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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un 04. 2023

계급은 인격이 아니다

계급장은 내 인격이 아니다 191028

사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한 것이 하나 있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군에서도 공평한 것이 있다. 모든 현역은 반듯이 전역한다는 것이다.

위 두가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가끔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좀 심한 사람은 아예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급과 직책이 영원할 것처럼 또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다른 존재였던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도 가끔 눈쌀을 지푸리게 한다.

어쩌면 누구나가 알듯이 '군대는 계급사회다'라 하는 것처럼 그 안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착각할 수도 있으리라 애써 자위해 보지만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계급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사회나 일정한 조직 내에서의 지위, 관직 따위의 단계 또는 일정한 사회에서 신분, 재산, 직업 따위가 비슷한 사람들로 형성되는 집단 또는 그렇게 나뉜 사회적 지위' 라 정의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계급은 어떤 특정 사회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만 받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실수한다.

'계급과 인격은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데 너무 군복을 오래 입은 것일까? 무의식 중에 너무나 단순한 사실을 망각할 때가 있다. 늘 주의하고 경계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최근 또 이런 결심이 무너졌고 요사이는 그로 인해 늘 반성하고 반성한다.
어느 날, 40대 초반의 상사에게 업무지도를 빙자한 훈계까지 일장 훈시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같은 실수, 과오가 반복되니 쫌 따끔하게 혼을 내려했고 그 간단한 업무를 성의없이 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약간의 짜증도 누적되고 개선되지 않는 태도에 화도 조금 나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경우 평소에는 약간 돌려서 말하는 것이 스타일이다.

오타가 있을 때는
'처장하는 일 없다고 국어, 맞춤법 시험 문제를 주네?'

금액이 차이가 나면,
'아휴 ~  오늘 산수 공부 잘~했네'

문서 편집이 어수선하면,
'요즘 워드를 안했더니 손가락이 굳네, 파일 좀 보내봐! 연습 좀 하게' 등등

그런데 그날을 참고 참다, 벼루고 벼루다 터진 것 같다.

'업무를 이처럼 하면 어떻게 해!
저번에 검토해 준 것 가져와!
수정하라 한 것도 안해?
이건 갑질이 아니라 을질이네! 심하다! 지시 불이행 아냐? 항명하니? 인내력 테스트하니? 등등

시간이 지나고 풀죽은 모습이 안스럽고 괜히 불필요한 말을 많이 했구나하는 반성이 되었다. 따로 불렀다.

'아까는 미안했다. 업무에 집중하고 나도 좋은 소리만 하고 싶으니 도와주라!'

그러면서 토닥거렸다. 아니면 그 업무지도를 정당화한 건지는 모르겠다.

며칠 후 주말 저녁 무렵 산책을 가는데 그 친구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와 손잡고 어디가를 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아빠 손을 잡고 뭐라고 쫑알쫑알되는 모습이 귀엽고 부녀가 정다워 보였다.
호주머니를 뒤지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에이'하는데 딸아이에게 보내진 시선이 그 옆 그 간부에게 자연스레 옮겨졌다.

나와 비교해보면 나이도 어리고 계급도 낮고 업무 지식이나 경험도 부족한 듯하고 게다가 직속부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귀한 아들에, 듬직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빠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것도 40대 중년에 어리지 않은 나이이다.

업무지도만 하면 되는데...  
아마도 그 때 그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계급이 깡패다! 더럽다. 내 나이가 몇인데, 당신처럼 말만 하면 나도 한다. 그 보고서 하나 만들려고 여기저기 전화하고 인터넷 검색해야 되는 것 알아? 말만 하면 다 되나? 등등'

물론 앞에서는 말을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가끔? 때로는 그 좋지도 않은 술냄새를 풍기시며 아버지는 늦게 오실 때가 있었다. 엄마는 가끔 말씀하셨다.

'술은 몸에 좋지 않은 거다, 돈도 낭비한다, 너희는 나중에 크더라도 술은 안마셨으면 좋겠다!'

엄마 말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고 왜 아버지는 그러시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지금은 두 분다 이해가 된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의 직장살이가 힘드셨을거고 퇴근 후 소주 한잔이 그 날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 드렸을 것이다.

그 스트레스는 상급자의 업무지도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질책, 인격모독 등이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 아버지를 힘들게 한 그 사람들을 그 때 알았다면 욕 많이 했을 것이다.

그 친구의 딸 아이는 알고 있을까?
그 자랑스러운 아빠도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만약 그렇게 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안다면 뭐라할까?

그 날의 형식적인 사과를 대신해서 소주 한 잔 하며 진심으로 이야기했다.

 '미안하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았으면 좋겠고 앞으로 주의할게!'

'아닙니다, 처장님!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꼼꼼히 업무하겠습니다!'

이 말도 다 믿어서는 안되는 것을 안다. 그는 내 계급장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 계급은 잠시, 군대에서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이지 내가 아님을 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인격적인 측면을 본다면 그가 훨씬 위다. 그때 그런 말을 듣고 표내지 않으면서 묵묵히 일하며 어린 자녀들에게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 계급은 내 인격이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군복을 입을지 모르지만 이 말은 집, 사무실, 노트 등에 적어 놓고 되새겨야겠다.

요사이 왜 이리 반성할 일이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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