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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추억 1(현장에 답이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by
Faust Lucas
Nov 24. 2020
현장에 답이 있다
!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다. 이런저런 sns를 통해 중국에 엄청난 양의 비가 몇 달 동안 내려 피해가 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리는 다행이다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쯤 되니 각종 뉴스에서 수해니 홍수니 물난리니 하는 보도와 함께 산사태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도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 실종된 갓 태어난 아기 아빠 119 구급요원의 안타까운 사연도 들린다.
이런 와중에도 알고 있는 이름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인격의 한계인지 측은지심이 없는 본성은 아닌가 반성도 해본다.
피해가 컸기 때문일까? 집중적인 폭우로 몇몇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거고 군이 투입되어 복구작전을 한다는 뉴스도 들린다.
짧지 않은 군생활 중 물난리로 인한 기억은 많지 않으나 최근 지휘관을 하면서 복구현장 지휘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날 일요일 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널찍한 관사 지붕과 둘러싼 도토리나무, 잔디마당을 적셔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텃밭에 다녀오시며 오이, 상추, 고추 등이 잘 클거라시며 고랑을 내고 오셨다고 하신다.
'닭장은 괜찮은데 개집 앞에 물이 고여 작은 물골을 냈다'고도하셨다. 어머니는 전을 붙이시며 먹으라고 주셨다.
평온한 휴일이었다. '내일부터 화랑훈련이 시작되니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비 오는데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가 나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머릿속은 다음 1주간의 훈련 스케줄을 따라 바쁘게 움직이는데 대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리지 않다고 했던가?
천안지역에 호우 경보가 발령되고 하천범람으로 저지대가 침수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을 확인하고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시청과 긴밀히 연락체계를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곧이어 전력거래소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시청에서 공식적인 병력 지원 요청이 들어오는 등 상황이 긴박하게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사단과 상황 평가회의를 하고 이동했다. 비는 갈수록 굵어졌고 하천의 물살은 진한 흙탕물로 세차게 흘러갔다. 도로 곳곳에 물이 고였고 쓰러진 나무들도 간간히 보였다.
몇몇 곳에는 군복을 입은 채로 비를 맞으며 넘치는 하천변에 둑을 쌓고 있었고 국방색 굴삭기와 덤프트럭도 보였다.
보고 받은 지역을 확인하다 보니 어느덧 어두워지고 있었다. 복구 중인 병력들은 온수 샤워 후 식사를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바로 옆에 있는 수행 참모와 운전병이 저녁식사를 건너뛰었다.
시청 재난상황실로 가며 운전병에게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을거리를 준비하라 했다. 상황실 관계자는 깜짝 놀라며 현황을 보고해주었다. 특별히 참고할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알려주어야 했다.
피해보고가 들어온 서너 곳은 군병력이 투입되어 응급복구를 했다며 감사하다고만 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시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주변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무슨 행사 중이라며
알겠다는 말만 들렸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천안에 가 있는 동안 연대본부지역에도 폭우가 내린다는 보고를 받았다. 부모님께서도 전화를 주셨다.
복귀하는 길이 어두워 주변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차에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 타이어에 부딪혀 팅기는 물소리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자정이 다되어 복귀했다. 그 지역 책임부대는 일단 훈련에서 제외되었다. 피해규모가 연대 전체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되었지만 사단에서는 훈련도 중요했던 모양이다.
내일부터 훈련이라 참모들에게 들어가 쉬어라 했는데도 굳이 자기들 지휘관이 도착하는 것을 보려 했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렇게 비효율적인 허울 좋은 노력 낭비를 하지 말라 했는데... 빨리 퇴근하라 했다.
복귀해서 한 것이라고는 이 한마디뿐이었다.
'필요한 건 다 지시했는데 왜 이리 떼로 대기하고 있냐?'
'길도 안 좋고 혹 추가 지침이 있을 실까 봐 훈련 준비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눈치 많이 보네? 나는 이런 거 좋아하지 않아! 우리는 훈련 못할 거라고 알려주었잖아!'
'무사히 도착하시는 거 보고 퇴근하려 했습니다.'
내일 훈련, 복구 관련 지침을 다 주었는데, 지휘관을 기다리던 참모들에게는 내가 도착하는 여기가 현장이었던 것일까? 빗속 긴 하루가 끝났다.
월요일 아침 뉴스부터 수해라는 타이틀로 각종 언론매체가 도배되었다. 아침 뉴스를 스치듯 보며 계획된 대로 발령된 상황에 맞춰 비상소집부터 훈련은 진행되었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주어지는 메시지 상황을 조치해 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어제 건의가 일부만 받아들여져 수해복구를 하는 해당 지역 대대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를 않았다.
동시에 참모들에게는 어제 본 수해 피해 정도와 언론 반응 등을 고려 시 연대는 훈련이 취소되고 전체가 복구에 지원될 것으로 판단되니 그에 따른 세부적인 준비사항도 지시했다.
상급 지휘관과 훈련 통제부에 수해현장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하고 물자 분류 등을 최소화해서 부대가 훈련에서 수해복구로 원활하게 전환되도록 할 수 있게 해 달라 다시 건의했다.
다행히 언론의 계속된 피해 보도와 시청에서의 지원 요청에 따라 오후부터 연대 전체가 피해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첫날의 지원은 엉성했다. 아무런 준비명령 없이 점심 식사 도중 급작스럽게 지시를 받은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사전 참모들에게 준비 명령을 내부적으로 해놓았다.
그러나 훈련을 중지하고 각각 다른 3개 지역에서 부대를 이동시킨다는 것은 책상에서 말로 하는 것처럼 쉽지가 않았다.
총을 들고 있다가 삽을 들고 여기저기서 차량을 지원받아 병력을 이동시켜야 했다.
어제 정찰한 지역과 시청에서 파악 중인 소요를 기초로 부대별 책임지역을 개력적으로 할당했다. '대대장들은 책임지역 내 피해현황과 지원 소요를 종합해서 내일부터 할 작업량과 필요한 병력수를 판단했다.
오늘 지원은 중대장들이 지자체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응급조치에 집중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그나마 수해복구 준비명령을 하달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동시간만 두 시간가량 걸리는 대대는 연대본부에서 숙영 하게 조치했다.
병력 수송 차량 편성, 복장, 구급약품 휴대, 통신, 식사지원 등 세부적인 지시를 통해 혼란을 최소화하려 했다.
사단에서 증원되는 병력에 대한 지휘체계를 확인하고 장기간 지원에 대비해 현장지휘소를 선정한 후, 지자체로부터 추가로 통보되는 피해 장소와 복구작업을 하는 부대원들을 살피다 보니 금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병력들은 야간 이동이 안되게 일몰 전에 복귀해서 휴식하게 했다. 추가해서 일일단위 군관 협조회의를 제안했다. 현장 지휘소로 와보니 지자체 관계자들과 대대장들이 협조회의를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읍, 면, 동장들이 제각각 자신들 지역이 급하고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였고 시 관계자는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피해지역을 가보지 않으니 정확한 판단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들은 말에 기초해 산술적으로 소요를 종합해보니 대략 상급부대에서 지원되는 병력을 다 포함한 숫자의 5배 이상으로도 부족할 수준이었다.
내일부터는 연대 외 특전사, 인접부대 등에서 추가로 지원될 것이란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조용히 시킨 후 피해복구 지원 개념부터 제시했다. 먼저 장비, 인력이 각각 지원할 곳, 통합지원이 필요한 곳, 공공시설, 개인시설로 구분하고 읍, 면, 동장이 제시한 복구 소요를 종합했다.
대대장들이 파악한 것과 크로스 체크하여 누락 없이 지원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했다.
추가해서 '군이 하면 잘한다. 공짜이다. 무조건 많은 인원을 데려가야 주민들에게 인정받는다' 등 잘못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 젊은 용사들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호주머니의 동전으로 생각 말라'며 몇몇 곳에서 있던 잘못된 사례도 예를 들어 경고했다. '주민센터 앞에서 목소리 큰 주민이 와서 급하지도 않고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작업에 무분별하게 병력들을 데려갈 경우 그 지역은 철수시키겠다.
첫날임을 고려해 오늘은 넘어 가지만 내일부터는 안된다.'며 공무원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찌는 더위와 가끔 가려지는 먹구름에 땀을 식힐 때 이어 쏟아지는 소나기로 범벅이 되고 있는 물난리 현장도 있을 것이다.
잠시 비를 피하며 작업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 있노라면 어느새 작렬하는 햇볕이 또 내리쬐며 목을 마르게 하고 피부를 태울 것이다.
이런 시간의 반복이 거듭된 총 11일간 현장을 발로 확인하며 느꼈던 비와 후덥지근한 변덕스러운 날씨가 지금도 반복되는 것 같다.
오늘도 어디선가는 무너진 제방과 하천, 비닐하우스, 진흙 범벅이 된 집과 건물, 축사의 오물 냄새 사이에서 땀 흘리는 젊은이들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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