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잃어도 유머는 잃지 말아야! 191220
올 연말이면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게 된다. 청운의 꿈을 안은 소위 때, 첫 부임지로 와서 대위가 되어 떠난 후 20여 년 만에 대령이 되어 다시 온 곳이다.
마침 그 사단에서 연말 주요 지휘관 회의가 있어 상급부대 참모로서 배석할 기회가 주어졌다. 동해안의 기상 특성인지 눈, 비, 우박까지 섞여 내리는 7번 도로 해안길을 가는데 날씨도 안 좋은 날, 그 전에도 오고 가던 길이었는데 오늘따라 낯익은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구성리!'
그러면서 바로 '구성리 삼거리'까지 연이어 입에서 나왔다. 그것도 왠지 모르게 슬프게 밀려오는 겨울바다의 파도에 눈을 떼지 않고 가는 길이었다.
얼마 전 하조대 바닷가에서 푸른 하늘의 '겨울바다'란 노래를 들으며 옲저렸던 엉터리 시도 다시 읽으며, 다시 그 노래도 듣던 중이었다.
겨울바다의 추억 191212
겨울바다에 가보았나
푸른 바다를 뒤로 하고
하얀 머리카락 수평선 너머로
질주하는 파도의 경주를 보았나
파란 하늘을 보았나
구름 한 점 없는 바다색 하늘
창공의 파도를 타고나는 하얀 갈매기
마치 파도의 하얀 포말처럼
쉼 없는 꿈 향한 달음박질은
무얼 쫓아 가는지
마음속 꿈 찾아
모래밭에 쓰러져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철석임 소리
낮게 깔린 큰 부딪힘은 들리나
심연 속 아우성은
소년의 침묵 속에 간데없고
갈매기 소리만 간간히 들리네
겨울 바닷가 푸른 파도 위
하얗게 날아 사라지는 소년의 꿈
전설의 고향처럼 예전 추억이 떠올랐다.
그곳은 중대장으로서 연대전술훈련 평가를 받으면서 중대원이 총을 잠시(?) 잃어버렸던 곳이다. 그때의 기억이 밤바다의 오징어배 불빛처럼 뚜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1주간 밤낮으로 훈련한 마지막 날 안개인지 해무인지가 잔뜩 끼었다가 그치기 시작하는 새벽이었다. 밤새 비는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동해안 바닷가 태백산맥 자락의 날씨였다.
온몸에서는 며칠 묵은 땀이 밤새 맞은 비와 섞여 정체불명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이제 곧 해가 뜨면 우리의 임무가 끝난다는 희망으로 피로하기보다는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BMNT(Begin Morning Nautical Twilight 해상 박명초 海上薄明初)에 공격을 하기 위해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의 뒤로 2,000여 명의 병력과 전차, 장갑차, 불도저 등의 장비와 산 뒤에서는 헬기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신호킷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면 이를 신호로 적 방어진 지를 공격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신호킷 발사 연습을 하고 있는데 맨 후미에 있어야 할 소대장이 삐쭉거리며 다가왔다.
'그래, 군 생활하려면 이런 훈련에서 적 진지를 돌파하는 모습을 가장 선두에서 한 번쯤은 봐 둬야지!'
부하에게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뽐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중대장님 ㅇㅇ이가 총을 잃어버렸습니다.'
'뭐라고? 총을 잃어버려?'
'그게 무슨 말이야?'
짧고도 긴 침묵이 흘렀다.
'언제 알았어?'
'방금 전에 알았습니다. 판쵸우가 벗다가 보니 어깨에 걸친 총이 없어진 걸 알았답니다'
조용한 적막이 버린다.
무장공비가 나타나면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고 대침투 작전을 시작한다. 아군이 총을 들고 탈영해도 그 상황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중대장은 생각한다.
총을 분실한 것을 보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 보고를 하게 되면 훈련은 현 시간부로 종료되고 모든 부대는 그 총을 찾기 위해 대침투 작전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다 찾는다 하더라도 육본, BH까지 상황보고가 될 것이고 언론을 통해 온 국민이 알게 되고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이런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10분간 휴식을 하다가 이동하기 전에는 인원 장비 이상 유무를 확인하게 했다.
먼저 사람 숫자를 확인한 후, 각 개인이 자신의 총을 3번 두드리고 '이상무'라고 복창하게 했다. 다음은 방독면, 대검 등 순으로 만져서 확인하게 하고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지휘관으로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현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총을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냐?'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소대장 너는 니 통신병인데 바로 옆에서 뭐했어?'
'.......'
난감한 상황이었다. 훈련이지만 야간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지금은 적진 바로 앞이고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지만 자연스레 입에서는 담배를 물고 긴 한 숨이 나왔다.
갓 자정을 넘기고 ㅇㅇ포대 앞에서 비가 오락가락하여 판초우의를 벗었다 입었다 할 때 그때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곳부터 시작해서 잃어버린 것을 인식한 여기까지 거꾸로 찾아 오려해도 거기까지 갈 방법이 막막했다. 너무 먼 거리였다. 족히 두 시간 이상을 뛰다시피 가야 하는데...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 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군인에게 '총은 제2의 생명'이다.
사관학교 시절 처음으로 총을 지급받으면서 들었던 이야기, 부대에서 총이 없어졌는데 전역한 이후에도 경찰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그때 상황을 물어 보더라는 이야기, 총을 찾기 위해 재래식 화장실을 다 펐다는 등
모든 훈련병부터 장교들, 부사관들은 입대하면서 듣는 소리가 또 있다. '총은 몸에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 잘 때도 껴안고 자야 한다. 화장실 갈 때도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그런 총을 잃어버렸다. 연달아 담배 서너 개피를 피웠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훈련 준비를 위해 연대장님, 다른 대대장님들, 전 중대장들을 포함해 연대 내 분대장급 이상 모든 간부들을 모아 놓고 시범식 교육을 하고 훈련 중에는 첨병 중대장으로서 연대의 가장 선두에서 각종 상항 조치를 진두에서 지휘를 했다.
마치 옛날 전장에서 말 타고 칼 들고 싸울 때 맨 앞에서 뛰어나가 적장의 목을 치는 그런 선봉장 같은 역할이었는데... 이제 역적 같은 존재가 되게 생겼다. 소령, 중령 평가관들도 전투지휘를 잘한다고 칭찬을 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소대장과 통신병은 죽을상으로 숨소리도 못 내고 따라다니기만 했다. 어찌나 안쓰러웠던지 건드리면 바로 울어 버릴 것 같은 상태였다.
그들을 보니 안되어 보였다. 그동안 훈련한답시고 고생시켰던 일들이 떠 올랐다. 수통에 물 다 안 채웠다, 전술적 이동 간 10분간 휴식 시간에 은폐 엄폐 안 했다, 복명복창 안 했다는 등의 이유로 얼차려도 많이 주었다. 오기 싫은 군대 억지로 와서 중대장 잘못 만나 힘든 군 생활했다는 전역병의 이야기도 새롭게 다가오고...
별별 생각이 다 났다 사라졌다는 반복 했다. 그러던 중 '부하들의 작은 잘못은 엄하게 꾸짖어도 큰 일에는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어디선가 본 글귀가 떠 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얼마나 걱정이 많이 될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상황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니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다. 이럴 때 냉철하게 상황판단을 해야 한다. 이성을 찾자!
소대장에게 물었다.
'너 어릴 때 꿈이 뭐였냐?'
'.....'
직속상관이 묻는데 답이 없다.
'나는 대위였다.
국민학교 졸업식 때 군복 입고 와 상도 주고, 3학년 때인가?
같은 반 아이 아버지가 공군 대위였는데 PX 물건 갖다 주고 하니까 선생님이 정말 잘해주더라! 예비군 중대장에게 돈 주면 군대도 방위로 빠지고...
총 잃어 대위로 전역해도 문제없는데 너는 어떡하냐? 나는 그래도 지휘관이라도 해 봤는데'
위로하려 했던 이런 우스게 농담이 이성을 불러들였는지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전속부관 시절 알았던 부사관이 토우중대로 가서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는 사실! 부대 후미로 찾으러 갔다.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여기 왜 왔지 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부관님 얼굴이 안 좋으신데 뭔 일 있으십니까?'
그 이유를 말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프차를 바로 끌고 나가서 7번 도로를 우회해서 총님을 모셔 왔다.
ㅇㅇ부대 위병소로 민간인이 총을 들고 신고하러 가는 것을 붙잡아 찾아왔다는 것이다. 위병에게 총이 건네 졌다면..?
견장을 뗄 뻔한 에피소드가 된 것이다.
살아가면서 감당치 못할 황당한 일이 급습할 때는 감성을 누르고 이성을 찾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유머와 해학을 잃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비우며 웃는 순간 다른 행복이 채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