보기 힘들어서 1년 동안 2번째 보는 것이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잘 정리를 해야 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갑자기?)


덕분에 케이크 촛불을 또 키게 되었다.

이번에도 그냥 촛불이 아니라 숫자 촛불인데, 윤석열 정부에서 만 나이가 법정 나이로 되는 바람에 계속해서 38살로 축하를 하게 되었군.

세 명이 모두 30대라 3이 제일 앞이고 나머지는 각자의 숫자라고 준비한 친구 와이프가 설명했다.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어 그만두었다.

나는 생일이 지났지만 어쨌든 합동 생일 파티이니 각자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함께 초를 불어 껐는데 생각해보니 소원을 안 빌었다.


내 생애 가장 많은 촛불을 켰거늘.


어쨌거나 어렸을 때부터, 아니 성인이 된 이후부터 생일날엔 아무 것도 하지 않기가 앞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에도 합동 생파는 예정되어있을 것 같으니까...?

사실 안 해도 나는 상관없다.

상관없기는 한데 어차피 늙으면 자연스레 그리 될 것이고, 지금부터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도.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다 보면 생일이 뭐라고 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친했던 친구들도 소원해지고, 다들 바쁘다보니 생일에 축하를 오는 것은 여러 광고 메시지 뿐.

가족들은 생일을 챙겨주겠지만 여러 상황에 따라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하는 경우도 많고.

자연스럽게 생일이 뭐라고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약간 마음을 좀 열어놓은 것은

굳이 뭐 생일을 축하헤주겠다는데 쌍심지 키고 안된다고 하지는 말자 랄까.

내가 그런 점에서 좀 꽉 막힌 성격인데

나이 먹고 조금 유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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