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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추억 2) 우리끼리는 쇼하지 말자!
by
Faust Lucas
Nov 24. 2020
쇼와 연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수해가 났니, 재난이 났니, 큰 사고가 났니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모습이 있다. 높은 분들이 얼굴을 내미신다. 오신다는 연락을 받는 순간부터 수해복구 현장은 또 다른 난리가 난다.
주로 보좌관들이 전화로 질문을 시작한다.
'현장에 한 번 가시려는데요?'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지금 거기는 뭐 하고 있죠?'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 현장에 위치한 지휘본부로 쏟아진다. 마치 연못에서 뭔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던 개구리 무리 사이로 한 아이가 무심코 돌을 던지면 일어나는 모습과 비교해도 될까?
아니면 평화롭게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 무리 사이로 어린아이가 모이를 직접 주겠다며 뛰어들 때 화들짝 놀라 나는 모습일까?
개구리나 비둘기와 말이 통하지 않아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비슷할 것이다.
단순한 문의에 대책 회의를 한다. 최선임 자와 관계기관에 첩보사항으로 전파되고 작업 현장에 나가 있던 피해복구 본부의 최선임 자는 급히 본부로 돌아와 일명 VIP로 불리는 사람의 영접을 위해 회의를 주관하게 된다.
오겠다는 사람의 보좌관에게 받은 질문에 대해 대략 모아진 의견을 보내면 '알았습니다. 보고 드리고 결심받아 알려드리겠습니다.'라 한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때 VIP 측에선 언론보도를 보아가며 시기를 저울질한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급한 일정이 생겨 못 온다고도 한다.
현장에서는 '쫌 짜증은 나지만 다행이다.'라는 반응이 나타난다.
대략 방문 시간대가 정해지면 A, B, C안 등으로 몇 개 코스를 선정한다. 장단점도 비교한다. 차량 접근의 용이성, 도보 이동거리, 피해 정도 등 외에도 가까운 거리에 다양한 유니폼이 모여있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이어야 한다.
이쯤까지 논의가 되면 직접 관련이 없는 기관에서도 별도의 대책회의가 자연스레 열린다.
안내 코스와 VIP 보좌진과 협조된 시나리오가 구체화되어 간다. 물론 군 현장 지휘관은 당연히 중요 모델이다. 노란색 민방위복, 곤 청색 경찰복도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만 군복이 없으면 피해규모가 크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우스게 소리도 들린다.
VIP 도착 장소에는 그 계통의 대표가 대기해 안내를 시작한다. 이후 평소 보이지도 않던 각종 지역 기관장들이 나타난다. 해당 기관 소속 홍보팀들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뒤쪽에서 구경하고 있노라면 VIP 쪽 수행팀에서 찾아온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군 지휘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당연히 복구 작업은 그가 있는 동안은 일시 중지되거나 정해진 각본을 연출하기 위해 스탠바이 상태가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빨리 사진 찍고 가야 한다며 휴식을 짧게 하거나 길게 하기를 요구받는다. 이런 요구를 모른척하면 간절한 부탁을 한다.
그 지휘관도 찜찜한지 아니면 겸연적스러운지 승인을 구한다.
'휴식시간 조정을 하려 합니다. 지침 주신대로 45분 작업에 15분 휴식을 하고 있는데 온도를 고려해서 20분 휴식으로 조정하겠습니다.'
'지역단위 책임을 맡은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에게 위임한 사항이니 알아서 하시게'
뻔히 속사정을 알지만 서로 어색해지니 모른척하고 알아서 하라고 한다. 평소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기관 관계자는 평소 업무협조 관계인 해당 지역 책임 지휘관에게 조르다시피 해서 타이밍을 맞춘다. 혹 나올 수 있는 불평을 예방하기 위해 작업시간도 줄인 것이다.
용사들이야 휴식시간이 늘어나니 나쁠 리 없을 것이다. 통제가 테크닉인가? 이렇게 타이밍을 맞추어 코스를 돌게 된다. 쇼를 위한 준비도 마무리가 된다.
세팅이 끝난 무대 대부분은 복구 작업하는 인원보다 방문하는 인원이 훨씬 많다. 격려한답시고 흙, 오물이 묻은 이들과 악수를 하고 몇 마디 묻는다.
'어려운 것은 없나요? 필요한 것은 없나요?'
'예, 필요한 것은 없고 수재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의 군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도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작은 힘이 피해를 받으신 분들께 비 온 후 무지개처럼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도 잘한다. 자세히 들어보면 어제 대대장들에게 했던 내용들이다. 매일 작업 시작 전 안전교육과 병행해 복구작업의 취지를 교육하도록 한 효과가 있는 듯해서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방문 집단이 가고 나면 평소에 보이지 않다가 나타난 분들도 번개처럼 사라진다. 현장은 또다시 조용해진다. 찌는 더위와 올라오는 습기가 그 빈자리를 다시 채운다.
땀을 쫌 닦으며 한 숨을 돌리려 하면 상급부대 참모들이 전화가 빗발친다. 왜 전화 오는지 알기에 받지 않고 상급 지휘관에게 지휘보고를 한다. 궁금할 내용에 대해 세세히 설명을 곁들인다. 여기에 조금 양념도 추가한다.
'상급부대에서 선제적으로 충분한 지원과 지도를 해주었기 때문에 복구에만 전념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는 말에 좋아한다.
지휘보고가 끝나면 부재중 번호가 찍힌 참모들에게 조금 전 보고했던 것을 요약해 VIP가 머문 시간, 돌아본 코스, 용사를 포함한 현장인원들과 나눈 대화, 격려금은 얼마인지? 수행한 기관장들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설명해 준다.
옆에 있던 수행 참모는 메모를 하고 상황 보고할 내용을 확인받은 다음, 보고하기 시작한다.
마치 쇼가 끝난 극장 주인이 종업원과 공연 결과를 결산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보고를 끝낸 참모가 뻘쯤 한지 한마디 한다.
'연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어, 그래! 너도 수고 많았어'
'악수하실 때 자세가 교범대로입니다. 꼿꼿 장수 같으셨습니다. 브리핑도 깔끔하게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시나리오 연습하셨습니까?'
'야~ 웃기지 마라! 너도 지금 연극해? 쇼하지 말자~ 우리끼리는'
쇼와 연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가끔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연극을 하는 배우로 보이기도 한다. 주어진 역할에 대한 몰입!
중요하다.
!
하지만 그보다는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가면을 쓰지 않은 진정성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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