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전해 준 선물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제는 동남아 보다 더 덥다고도 한다. 최장기 열대야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 소비량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 블랙아웃이 우려된다는 뉴스에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무더위와 가뭄이 깊어서일까 시원한 소나기 소식이 들린다. 내일도 모레도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이다.
한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자연히 준 최고의 선물이다. 무더위를 한 번에 날려 버리고 탁하고 거친 뜨거운 공기를 씻겨 준다. 후덥지근한 기분과 온몸을 감싸다 못해 머릿속, 마음 깊은 곳까지 끈적거리던 칙칙함과 쾌쾌함 마저도 날려 버리는 청랑 음료 같은 힘이 있다.
오늘같이 내리는 비가 장마나 폭우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선물일 것이다.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 바짝 마른 저수지 때문에 걱정하는 가뭄지역 사람들에게 기다림 끝에 내리는 비는 삶에 활력과 생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찜통더위 한가운데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단비, 소나기, 소낙비 등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다를지라도 내게는 추억비 그 자체이다.
잊히지 않는 비 오는 날의 첫사랑! 비와 우산 속 그 소녀가 있기 때문이다. 무미 건조한 일상, 마음속 깊은 곳의 끈적거리던 세상의 온갖 상념들을 깨끗하게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때 여름도 더웠고 한참 공부할 학생은 이성교제를 하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을 비와 우산으로 가릴 수 있어서일까? 비가 만들어 준 우산 속 둘만의 공간에서 느껴던 채취 때문일까? 오늘 같은 날이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건지 온몸의 세포들은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소환하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낮의 빗소에 취해 겨우 일어났건만 밤이 되어도 그 비는 계속 내리고 그 소리는 더욱 크게만 들린다. 사람들은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우산 속으로 튕겨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된다.
빗줄기 소리가 커질수록 그 기억은 굵어지는 빗줄기처럼 더욱 선명해진다. 그 끝을 자연스레 쫓아가는 감정은 빗물로 포장된 애틋한 선물이다. 여기에 흠뻑 젖는 것은 사치는 아니겠지!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헝클어지고 어수선해진 가슴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아무 대가 없이 바짝 마른 푸석한 감정을 깨우고 갈라진 땅에 묻혀 있던 그리움의 싹도 움트게 한다. 건조한 가슴의 중년 아저씨를 고등학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단한 친구이다.
지금은 그 아이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그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흔적일 것인데도 오늘 같은 날이면 우산 속에서 오라며 부를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참 이상하다. 변덕스러운 빗줄기와 어울려 오래된 풋사랑의 추억을 자연스레 현실과 오버랩시킨다.
여름의 한가운데여서 그럴까? 이슬비인지 가루비인지 뭐라 딱히 부르기도 애매한 형태로 바뀌어 잔잔한 비가 되어 내린다.
이런 빗속에서는 우산이 있거나 없거나, 쓰거나 말거나 누구라도 어울린다. 하지만 남녀가 같이 걸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둘이서 따로 우산을 쓰면 이상하게 보인다. 거기에 더해 우산이라도 없다면 배려심이 없는 남자가 될 수도 있다. 남녀가 각각 우산을 쓴다면 멋쩍은 사이거나 모르는 관계로 보더라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좀 멀찍이서 맑고 생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등에 가방을 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학생의 대화 소리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혹시나 방해될까 가로등 그림자 속으로 반사적으로 숨는다. 아마도 공부하다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춘 것 같다. ‘그 몇 분 안 되는 시간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일거야’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파트 단지 내이기 때문인지 손도 잡지 않았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낮 길가에서 스킨십을 하는 학생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기억이 난다.
‘이 시간까지 공부하고 오는 저들은 모범생이라 그런가? 이팔청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몽룡과 춘향이는 할 것 다했는데... ’
여러 가지 상상들을 한다. 단정히 걷는 여학생, 그 옆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걷는 남학생, 하지만 눈길만은 여학생에게서 뗄 줄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걷는 모습, 손짓, 간간이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두 사이가 짐작이 되었다.
'이번 시험 끝나고 영화 보러 갈래?'
'맛있는 떡볶이 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
'내일 도서관 몇 시에 갈 거야?'
둘만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내용일 거라 짐작된다. 같은 시간, 장소에 둘이 함께만 할 수 있다면 뭘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 멋진 장소보다도 둘만의 설렘이 더 좋을 것이다. 부러웠다.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있던데 이기고 지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두 학생이 만들고 있는 미래의 추억에 방해될까 봐 더 짙은 그림자 속으로 조심조심 몸을 숨겼다.
30년도 훌쩍 지난 그 설레던 때,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게 되는 그때로 데려 가 준, 그들이 준 선물에 대한 작은 성의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변했든지 학생들에게 최고의 스트레스는 성적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이성친구일 것이다.
선생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일부 돌연변이 모범생을 제외하고는 그럴 것이다. 특히나 입시를 목적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는 그 절정이었다. 날은 덥고 그만큼 공부는 하기 싫고 한 여름 무더위에 또래 여학생들의 옷은 짧아지고 시험은 계속되었다.
얼른 이 시기만 지나고 자유로운 어른이 되기만을 꿈꾸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행운아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같이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소녀는 첫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도 가끔 비가 오면 그 짙은 여운을 전해준다. 그것도 오늘처럼 여름 비 오는 날은 더욱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산을 같이 쓸까? 말까? 불쑥 같이 쓰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용기를 내어 내 우산을 접고 같이 쓰려고 했었다.
‘와? 하나만 쓰니? 비 맞게!’
처음으로 같이 우산을 쓰려하다가 맞은 핀잔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 후로 그 아이가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지고 있던 우산을 친구에게 주었다. 그녀와 같이 쓴 우산 속은 오로시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을지라도 그녀에게는 한 방울의 비라도 맞게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걷다가 비가 그치면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래도 우산을 걷고 나면 그네는 선물을 주었다. 젖은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 뭐 그런 여러 가지 표정,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들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학생들은 갈림길에서 헤어지지 않고 한 참을 이야기 한다. 비가 좀 굵어지기 시작했는데도 그대로이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훔쳐보는 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잠시 후 어디선가 한 아이가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다. 여학생의 동생쯤으로 보인다. 눈치도 없어 보인다. 우산을 전해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는 얄미운 그 녀석 때문에 강제로 끝이 났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소녀는 동생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혼자 남은 남학생은 한 참을 바라보다가 방향을 돌려 걸었다. 소녀와 함께 걸을 때와 달랐다. 발걸음이 무겁고 느렸다. 혼자라서 그럴까? 비는 굵어지는데 우산이 없어서일까? 좀 더 추억을 만들지 못해서일까? 저 아이도 언제인가는 이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만치 사라져 간 우산 속 그 긴 머리 여학생의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비가 전해 준 선물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제는 동남아 보다 더 덥다고도 한다. 최장기 열대야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 소비량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 블랙아웃이 우려된다는 뉴스에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무더위와 가뭄이 깊어서일까 시원한 소나기 소식이 들린다.
내일도 모레도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이다. 한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자연히 준 최고의 선물이다. 무더위를 한 번에 날려 버리고 탁하고 거친 뜨거운 공기를 씻겨 준다. 후덥지근한 기분과 온몸을 감싸다 못해 머릿속, 마음 깊은 곳까지 끈적거리던 칙칙함과 쾌쾌함 마저도 날려 버리는 청랑 음료 같은 힘이 있다.
오늘같이 내리는 비가 장마나 폭우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선물일 것이다.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 바짝 마른 저수지 때문에 걱정하는 가뭄지역 사람들에게 기다림 끝에 내리는 비는 삶에 활력과 생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찜통더위 한가운데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단비, 소나기, 소낙비 등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다를지라도 내게는 추억비 그 자체이다. 잊히지 않는 비 오는 날의 첫사랑! 비와 우산 속 그 소녀가 있기 때문이다. 무미 건조한 일상, 마음속 깊은 곳의 끈적거리던 세상의 온갖 상념들을 깨끗하게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때 여름도 더웠고 한참 공부할 학생은 이성교제를 하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을 비와 우산으로 가릴 수 있어서일까? 비가 만들어 준 우산 속 둘만의 공간에서 느껴던 채취 때문일까? 오늘 같은 날이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건지 온몸의 세포들은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소환하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낮의 빗소에 취해 겨우 일어났건만 밤이 되어도 그 비는 계속 내리고 그 소리는 더욱 크게만 들린다. 사람들은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우산 속으로 튕겨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된다. 빗줄기 소리가 커질수록 그 기억은 굵어지는 빗줄기처럼 더욱 선명해진다. 그 끝을 자연스레 쫓아가는 감정은 빗물로 포장된 애틋한 선물이다. 여기에 흠뻑 젖는 것은 사치는 아니겠지!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헝클어지고 어수선해진 가슴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아무 대가 없이 바짝 마른 푸석한 감정을 깨우고 갈라진 땅에 묻혀 있던 그리움의 싹도 움트게 한다. 건조한 가슴의 중년 아저씨를 고등학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단한 친구이다.
지금은 그 아이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그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흔적일 것인데도 오늘 같은 날이면 우산 속에서 오라며 부를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참 이상하다. 변덕스러운 빗줄기와 어울려 오래된 풋사랑의 추억을 자연스레 현실과 오버랩시킨다. 여름의 한가운데여서 그럴까? 이슬비인지 가루비인지 뭐라 딱히 부르기도 애매한 형태로 바뀌어 잔잔한 비가 되어 내린다.
이런 빗속에서는 우산이 있거나 없거나, 쓰거나 말거나 누구라도 어울린다. 하지만 남녀가 같이 걸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둘이서 따로 우산을 쓰면 이상하게 보인다. 거기에 더해 우산이라도 없다면 배려심이 없는 남자가 될 수도 있다. 남녀가 각각 우산을 쓴다면 멋쩍은 사이거나 모르는 관계로 보더라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좀 멀찍이서 맑고 생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등에 가방을 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학생의 대화 소리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혹시나 방해될까 가로등 그림자 속으로 반사적으로 숨는다. 아마도 공부하다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춘 것 같다. ‘그 몇 분 안 되는 시간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일거야’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파트 단지 내이기 때문인지 손도 잡지 않았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낮 길가에서 스킨십을 하는 학생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기억이 난다.
‘이 시간까지 공부하고 오는 저들은 모범생이라 그런가? 이팔청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몽룡과 춘향이는 할 것 다했는데... ’
여러 가지 상상들을 한다. 단정히 걷는 여학생, 그 옆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걷는 남학생, 하지만 눈길만은 여학생에게서 뗄 줄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걷는 모습, 손짓, 간간이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두 사이가 짐작이 되었다.
'이번 시험 끝나고 영화 보러 갈래?'
'맛있는 떡볶이 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
'내일 도서관 몇 시에 갈 거야?'
둘만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내용일 거라 짐작된다. 같은 시간, 장소에 둘이 함께만 할 수 있다면 뭘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 멋진 장소보다도 둘만의 설렘이 더 좋을 것이다. 부러웠다.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있던데 이기고 지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두 학생이 만들고 있는 미래의 추억에 방해될까 봐 더 짙은 그림자 속으로 조심조심 몸을 숨겼다. 30년도 훌쩍 지난 그 설레던 때,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게 되는 그때로 데려 가 준, 그들이 준 선물에 대한 작은 성의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변했든지 학생들에게 최고의 스트레스는 성적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이성친구일 것이다. 선생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일부 돌연변이 모범생을 제외하고는 그럴 것이다. 특히나 입시를 목적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는 그 절정이었다. 날은 덥고 그만큼 공부는 하기 싫고 한 여름 무더위에 또래 여학생들의 옷은 짧아지고 시험은 계속되었다. 얼른 이 시기만 지나고 자유로운 어른이 되기만을 꿈꾸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행운아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같이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소녀는 첫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도 가끔 비가 오면 그 짙은 여운을 전해준다. 그것도 오늘처럼 여름 비 오는 날은 더욱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산을 같이 쓸까? 말까? 불쑥 같이 쓰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용기를 내어 내 우산을 접고 같이 쓰려고 했었다.
‘와? 하나만 쓰니? 비 맞게!’
처음으로 같이 우산을 쓰려하다가 맞은 핀잔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 후로 그 아이가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지고 있던 우산을 친구에게 주었다. 그녀와 같이 쓴 우산 속은 오로시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을지라도 그녀에게는 한 방울의 비라도 맞게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걷다가 비가 그치면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래도 우산을 걷고 나면 그네는 선물을 주었다. 젖은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 뭐 그런 여러 가지 표정,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들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학생들은 갈림길에서 헤어지지 않고 한 참을 이야기 한다. 비가 좀 굵어지기 시작했는데도 그대로이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훔쳐보는 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잠시 후 어디선가 한 아이가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다. 여학생의 동생쯤으로 보인다. 눈치도 없어 보인다. 우산을 전해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는 얄미운 그 녀석 때문에 강제로 끝이 났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소녀는 동생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혼자 남은 남학생은 한 참을 바라보다가 방향을 돌려 걸었다. 소녀와 함께 걸을 때와 달랐다. 발걸음이 무겁고 느렸다. 혼자라서 그럴까? 비는 굵어지는데 우산이 없어서일까? 좀 더 추억을 만들지 못해서일까? 저 아이도 언제인가는 이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만치 사라져 간 우산 속 그 긴 머리 여학생의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제는 동남아 보다 더 덥다고도 한다. 최장기 열대야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 소비량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 블랙아웃이 우려된다는 뉴스에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무더위와 가뭄이 깊어서일까 시원한 소나기 소식이 들린다. 내일도 모레도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이다. 한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자연히 준 최고의 선물이다. 무더위를 한 번에 날려 버리고 탁하고 거친 뜨거운 공기를 씻겨 준다. 후덥지근한 기분과 온몸을 감싸다 못해 머릿속, 마음 깊은 곳까지 끈적거리던 칙칙함과 쾌쾌함 마저도 날려 버리는 청랑 음료 같은 힘이 있다. 오늘같이 내리는 비가 장마나 폭우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선물일 것이다.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 바짝 마른 저수지 때문에 걱정하는 가뭄지역 사람들에게 기다림 끝에 내리는 비는 삶에 활력과 생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찜통더위 한가운데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단비, 소나기, 소낙비 등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다를지라도 내게는 추억비 그 자체이다. 잊히지 않는 비 오는 날의 첫사랑! 비와 우산 속 그 소녀가 있기 때문이다. 무미 건조한 일상, 마음속 깊은 곳의 끈적거리던 세상의 온갖 상념들을 깨끗하게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때 여름도 더웠고 한참 공부할 학생은 이성교제를 하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을 비와 우산으로 가릴 수 있어서일까? 비가 만들어 준 우산 속 둘만의 공간에서 느껴던 채취 때문일까? 오늘 같은 날이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건지 온몸의 세포들은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소환하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낮의 빗소에 취해 겨우 일어났건만 밤이 되어도 그 비는 계속 내리고 그 소리는 더욱 크게만 들린다. 사람들은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우산 속으로 튕겨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된다. 빗줄기 소리가 커질수록 그 기억은 굵어지는 빗줄기처럼 더욱 선명해진다. 그 끝을 자연스레 쫓아가는 감정은 빗물로 포장된 애틋한 선물이다. 여기에 흠뻑 젖는 것은 사치는 아니겠지!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헝클어지고 어수선해진 가슴속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아무 대가 없이 바짝 마른 푸석한 감정을 깨우고 갈라진 땅에 묻혀 있던 그리움의 싹도 움트게 한다. 건조한 가슴의 중년 아저씨를 고등학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단한 친구이다.
지금은 그 아이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그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흔적일 것인데도 오늘 같은 날이면 우산 속에서 오라며 부를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참 이상하다. 변덕스러운 빗줄기와 어울려 오래된 풋사랑의 추억을 자연스레 현실과 오버랩시킨다. 여름의 한가운데여서 그럴까? 이슬비인지 가루비인지 뭐라 딱히 부르기도 애매한 형태로 바뀌어 잔잔한 비가 되어 내린다.
이런 빗속에서는 우산이 있거나 없거나, 쓰거나 말거나 누구라도 어울린다. 하지만 남녀가 같이 걸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둘이서 따로 우산을 쓰면 이상하게 보인다. 거기에 더해 우산이라도 없다면 배려심이 없는 남자가 될 수도 있다. 남녀가 각각 우산을 쓴다면 멋쩍은 사이거나 모르는 관계로 보더라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좀 멀찍이서 맑고 생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등에 가방을 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학생의 대화 소리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혹시나 방해될까 가로등 그림자 속으로 반사적으로 숨는다. 아마도 공부하다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춘 것 같다. ‘그 몇 분 안 되는 시간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일거야’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파트 단지 내이기 때문인지 손도 잡지 않았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낮 길가에서 스킨십을 하는 학생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기억이 난다.
‘이 시간까지 공부하고 오는 저들은 모범생이라 그런가? 이팔청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몽룡과 춘향이는 할 것 다했는데... ’
여러 가지 상상들을 한다. 단정히 걷는 여학생, 그 옆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걷는 남학생, 하지만 눈길만은 여학생에게서 뗄 줄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걷는 모습, 손짓, 간간이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두 사이가 짐작이 되었다.
'이번 시험 끝나고 영화 보러 갈래?'
'맛있는 떡볶이 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
'내일 도서관 몇 시에 갈 거야?'
둘만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내용일 거라 짐작된다. 같은 시간, 장소에 둘이 함께만 할 수 있다면 뭘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 멋진 장소보다도 둘만의 설렘이 더 좋을 것이다. 부러웠다.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있던데 이기고 지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두 학생이 만들고 있는 미래의 추억에 방해될까 봐 더 짙은 그림자 속으로 조심조심 몸을 숨겼다. 30년도 훌쩍 지난 그 설레던 때,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게 되는 그때로 데려 가 준, 그들이 준 선물에 대한 작은 성의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변했든지 학생들에게 최고의 스트레스는 성적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이성친구일 것이다. 선생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일부 돌연변이 모범생을 제외하고는 그럴 것이다. 특히나 입시를 목적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는 그 절정이었다. 날은 덥고 그만큼 공부는 하기 싫고 한 여름 무더위에 또래 여학생들의 옷은 짧아지고 시험은 계속되었다. 얼른 이 시기만 지나고 자유로운 어른이 되기만을 꿈꾸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행운아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같이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소녀는 첫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도 가끔 비가 오면 그 짙은 여운을 전해준다. 그것도 오늘처럼 여름 비 오는 날은 더욱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산을 같이 쓸까? 말까? 불쑥 같이 쓰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용기를 내어 내 우산을 접고 같이 쓰려고 했었다.
‘와? 하나만 쓰니? 비 맞게!’
처음으로 같이 우산을 쓰려하다가 맞은 핀잔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 후로 그 아이가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지고 있던 우산을 친구에게 주었다. 그녀와 같이 쓴 우산 속은 오로시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을지라도 그녀에게는 한 방울의 비라도 맞게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걷다가 비가 그치면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래도 우산을 걷고 나면 그네는 선물을 주었다. 젖은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 뭐 그런 여러 가지 표정,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들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학생들은 갈림길에서 헤어지지 않고 한 참을 이야기 한다. 비가 좀 굵어지기 시작했는데도 그대로이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훔쳐보는 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잠시 후 어디선가 한 아이가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다. 여학생의 동생쯤으로 보인다. 눈치도 없어 보인다. 우산을 전해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는 얄미운 그 녀석 때문에 강제로 끝이 났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소녀는 동생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혼자 남은 남학생은 한 참을 바라보다가 방향을 돌려 걸었다. 소녀와 함께 걸을 때와 달랐다. 발걸음이 무겁고 느렸다. 혼자라서 그럴까? 비는 굵어지는데 우산이 없어서일까? 좀 더 추억을 만들지 못해서일까? 저 아이도 언제인가는 이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만치 사라져 간 우산 속 그 긴 머리 여학생의 뒷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비가 전해 준 선물
어제도 오늘도 비가 내렸다. 이제는 동남아 보다 더 덥다고도 한다. 최장기 열대야 기록을 연일 갱신하고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 소비량이 사상 최고치를 넘어 블랙아웃이 우려된다는 뉴스에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무더위와 가뭄이 깊어서일까 시원한 소나기 소식이 들린다. 내일도 모레도 비가 내릴거라는 예보이다. 한 여름에 내리는 비는 자연히 준 최고의 선물이다. 무더위를 한 번에 날려 버리고 탁하고 거친 뜨거운 공기를 씻겨 준다. 후덥지근한 기분과 온몸을 감싸다 못해 머릿 속, 마음 깊은 곳까지 끈적거리던 칙칙함과 쾌쾌함 마저도 날려 버리는 청랑 음료 같은 힘이 있다. 오늘같이 내리는 비가 장마나 폭우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선물일 것이다. 타들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농부, 바짝 마른 저수지 때문에 걱정하는 가뭄지역 사람들에게 기다림 끝에 내리는 비는 삶에 활력과 생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찜통 더위 한가운데 시원하게 내리는 여름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단비, 소나기, 소낙비 등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 다를지라도 내게는 추억비 그 자체이다. 잊혀지지 않는 비오는 날의 첫사랑! 비와 우산 속 그 소녀가 있기 때문이다. 무미 건조한 일상, 마음속 깊은 곳의 끈적거리던 세상의 온갖 상념들을 깨끗하게 식혀주기 때문이다.
그때 여름도 더웠고 한참 공부할 학생은 이성교제를 하면 안된다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을 비와 우산으로 가릴 수 있어서일까? 비가 만들어 준 우산 속 둘만의 공간에서 느껴던 채취 때문일까? 오늘 같은 날이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건지 온 몸의 세포들은 지금도 그 순간을 생생히 소환하며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 낮의 빗소에 취해 겨우 일어났건만 밤이 되어도 그 비는 계속 내리고 그 소리는 더욱 크게만 들린다. 사람들은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 한 우산 속으로 팅겨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된다. 빗줄기 소리가 커질수록 그 기억은 굵어지는 빗줄기처럼 더욱 선명해진다. 그 끝을 자연스레 쫓아가는 감정은 빗물로 포장된 애틋한 선물이다. 여기에 흠뻑 젖는 것은 사치는 아니겠지! 창가에 부딪히는 빗방울은 헝클어지고 어수선해진 가슴 속으로 스며 들기도 한다. 아무 댓가없이 바짝 마른 푸석한 감정을 깨우고 갈라진 땅에 묻혀 있던 그리움의 싹도 움트게 한다. 건조한 가슴의 중년 아저씨를 고등학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대단한 친구이다.
지금은 그 아이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그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흔적일 것인데도 오늘 같은 날이면 우산 속에서 오라며 부를 것 같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참 이상하다. 변덕스러운 빗줄기와 어울려 오래된 풋사랑의 추억을 자연스레 현실과 오버랩시킨다. 여름의 한가운데여서 그럴까? 이슬비인지 가루비인지 뭐라 딱히 부르기도 애매한 형태로 바뀌어 잔잔한 비가 되어 내린다.
이런 빗속에서는 우산이 있거나 없거나, 쓰거나 말거나 누구라도 어울린다. 하지만 남녀가 같이 걸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둘이서 따로 우산을 쓰면 이상하게 보인다. 거기에 더해 우산이라도 없다면 배려심이 없는 남자가 될 수도 있다. 남녀가 각각 우산을 쓴다면 멋쩍은 사이거나 모르는 관계로 보더라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좀 멀찍이서 맑고 생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등에 가방을 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학생의 대화 소리이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같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혹시나 방해될까 가로등 그림자 속으로 반사적으로 숨는다. 아마도 공부하다가 집에 갈 시간을 맞춘 것 같다. ‘그 몇 분 안 되는 시간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서 일거야’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파트 단지 내이기 때문인지 손도 잡지 않았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어도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낮 길가에서 스킨십을 하는 학생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던 기억이 난다.
‘이 시간까지 공부하고 오는 저들은 모범생이라 그런가? 이팔청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몽룡과 춘향이는 할 것 다했는데... ’
여러가지 상상들을 한다. 단정히 걷는 여학생, 그 옆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며 걷는 남학생, 하지만 눈길만은 여학생에게서 뗄 줄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걷는 모습, 손짓, 간간히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두 사이가 짐작이 되었다.
'이번 시험 끝나고 영화보러갈래?'
'맛있는 떡볶이 집이 새로 생겼다는데... '
'내일 도서관 몇 시에 갈거야?'
둘만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내용일거라 짐작된다. 같은 시간, 장소에 둘이 함께만 할 수 있다면 뭘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 멋진 장소보다도 둘만의 설레임이 더 좋을 것이다. 부러웠다. 부러우면 진다는 말도 있던데 이기고 지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두 학생이 만들고 있는 미래의 추억에 방해될까봐 더 짙은 그림자 속으로 조심조심 몸을 숨겼다. 30년도 훌쩍 지난 그 설레던 때, 생각만으로도 미소 짓게 되는 그 때로 데려 가 준, 그들이 준 선물에 대한 작은 성의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변했든지 학생들에게 최고의 스트레스는 성적이고 최고의 관심사는 이성친구일 것이다. 선생님,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일부 돌연변이 모범생을 제외하고는 그럴 것이다. 특히나 입시를 목적에 두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는 그 절정이었다. 날은 덥고 그 만큼 공부는 하기 싫고 한 여름 무더위에 또래 여학생들의 옷은 짧아지고 시험은 계속되었다. 얼른 이 시기만 지나고 자유로운 어른이 되기만을 꿈꾸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행운아이였다. 방학을 이용해 같이 학원을 다닐 수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그 소녀는 첫사랑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도 가끔 비가 오면 그 짙은 여운을 전해준다. 그것도 오늘처럼 여름 비오는 날은 더욱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산을 같이 쓸까? 말까? 불쑥 같이 쓰자고 하면 뭐라고 할까?’
용기를 내어 내 우산을 접고 같이 쓰려고 했었다.
‘와? 하나만 쓰노? 비맞게!’
처음으로 같이 우산을 쓰려하다가 맞은 핀잔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 후로 그 아이가 우산을 들고 있는 것을 볼 때면 가지고 있던 우산을 친구에게 주었다. 그녀와 같이 쓴 우산 속은 오로시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온몸이 흠뻑 젖을지라도 그녀에게는 한 방울의 비라도 맞게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걷다가 비가 그치면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래도 우산을 걷고 나면 그네는 선물을 주었다. 젖은 모습을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 뭐 그런 여러가지 표정, 미소를 보내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저들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학생들은 갈림 길에서 헤어지지 않고 한 참을 이야기 한다. 비가 좀 굵어지기 시작했는데도 그대로이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훔쳐보는 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잠시 후 어디선가 한 아이가 이름을 부르며 나타났다. 여학생의 동생쯤으로 보인다. 눈치도 없어 보인다. 우산을 전해주고 그냥 가면 될 것을 기다린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대화는 얄미운 그 녀석 때문에 강제로 끝이 났다. 빗줄기는 더 굵어졌고 소녀는 동생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혼자 남은 남학생은 한 참을 바라보다가 방향을 돌려 걸었다. 소녀와 함께 걸을 때와 달랐다. 발걸음이 무겁고 느렸다. 혼자라서 그럴까? 비는 굵어지는데 우산이 없어서 일까? 좀 더 추억을 만들지 못해서일까? 저 아이도 언제인가는 이 순간이 그리워질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저만치 사라져간 우산 속 그 긴머리 여학생의 뒷 모습이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