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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님을 보내며

by Faust Lucas

정들었던 님을 보내며 191117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라는 남녀관계에 관한 속담이 있다. '같이 한 시간이나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냈냐? 마음의 통함이 중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얼마 전 인연을 시작해 동고동락한 지 약 5개월! 정확히는 132일 째이다. 올 초여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척항 북한 목선 사건' 이후 어수선한 상황에서 구원 투수같이 한 군인이 지휘관으로 오셨다.
그즈음 그 목선의 후유증으로 부대는 속앓이와 함께 대외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는 외우내환의 연속된 시간 속에 우리는 겨우 숨만 쉬는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기존 지휘관이 보직해임이 되었고 각종 현장조사와 경계작전 실태 확인, 지도방문, 검열,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으로 부대는 마치 뺑소니 사고 후 아파하는 우울증 걸린 사람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영향 때문일까? 삼척항 담당 소초의 한 상황병이 휴가 중 한강에 투신하는 일도 발생했다. 목선사건의 정치 논쟁화로 언론은 이 사건에도 주목하며 다시 목선을 태울 기세였다.

상급부대의 지시로 장례 현장지원팀장이 되어 불을 끄고 복귀 인사를 드리던 때가 첫 번째 대면이었다. 어떤 코드, 어떻게 주파수가 맞았는지 모르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의미 있는 시간과 추억을 함께 만들기 시작한 첫 순간이었다.

어느 날은 조용히 '예수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라는 책을 주시며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지 않던 습관에서 구해 주기도 하셨다. 그의 손길인지 그의 손길을 빌리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새벽 기도도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분은 새벽기도, 오전에는 내부 업무, 오후에는 경계작전 현장지도와 확인, 복귀 후 업무 결산, 체력단련 등의 일정을 꼼꼼히 챙기셨다. 아마도 그 에너지의 원천은 타고난 성실성 같아 보였다.

그 성실한 분이 몇 시간 후면 이곳을 떠난다. 땀 흘리며 운동하고 식사하며 업무 하면서 주고받던 대화들! 그 눈빛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인사처장은 나의 lotto야! 이번 게임은 계급장 없이 하는 겁니다! 저녁에 뭐 없으시면 옹심이에 막걸리 한 잔 어떠십니까? 따님 결혼식 사회를 제가 보겠습니다. 축송은 명태로...

체력단련 시간에 거의 매일 같이 하던 테니스장에서의 웃음들! 뛰며 땀 흘리며 웃으며 즐겁게 함께 했다. 그러고 보면 참 뛰기도 잘하셨다. 우리 처와 축구도중 부상까지 당하셨지만 하루 이틀 쉬다 다시 뛰셨다.

'끊임없이 쉬지 말고 움직여라'는 건강 비결이자 삶의 지혜를 실천하고 계셨다. 여기에 더해 코트에 나오실 때는 항상 챙겨 주시던 초코파이는 별미였다.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초코파이는 정'이다. 정도 많으신 분이었다. 올해로 군복 입은 지 만 30년이 된 사람을 어릴 때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재주도 있었다.

한 번은 송이축제 때 관람 중 과음에 흥이 한참 오른 사람들이 춤을 추자고 하는 모습을 보고는 앞으로 나가 막았던 일이 있었다.

자리가 정돈되고 돌아오는 길에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장군이 왕건의 갑옷을 대신 입고 전사한 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왕건이 부장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 분도 그에 못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사실 팔꿈치 엘보에, 무릎관절 때문에 병원에 가기도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추억이 될 시간들이 아까워 포기하고 휴가 때도 함께 했다. 심지어 감기 몸살이 걸렸어도 같이 운동했다. 주변에서 몸 걱정하라는 말도 여러 번 들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참! 인간이라는 동물은 이상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프다며 쉴 만도 한데 그리하기가 싫었다. 불편한 몸, 좋지 않은 컨디션이 더 악화되지 않은 것은 함께하며 주고받은 긍정과 밝음의 기운, 에너지 덕인 것 같기도 하다.

운동 후 함께 했던 옹심이에 막걸리 한 잔! 참 편하게 해 주신 분이셨다. 이런 저녁식사도 오래 하지 않았다. 여덟 시 반을 넘긴 적이 없었다. 물론 과음도 없었고... 부담 없는 즐거운 식사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계급과 직책을 떠나 허물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언제인가는 '저는 가시고 나면 병원에 한 1주간 입원해야겠습니다! 체력이 감당이 안되고 여기저기 아파서 종합병원이 되었습니다'라며 엄살(?)을 부리기도 했다. 나이 오십된 대령이 어린아이가 되는 순간! 이런 걸 '옹심이 추억'이라 해야 할까?

여름에 만나 늦가을까지 태풍과 각종 검열과 감사, 이런저런 사건사고 뒷수습 등을 함께 한 우리는 내일이면 헤어져야 한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공식적인 지휘관계가 끝나고 전우가 되는 시간이다.

그걸 하늘도 아는지 오랜만에 겨울비가 참 많이도 내리는 날이다. 불현듯 이런 말이 떠오른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니

전랑사재사탄상(前浪死在沙灘上)
앞물결은 모래톱 여울에 스러지네

전랑불사회해상(前浪不死回海上)
앞물결이 쓰러지지 않고 바다로 돌아가면

욕화 중 생성 후랑(欲火重生成後浪)
꺼지지 않고 되살아나 다시 뒷물결 되리

더 큰 바다로 나아가며 40년 청춘을 불살라 몸 담았던 곳을 떠나 더 큰 곳!
또 다른 의미와 가치가 기다리는 그곳!

그분의 뜨거운 열정을 꿈틀거리게 하는 가슴 뛰는 일들과 매일 마주하시기를 기도한다.

오늘은 참 이상하고 신기한 날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가 내린다. 밤새워 내리려나.... 자연인으로 돌아가실 먼 길 불편하지 않게 얼른 그쳤으면 좋으련만... 그러고 보니 오늘이 군 숙소에서 주무시는 마지막 밤! 찬비가 내려 더 따뜻하게 느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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