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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Oct 29. 2022

또 떠날시간 #군인도잘모르는군대이야기

헤어질 시간

이제 또 떠날 시간  191229

작년 이맘 때 태백산맥 사이 고속도로를 혼자 운전하며 새로운 임지로 올 때가 엊그제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소위로 25년 전 왔던 곳, 군인으로서 마음의 고향에 중년이 되어 다시 올 때였다.

해는 이미 높은 산들 뒤로 넘어 가고 산중 이른 어둠이 급히 올 때 머릿 속에 불현듯 스치는 말이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여호수아 1:9)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군복을 입었고 여기저기 근무지를 옮기고 보직을 바꾸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1~2년을 주기로 새로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길 반복해 왔는데...

아직도 자리를 옮길 때면 설레임과 기대보다는 어김없이 같이 따르는 긴장과 두려움이 더 컸다.


#나의직업은군인입니다 예미출판사

잘해야 하는데...  그 곳 사람들은 좋아야하는데... 생활하기에는 어떨까? 등등 걱정하는 것을 볼 때면 아직 군대에 적응이 덜 된 듯하고 군인으로서 30년이 된 것을 고려해보면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대부분의 이동 시기가 겨울이고 새로운 곳에는 늘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무렵에 도착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돌아보니 낯선 곳에 조금이라도 늦게 가고 싶었고 익숙한 곳에서 잠시라도 더 있으려다보니 오후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군인도 잘 모르는 군대이야기,청원출판사

12월 말 양양읍은 저녁시간임에도 도로에는 다니는 차도 거의 없고 길가에 행인은 가끔 보일 뿐이다. 그들조차도 거의 발목까지 오는 두꺼운 겨울 옷을 머리까지 뒤집어 쓴 잔뜩 움추린 모습이다.


#군인도잘모르는군대이야기 예미출판사

여기저기 저녁 먹을 곳을 찾기도 힘들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런지 어울리지 않게 술 취한 듯 반짝거리는 네온 간판이 보이지만 따뜻한 국물 있는 순대국밥집 하나 찾기가 힘들다.

따뜻한 남쪽에서 출발 전 어머니가 낼 아침에 먹으라며 싸주신 떡이 생각나 편의점에 컵라면과 포장 김치를 사서 첫 날 저녁을 해결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케케묵은 말이 떠올랐지만, 오늘 저녁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하룻 밤을 보내고 낯선 부대로 출근해 앞으로 근무해야 할 곳을 가 본다. 자신들의 상급자가 전입 신고일보다 빨리 오니 약간 놀라는 눈치이다. 반기는 사람은 전임자 뿐이다. 이 곳에서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참 다이나믹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늘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살아 있음이 축복임을 깨닫는 경험들이었다.

분명 어제 날씨는 좋다고 예보가 되었는데 새벽에 내린 갑작스런 폭설로 당황하며 출근한 어느 아침, 뉴스를 보고서 지휘관의 보직 해임을 들었을 때의 황당함,

후임 지휘관 취임식 준비할 때 목선 사건 담당 소초 상황병의 장례식 현장 통제 지휘를 하라는 명령에 따라 갑자기 간 서울 출장,

산불 났다는 전화를 받고 아파트 현관을 열고 나서는 순간 어디서 날아 왔는지 얼굴을 때리는 돌맹이, 그 아픔을 채 느끼기도 전에 강풍에 넘어질뻔한 어느 봄, 한 밤의 비상소집,

늘 같이 하던 전우의 갑작스런 바닷가 실종, 아직도 저 동해바다 어딘가에는 있을 것인데... 라며 바다를 볼 때는 가끔 생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외롭지만은 안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저 바다에 있는 영혼들이 어디 한 둘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나뉘었지만 거기서도 그들과 잘 지내기를 바란다.

부대가 안정되고 조용할 때는 기숙사에 잘 있던 딸아이 몸이 좋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능을 앞두고 집에 와 있었다. 대학이야 1,2년 나중에 가거나 안가도 되지만 딸아이의 건강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같이 있게 되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전에는 주말에만 잠시 보았고 기숙사 간 뒤로는 거의 보지 못했었다.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하면 취업할 것이고 결혼 할 것이고...

이제부터는 자주 보기 어려울 것을 안다. 이 모든 것들을 이제 기억과 추억으로 포장해 가슴 한 켠에 고이 접어 놓고 떠나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출근하면 낯선 이들의 긴장한 얼굴들을 자주 접한다. 그들도 1년 전 쯤 왔으면 지금 자신의 얼굴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익숙한 얼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묻는다. 언제 가십니까? 신고는 언제이십니까? 이사는 언제 하십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빌립보서 4:6)

오고 가는 사람, 머무는 사람 그 누구나 사람이라면 근심 걱정이 없을 수 없다. 이 곳에 왔을 때 그랬고 이제 떠날 때도 그러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랬다.

하지만 매사를 감사함으로 구하며 조금만 기다린다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양양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이었던 것 같다.

매번 늘 웃고 행복해 할 수는 없지만 그것들만 기억해 아름다운 마음의 포장지로 잘 싸놓으면 어디를 가거나 또 정들었던 곳을 뒤로하게 될지라도 늘 감사하며 떠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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