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as Nov 16. 2022

소녀 비

비와 소녀

비와 소녀 2

소년은 이상했다. 지금 쯤 나올데가 되었는데... 왜 신청곡이 안나오지? 별밤지기 이문세는 말도 많다. 역시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지! 무슨 DJ를 한다고... 최고의 인기 가수의 가창 실력까지도 의문스러웠다.

이런 머리 속 투덜거림에 저 넘어에서 ㅇㅇ의 목소리로 똑같은 노래가 들린다. 아~~~ 이건 뭐지? ㅇㅇ가 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자 라디오에서  전주가 낮게 들리기 시작하며 이문세가 또 말을 한다.

'이번에는 멀리 부산에서 신청하셨네요. 제 노래입니다. 아 이분 학생이신가 봐요. 많이 힘드시죠? 사연은 이렇습니다.

ㅇㅇ야! 매일 매일 공부한다고 힘들지? 우리 만나기 시작한지 몇 일 된지 알아? 2월 19일에 만났으니 오늘이 딱 100일 째야! 내가 원래 곰처럼 둔했는데 너 만나고 100일째, 사람이 된 것 같아! 우리 같이 힘든 시간 잘 이겨내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서 이쁘게 사랑하자! 며 지난 학원 수업 후 버스를 승강장으로 같이 걸으며 길가에서 들리는 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걸 좋아하는 여자친구 분과 같이 듣고 싶다고 신청하셨내요. 나의직업은군인입니다

잘 듣고 계시죠? 그런데 학원이 늦게까지 하네요? 이 늦은 시간에 어떻게 같이 듣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짖굳었네요. 두 분 열심히 공부하셔서 원하시는 대학 가시고 이쁜 사랑하시길 바라며 함께 듣겠습니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노을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며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소녀는 얼마전 소년이 신청해 같이 부르며 듣던 노래를 입으로 따라 부르는 게 그 날 이후 습관이 되었다. '애가 왜 이럴까?' 버스가 속도를 줄이자
소녀가 살짝 쳤다. 내리라는 신호였다.
소년의 평소같지 않은 모습이 계속되었다. 걱정이 되었다. 내릴 생각을 안하는 것을 보면 뭔가 이상함이 분명하다. '아직도 열이 나는 듯한 얼굴을 보면 확실하다' 다시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돌려 보았다. 맞다!#군인도잘모르는군대이야기청원출판사

소녀가 고개를 돌리자 소년에게 그 체취는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중 3부터 알고는 지냈지만, 최근 학원 시간까지 맞춰가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평소에도 예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갈수록 정말 예뻐진다. 매일 집에 갈때 같은 버스에서 오늘처럼 보아 왔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갈수록 정말 예뻐진다.

버스가 서자 소년은 스쳐지나가는 소녀를 따라 내렸다. 소녀가 움직일 때마다 체취가 주위를 감쌌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비는 어떻게 알았는지 딱 시간을 맞추어 그쳤다. 소녀의 뒷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100m 밖에서 뒤만 보아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온 후 밤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부분 밀폐된 버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인도에 말을 내딛자 따라 오라는 듯 평소와는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걸음걸이도 에쁘다. 긴 생머리와 다리가 조화롭게 같이 움직인다. '내 여자친구라는 게 좋다. 자랑스럽다' 사실 친구들도 부러워하기는 한다. 여고생이 아니라 여대생이라해도 될 듯하다. 누나를 따라 걷는 남동생이 된 것 같다. 저런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소녀는 버스에서 내릴 때 말했다. '말할거 있어, 따라와!' 그리고는 인도에서 살짝 들어간 어두운 곳으로 걸었다. 평소 이쁜 걸음걸이가 아니
었다. 그 이쁜 다리에서 발 끝까지가 화나 있는 듯 했다. 몇 발자욱을 뗀 다음 팔짱을 끼고 갑자기 돌아 섰다. 생각없이 따라 가다 부딪힐 뻔 했다.

'이리 가까이 온나! 눈감고 호흡을 천천히 해볼래' 손을 뻗어 소년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었다. 열이 없었다. '니 어디 아픈데? 아까는 얼굴이 블그스레하더만, 아니면 저번에 사촌 오빠 공부 잘한다고 했더니 삐짓나? 미안하다. 내는 공부만 잘하는 그 오빠 별루다. 눈빛도, 목소리도, 말투도,  그리고 키가 별루다. 니 정도가 딱 내한테 맞잖아! 니가 좀 천천히 걸으면 나는 보통때처럼 편하게 걸으면 되거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못 본 모습이었다. 그 동안 하자고 하는대로 따라만 하더니 완전히 달랐다. 사촌 오빠 때문에 기분 나빴던거는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 듯 하다.
팔짱긴 모습에, 소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소녀는 눈을 똑바로 못 쳐다 보았다. 눈까지 감으라니...  
게다가 그렇게 한 번 잡고 싶어했던 이쁜 손으로 이마의 열이 있냐며 만저주기까지...  아프다며 걱정하고 있었구나!
사실 소년은 소녀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았다.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먹고 하는 등의 사귄다는 의미의 데이트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여자인 친구로만...
지금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절친이 되어 있었다.

그 시작이 있었다면?

작가의 이전글 초겨울 빗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