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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이 줄 수 있는 선물, 딸에게 남긴 특별한 유산

by Faust Lucas



어릴 적부터 나는 글과 책 읽기를 깊이 사랑했다. 활자 속에서 위안을 얻고, 이야기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세상을 배우며 함께 울고 웃었다. 손끝으로 느끼는 종이의 감촉, 잉크 냄새마저 나에게는 작은 행복이었다. 자연스레 내 안에도 단어들이 쌓여갔고, 그 단어들은 생각의 파편이 되거나 감정의 조각들을 엮어 글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은 늘 망설여졌다.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기록들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서툰 글이 혹여 평가절하될까 두렵기도 했고, 내 안의 솔직한 감정들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에 움츠러들곤 했다. 그래서 내 글들은 대부분 노트 귀퉁이나 컴퓨터 깊숙한 곳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통해 얻는 위로와 깨달음을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또한 함께 자랐다. 글로써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그 글이 삶의 어려움 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거나, 현실에 지쳐 주저앉은 이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해할 때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책 속의 문장들, 도무지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삶의 난관 앞에서 지혜를 얻게 해 준 구절들처럼, 나 또한 그런 힘을 가진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내 경험과 생각을 녹여낸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내가 글쓰기를 통해 바라는 가장 큰 이상이었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만 품었던 그런 꿈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실의 문을 두드릴 용기를 내게 해 주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과, 내 안에 쌓아둔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놓고 싶다는 간절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죠. 그동안 혼자 숨어 끄적였던 글들, 스마트폰 메모장에 빼곡히 채워 넣었던 생각의 조각들을 어딘가에 보여주고 객관적인 평가와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이미 검증된 작가들의 진솔한 일상 이야기부터 깊이 있는 전문 지식까지, 다양한 글들이 넘쳐나는 그곳은 글쓰기를 갈망하던 나에게 무척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이곳이라면 내 글의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싹텄다.
쉽지 않은 작가 승인 절차를 거치며 몇 번의 좌절도 맛보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글을 다듬고 다시 도전하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배우고 영감을 얻었고, 꾸준히 내 글을 쓰며 독자들과 소통했다. 읽고 쓰고 소통하는 과정은 나를 계속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묵묵히 글 쓰는 시간을 보내던 중, 내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출간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오랫동안 꾸었던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생애 첫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벅찬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인쇄된 내 이름 석 자와 글자들이 선명하게 박힌 책 표지를 어루만지며 감출 수 없는 기쁨을 만끽했다. 이 기쁨을 가장 먼저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역시 가족이었다. 서둘러 집으로 가 의기양양하게 책을 내밀며 자랑했다. 아이들은 신기해했고, 아내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게 책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책이야. 이 책의 저작권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예쁜 딸, 너를 위한 선물이야. 혹시라도 아빠가 이 세상에 없게 되더라도, 이 책의 저작권은 아빠가 사라진 후에도 70년 동안 네 것이 될 거야. 세상 누구도 네 허락 없이 이 책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아빠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자랑스러웠단다."

딸에게 책과 저작권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나는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가정환경이 넉넉지 못했던 학창 시절, 부유한 친구들이 자랑스레 내보이던 유명 상표의 옷이나 운동화를 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친구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값비싼 선물로 또래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때로는 나 같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위화감을 주거나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때는 그런 물질적인 물건들이 가진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물질적인 부나 값비싼 선물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것이 주는 기쁨이나 만족감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값비싼 선물보다 더 귀한 것이 있지 않을까. 오로지 '나'만이 줄 수 있는 것, 내 삶의 경험과 생각, 영혼이 담긴 무형의 가치 말이다.


글쓰기를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맺어진 저작권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특별하고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 그 안에 담긴 나의 이야기와 생각이 내가 사라진 후에도 딸과 함께하며, 그 지적 재산에 대한 권리가 딸에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물질적인 유산보다 값지게 느껴졌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를 오롯이 물려준다는 자부심이 가슴 벅차게 차올랐다. 그 순간은 내가 나에게 준 영원한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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