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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Apr 26. 2023

생일

생일(生日)  생신(生辰) 기념 가족 여행 (1-1) 190531

생일의 뜻은 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며, 높임말은 '생신'이다. 딱히 생일과 생신을 구분할 이유는 없어 보이나 한자 辰자가 '때'라는 뜻임을 봤을 때 예전 높은 분 또는 양반들은 태어난 시간까지 필요했으리라 추측된다.

그들 지배층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고 권력과 재산, 자손의 번성을 원한다. 이를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관료로 입신하여 출세하거나 명문가와 인적 네트워크를 맺는 것이다. 특히, 음양오행설에 기초해서 결혼 잘하고 복은 받고 흉을 멀리하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귀하신 분의 생신이 언제냐 물으면 출생 '년월일시'를 포함해서 '00년 00월 00일 00시 생이시다'라고 한다. 일반 백성들은 지배층보다 명리학, 역학, 천문학 등 선진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냥 생일은 '00년 00월 00일' 이라하면 되는 것이었다. 특별히 태어난 日 정도만 알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을것이다. 어쩌면 신분제가 공고했던 시대에는 태어남이 기쁜 일도 아니었으리라!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나이 많은 어른에게는 생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로 굳어졌다.

아버지 생일(生日)은 1943년 음력 4월 20일이다.
생신(生辰)이 맞는 표현인 줄 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생일이라 한다. 아마도 부모님들 나이 드시는 걸 바라고 싶지 않은 아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가 430424이라는 것이다. 왜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엄마에게 여쭤봐도 모른다고 하신다. 아버지도 별 의미를 두지 않으시고 예전에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고 하신다. 딱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한편으로는 예전 시골 면사무소 행정이 오죽했을까 정도로 생각한다.

아버지 띠는 43년생 양띠이다. 양은 마냥 순하고 착하고 순박하고 인내심이 강하다고 한다. 양띠 생은 절대 누굴 괴롭힐 줄 모르는 대신 자존심만은 매우 강한 외유내강형이 특징이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 하다. 아버지의 경우에 연세가 드시면서 양처럼 변해 가신다. 예전 젊으셨을 때는 '한 성격' 하셨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처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살아 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지도 모른다. 목소리의 힘, 어깨의 쳐짐, 등의 구버짐 등 많이 변하셨다.

요즘은 외형적 변화 말고도 여러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자주 조신다.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듯 하다. 또한 몇 가지 말씀을 반복하신다. 그 말씀 중 몇 가지 기억되는 게 있다. '할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에 돌아 가셨다, 내가 건강한 게 너희들 도와 주는거다. 죽으면 화장해서 납골당에 '아버지, 형이랑 같이 있을거다' 등의 말씀 하신다.

그러고 보니 올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나이가 77세로 똑같다. 여쭤보니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113세라 하신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국민학교 저학년 때였고, 처음으로 결석을 했었다. 곡하는 게 신기해서 장난으로 따라하다가 어느 아저씨에게 꿀밤을 맞기도 했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밤을 새었다. 물론 꼬맹이들은 어느 방 구석에서 잤지만 말이다. 상여를 따라 줄지어 갔던 기억밖에 없다. 남성들이 앞장서고 여성들은 이상하게 뒤에서 따랐다. 아는 게 없으면 보이는 것도 없다는 말이 적어도 내게는 맞는 듯 하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와 나이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처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삼십대 후반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새벽에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던 때였다. 몸도 마음도 힘든 때였다. 못하는 소주 한 잔에 피로를 풀어야했던 때이다. 그렇게 술 냄새가 싫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코를 막고 멀리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귀여웠다. 그 때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 같았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나이를 비교하며 인생을 돌아보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동생녀석을 오라했다. 오래 전 어릴 때로 돌아가 단 한번도 못했던 진정한 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아버지, 엄마, 나, 동생 딱 네 명만의 가족 여행이었다. 이 곳 동해안에서 서울을 그리워하시는 두 분을 위해 코스를 두 분이 좋아하시는 코스로 잡았다.

두 분께는 아버지 생일 여행이라는 말은 안했다. 평생을 어렵게 생존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약자의 처지로 살아 오신 분들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 평소에 못나눈 대화도 많이 했다. 아버지는 '이건희보다 내가 낫다'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혼자서 예전 살던 분당도 다니시고 아파트 동대표 일을 하시던 분들이 오라고도 하신며 인기가 있음을 표현하시며 바쁘기도 하다고 하신다. '서울을 왔다갔다하면 한 번에 10만원은 쓴 거없이 없어진다'고도 하신다.

 '아버지 다니시는 거, 엄마랑 규칙적으로 산책 등 운동하시는거 보면 앞으로 30~40년은 거뜬하고 병원만 잘 다니시면 50년 이상도 이상 없으시겠다'고 말씀드리며, '돈 걱정말고 병원 잘 다니시고 운동 많이 하세요. 용돈은 걱정하지마시고, 돌아 가셨을 때 묘 만들고, 비석 세울 돈을 대신에 살아 계실 때 드리릴게요' 라고 말씀 드렸다. 안그래도 친구들에게 이 말을 하셨단다. 다들 맞는 말이다라며 부러워하더라고 하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지겹지 않게 두분이 가끔 다니시던 길을 따라 우리는 차를 몰았다.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하며 버스로 다니실 때와 비교도 하신다. 마치 아이들 소풍가는 것처럼 좋아하시며 대화가 끝나질 않는다. 아마도 막내 아들을 곧 본다는 기대도 있는 듯 해 보이신다.

두 분은 가끔 병원 진료을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을 다녀 오신다. 아직 이리 다니시는 게 감사하다. 이럴 때는 꼭 수방사 회관을 예약하라고 하신다. 넓고 물도 잘 나오고 식수는 복도의 정수기를 언제든 이용할 수 있어 편하다고 하신다. 4월에 종합검진을 받기 위해 호텔에 투숙했는데 좁고 답답하다며 수방사 숙소와 계속 비교하셨다. 심지어 군인들이 지켜주니 안전하다고까지 하실 정도이다. 한 10여년 전 3년 정도를 사셨으니 고향처럼 느껴지시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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