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여행 250518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이리저리 빈둥거리다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인터넷을 뒤지던지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되었지싶다. 국가 보훈부 제대군인지원센터라는 곳에서 전라도와 협업하여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귀농귀촌 체험을 가는 것이다.
뭐 이제 군대 생활은 정리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시간이 많다. 그 많던 회의, 훈련, 업무 등도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때는 바둥바둥 거리며 사소한 것에도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들이었다.
2박 3일이라는 기간 동안 한적한 전라도 화순에서 체험을 한다고 한다. 화순? 기억나는 것은 동복 유격장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마 있겠지? 그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역을 한 후 과거 선비들이 한양에서 쫓겨나 유배길에 올랐던 길을 따라 한번 걷고 싶어 가보려 했던 것이 전부이다.
여느 때와 다르게 서초동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다. 평상시는 집에서 차를 가지고 외곽순환도로를 따라 한 20여 분 달리다 보면 도착했던 것과는 다른 코스이다. 집에서 나오는 시간이야 평소와 거의 같았지만, 지하철은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삶의 전쟁터였다.
한 30여 년을 정해진 장소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인정받는 삶을 이제는 뒤로 할 때이다. 매일이 전쟁터인줄만 알았던 군 생활을 돌아보니, 비닐 하우스 안의 화초같이 살아 온 시간들이었다. 단 한번도 월급을 밀려 받은 적이 없었다. 그저 출근하고 하게 된 일을 하면, 가끔 잘하면 인정받는 편안한 시간이었다.
휴대폰이 안내하는 대로 걷다 보니 양지빌딩이 보인다. 2006년인지 2007년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같이 일하던 10여 년 선배를 따라왔던 기억이 났다. ‘언젠가는 이곳에 올터이니 한번 보기나 하라’며 데리고 오셨던 분도 생각났다.
잠깐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했다. 몇몇은 부부가 같이 왔다. 아내는 무료로 여행하는 것이니 같이 가자고 몇 차례나 꼬셨지만 넘어 오지 않았다. 역시나 시골살이는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속설은 틀리지가 않는다. 그런데 같이 온 쌍쌍의 부부들은 분명히 재혼한 사이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 15~6년 전 함께했던 후배가 아는 척을 한다. 재혼했냐 물었더니 웃는다. 그런데 마치 불륜처럼 사이가 좋아 보인다.
엉뚱한 생각을 하며, 유튜브를 보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한적한 길, 사람 없는 거리는 딱 내 스타일이다. 여유와 느림이 가득한 다른 세상이다. 우리를 도와 함께 한 센터분들도 친절하기 그지없다. 아내와 같이 오냐며 몇 번이고 묻던 김ㅇㅇ 주무관님 얼굴을 볼 때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걸기도 주춤했다. 전라도를 소개하는, 본인은 ENTJ라고 소개하는 강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본격적인 전라도 체험이 시작 되었다.
잠시 출출함을 느낄 때쯤, 청국장과 비빔밥은 시골의 정취를 눈과 귀, 혀와 코 등 오감으로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부모님의 고향, 내가 태어나 짧지만 몇 년 살았던 곳이 전라도라 그런지 입맛은 유년 시절을 소환한다. 이어진 식초 농가, 오코 농장 등은 다 좋은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최저 시급 알바나 좀 해보려 했는데, 그 정도 규모와 여유는 없는 듯했다.
‘뭐 별거 없구나’ 하는 마음으로 숙소로 도착했다. 엄청난 규모의 리조트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래서 영업이 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룸메이트가 코를 골지 않아 편하게 쉬었다. 시선한 바람과 공기 냄새, 적막한 어둠을 벗 삼아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은 힐링 그 자체였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는 여유, 어제보다 더욱 청량하고 상쾌한 산소의 맛은 폐암 환자도 완치시키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공짜란다.
유튜브, 뉴스, SNS 등에서 귀농귀촌하면 지역 텃새가 심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 힐링이 된다면 그런 것들은 무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뒤적거렸던 안내 책자는 사실 필요가 없을 듯했다. 전라도 음식처럼 맛깔나게 설명하는 강사님이 아니더라도 직접 와서 온몸으로 느끼는 정취는 다시 오고 싶다는 세포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2일차, 아침을 오리지널 사골 우거지국으로 시작해서, 담양 딸기 마을, 산삼인지 인삼인지 중요하지 않지만, 농가 방문, 너무 좋았다. 적당히 내리는 봄 비는 반듯하게 정리된 논에 가득 한 물처럼, 마음 속을 촉촉이 적셔 주었다. 거기에 더해, 인삼 사장님께 알바 필요없냐고 했더니, 일손이야 언제든 환영한다고 한다.
잠은 어디서? 집에서 같이 자면 된다고 한다. 아니 저기 베트남 아가씨들하고 있으면서 말도 배우고 하면 좋겠다고 하니 그건 아니라고 한다. 아가씨들이 아저씨는 별로라고 한단다. 역시 호남 특유의 유머와 해학이 넘친다.
비는 내리고, 서울에서처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 산성비다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생명의 비다. 내 마음의 갈라진 거북이 등 같은 갈라짐을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적당히 아름답게 봉긋한 안개 낀 호남평야의 산봉오리를 보며, 부풀어 오르는 처녀 가슴처럼 설렘이 느껴졌다. 모내기를 준비 중인 논처럼, 저 멀리 농사를 준비 중인 기계의 모습도 아름답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본다.
이런 풍경 탓일까?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을 쓴 담양이고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청평이 있었다. 송강이 왜 술을 좋아 했는지? 이런 풍광을 맞으며 살았으니 글도 나오고 유배의 벌도 선물로 인식하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와서 후회를 남길 수 없다. ENTJ 강사님께 송강의 정취를 맞고 싶다고 했다. 안가면 조퇴를 하겠다고 했다.
대답은 역시나이다. 송강정을 둘러보고 5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그와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는 호사도 누렸다. 이렇게 좋은 곳, 역사와 인문학과 삶의 정취와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이제야 온 것이 후회된다. 가능하면 이곳을 관리하던 분이 계셨던 작은 오두박 집에 있으면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담양군수님께서 허락은 해 주실까? 실현 가능성도 없는 허황된 망상에 사로 잡힌다.
연녹의 풍경과 나즉히 내려 깔린 논 안개, 그 어느 곳에서도 채울 수 없는 생명의 향기를 무료로 얻는 호사가 없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다산 정약용과 손암 정약전도 기다리는데 시간이 아쉽다. 강사님께 또 따졌다. 왜 근처에 좋은 곳이 많은데 안가느냐? 소쇄원도 있는데, 조선 최고의 별서정원, 조광조가 세상을 등지고 내려와 한적하게 살면서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닦던 곳,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린 곳, 왜 이런 곳을 가지 안느냐는 것을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다음에 또 오라는 취지라고 재치있게 응수한다. 안그래도 그러려 했다며 말을 아꼈다. 괘한 소리를 한 듯하여 반성하다보니 죽녹원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세상 대나무는 모두 가져다 놓은 듯 하다. 울산인가 어디인데 TV에서 보고 가봤던 곳과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크고 작은, 두껍고 가느다란 대나무의 아우라는 왜 그들을 선비들이 따르려했는지 이해가 되게 만들었다.
조금만 더 어려을 때 이곳에 와 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반듯하면서도 바람에 흔들리며 맞서지 않고, 주위와 조화롭게 중간중간 마디를 맺으며 쉴 줄 아는 여유, 그려면서도 올곧게 이상을 향해 솟는 모습, 바람과 어유러져 들리는 그들의 대화는 바람이 대나무를 타는지, 대나무가 바람을 타는지...
지난 온 시간이 스쳐간다. 너무 빠르다.
흔들리는 대나무, 그 숲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50여 년 전에 태어났다. 영산강 짠 내음을 맡으며 삭힌 홍어와 초장 냄새 속에 막걸리 심부름을 한 것 같기도 안 한것 같기도 헷갈린다. 기득 채워져 넘치는 것이 무거워 몰래 마시다 취해서일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묻히고 싶다고 말씀한 곳이 저 산너며이다. 인간 살아 가는 세상이 모두 그럴 것이다. 빈 손으로 왔다가 또 그렇게 것 아닌가? 뭔가를 잡으려고 하는 헛된 손짓만이 허공을 가르는 그런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움켜지려고만 한다.
그러면서 실수도 많이 한다. 혼자 온 남성에게 아내가 시골살이 좋아하지 않아 몇 번 꼬시려다 실패했다고도 했다. 알고보니 젠틀하게 헛소리를 받아 주던 그 중년은 사별했다고 한다. 이래서 입은 닫고 귀를 쫑긋 세우라 했던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늙은 철부지다. 언제나 철들까?
친절한 심리상담사 룸메이트에게 상담이나 할 것을, 말도 안되는 소설 이야기만 너스레를 떨었다. 몇 잔의 술에 취한 건지, 고향 땅의 정취에 빠진건지 모르겠다. 반성은 끝이 없다.
어제 마신 술 때문일까? 아침 황태국이 유달리 시원하다. 농장에서 담근 백향과 청과 인절미 떡치기 체험, 다슬기 먹방 체험을 하며 섬진강을 따라 걷다 타 본 완행 기차의 흔들림을 아직도 온몸이 기억한다. 길지 않은 시간, 힐링의 시간, 또 가고 싶은 유혹을 어찌 이겨낼까?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삶이라 정착은 안하겠지만, 인생의 유랑 코스에 내 생명의 땅, 인심 좋고 맛 좋은 산해진미가 신선하게 넘치는 이곳은 꼭 살아봐야겠다. 쓸데없이 말도 안 통하고 음식 맛도 없이 돈만 낭비하는 해외를 가느니보다, 내 태어나 다시 언제인가 돌아가 누울 그 곳, 인터넷도 빵빵한 그 곳이 별천지이다.
이제 와 드는 생각, 서울 살던 선비들에게 전라도 유배길은 축복이었다. 공짜로 주어진 삶의 힐링,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 축복보다 더한 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든지 두 어시간이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은가? 잠시 시골 풍경을 감사하다보니 벌써 도착이다.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