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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의 공통점

숙제만 없으면 학교 좋다

by Faust Lucas

모든 학생의 공통점 200306

학생(學生)은 학교에 다니면서 교육을 받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계획된 시간과 장소에 가서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자유가 보장된 나라일지라도 이것만은 강제성이 따른다. 그것도 각종 법과 사회규범체계 등으로 강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라도 쉽사리 벗어나기는 어렵다.

학교를 졸업하고 근 30년만에 다시 학생 신분이 되었다. 물론 대학원(국방대학교 안보보장 대학원)이라 그런지 보통의 학생들보다는 좀 편하고 여유있는 건 사실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석사과정의 대위들, 합동참모대학의 중령들이 보기에도 부러움의 대상이라고들 한다. 얼마 전까지는 그런 견해에 동의도 했었다. 부담없는 숙제가 간혹 있기는 해도 그 동안 군생활 한 경륜과 노하우로 얼렁뚱땅 처리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학교에 나오지말고 집에서 자율학습을 하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올해 대학교 신입생 딸아이와 기숙사 문제로 이리저리 알아보며 한주를 보내기도 했다.

한번은 '아빠 학교 안가세요?' '응! 아주 좋아. 모든 학생은 이유야 어찌되든 학교 안가는 게 최고잖아?' 녀석도 동의한다. 아주 오래 전 말 잘 듣는 학생 때 습관이 조금 남았는지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사람들 많은데 가지않고 집안에 머물며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 youtube 영상을 실컷 보았다. 어떤 날은 새벽까지 하고 싶은 걸 마음 껏 하였다. 다음 날 출근 안한다는 자유가 이리 좋을지는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전파사항이 전해졌다. 숙제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정치, 안보, 국가와 관련되어 6가지의 레포트와 논문이나 정책보고서 중 택일하여 주제신청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불과 얼마전까지 있던 일선부대와 비교해보면 이 정도는 감사한 상황이었다. 대략 2주 정도 여유있는 기간에 딱히 부담스런 양도 아니었다.

숙제를 받고 나니 예전 학교 다닐 때 생각도 났다. 집에 돌아오면 숙제부터 해놓고 놀았고 자기 전에는 내일 배울 것을 예습하고 가방을 미리 싸놓아야 누울 수 있었다. 단 한번도 그리하지 않은 기억이 없다.

이번에는 달랐다. 너무 여유가 많아서인지? 백수같은 생활에 너무 적응을 잘해서인지? 학업 목표가 없는 학생이라 그런지? 미루고 또 미루었다. 날로 커지는 해야한다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까지도 하기는 싫었다.

오전까지 제출해야한다는 숙제 거두는 후배에게 좀 늦게 낸다고 하려고까지 했다. 천만다행으로 다른 동기 한명이 오후 네시까지 연기하겠다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오전을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했다. 학창시절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똑 같았다. 숙제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자료 찾고 노트북 사용 준비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다. 마치 시험 앞두고 노트 빌려 정리만 하다가 공부는 안하는 학생이 된 듯 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 시작하려는데 남은 시간은 네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마치 시험 앞두고 걱정만하다가 마지막 날 친구들과 모여 밤샘 벼락 공부하려다 망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 시간을 허비했으면 집중이라도 해야하는데 밤새려면 배고프니 라면 하나 끓여 먹고 하자, 배부르니 좀 쉬었다하자, 졸립네...

제출 시간을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말도 안되는 시까지 썼다.

벌써 숙제 내라니

봄은 숙제처럼 어김없이 찾아오고
여기저기 못살겠다
커지는 아우성은 아직 그대로인데

삼월 오면 바이러스 갈거란 볼멘소리
숙제 미루자는 투덜거리는 소리
선생보다 싫은 건 서두르라 재촉하는 소리

우리끼리 그만 쪼으고
학교 안가는 즐거움에 흠뻑 젖어
세상사 잊어봄이 어떠한가

오늘이 숙제 내는 그날인가
네시면 어떻고 열시면 어떻나
언젠가는 다 할것인데

어젯밤도 역병 걱정 나라 걱정에
온 천지 욕먹는건 코로나 뿐이지만
이보다 좋은 술안주가 무엇인고

한잔 두잔 따르다 새벽이 와 버렸으니
숙제는 또 언제할까
이동무 그만 하고 조금만 기다려 줌세

나이 먹은 뇌는 아이와 다르지만
숙제 싫은 마음은 매한가지
정신차릴테니 오늘밤만 기다려주시게

점심도 늦게 먹으며 나름 집중했다. 딸아이가 새 것 샀다며 준 익숙하지 않았던 노트북 기능 금새 익혔다. 비록 숙제 하는데 딱 필요한 몇 가지이지만 '아직은 내가 살아있네'라 생각하니 겸연쩍은 웃음도 나왔다. 참 인간은 대단한 동물이다.

비록 마감 시간 5분 정도 전에 겨우 제출해 분임조에서 가장 늦은 꼴찌였지만 숙제 거두는 후배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다며 자위까지했다. 마감 시간이 다가 오면서 얼마나 초조하고 스트레스가 컸던지 학창 시절도 생각나고 그런 친구들을 속으로 비웃으며 이해 못하던 반성도 되었다.

그 친구들이 그립다. 시험기간에 성적 고민하는 모습에 '걱정할 시간에 공부해라', 시험 시간 몇 분 앞두고 컨닝 페이퍼 만들며 답을 물어볼 때는 '야, 그 시간에 외우겠다. 게을러 가지고'라며 핀잔도 주었다. '그냥 빨리 말해~주라~'며 헤헤 거리던 그 모습들이 어제 일같다.

다음 주도 수업이 없다면 코로나고 뭐고 간에 부산에 가 보아야겠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바이러스에 전염된다며 어디든 가지말라는 소리가 엉뚱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학생들은 똑같다. 학교 안가고 숙제없고 친구들과 노는 게 최고다'
그런데 갑자기 그 시절 배운 것이 떠오른다. 학생의 본분을 잊고 싶다!

勸學文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나이를 먹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불가경)
한 순간의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지어다.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연못의 봄풀은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섬돌에 떨어지는 오동 잎사귀는 가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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