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나의 것

말은 줄이고 글로

by Faust Lucas

내 인생은 나의 것! 260109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 국민교육헌장 중 일부 -


부모의 것을 제외하면 무엇이 내 것인가?

최근 집에서 안 보이던 전자 기기가 발견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거나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 10명 중 7~8명이 귀에 착용하는 하얀색 이어폰이었다. 그것도 미국의 유명 회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가격도 꽤 되는 비싼 것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주인이 없다. 계속 방치되어 있었다. 최근에 집에 방문한 사람이라곤 장인, 장모님, 수능 시험 때문에 다녀간 처제와 재수한 조카 녀석이 떠 올랐다. 아내를 시켜 알아보라고 했더니 대답이 가관이다.

조카에게 전화해서 물었더니 집에 여러 개가 있어서 어떤 건지 모르겠고 지금은 필요한 거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혹시나 그 비싼 것을 두고 갔다면 찾을 것이고, 택배로 보내려 했는데...
동서는 사업을 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자수성가한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지방이지만 광역시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수재들이 집단으로 모여 연구하는 상류층 동네에 거주하며, 지역 사회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식들은 수많은 과외를 받고 학원을 다녔다. 심지어 방학 때는 서울에 원룸을 단기 임대해서 족집게 학원도 다녔다. 그러나 결과는 시원치 않았다. 서울대니 어디니 하는 말은 무성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딱 한 번 인생 최고 시험을 잘 본 결과였다. 평균은? 지방 국립대 정도였다. 그 해 결과는 역시 아니었다. 그 인생 시험 덕분일까? 고3 학생이 결석하고 부산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소식도 들렸다. 명망 있는 교회의 최연소 권사님, 엄마의 기도도 부질없었다. 엉덩이를 30분 이상 특정 지점에 붙이고 있으면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나는 아이에게 그런 기도를 하는 엄마, 본인이 못한 공부, 왜 아이에게 바라는지?

엄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예체능에 끼가 있는 소녀였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대학은 졸업했다. 산업 디자인과, 그리고 전공과 무관하게 스튜어디스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집을 가고 분에 넘치는 곳에서 고학력 부모들과 살며, 교회도 그들과 같이 다니다 보니, 학벌이 콤플렉스가 된 듯하다. 그렇다고 자식을 아바타 삼아 자기 학력을 세탁하려는 의도는 불손하고 아둔하기 그지없다. 아들과는 마찰이 많다. 아빠도 중재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재수를 했다. 수도권의 사관학교식 유명 학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점수는 하락추세였다. 추석을 맞아 학원이 쉴 때 엄마는 또 족집게를 위해 서울에 왔다. 낮에는 학원을 가고, 밤에는 학원 친구들과 홍대를 갔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는 있지만, 먹게는 못한다. 그렇게 올해 수능을 보았다. 날씨 핑계도 될 수 없는 최적의 상태였다. 저녁 집에 와보니 날씨는 악천후, 정적이었다. 들리는 소리는 긴~~ 한숨, 뒤꿈치를 들고 죄지은 고양이처럼 들어갔다. 숨소리도 최하로 낮추었다. 조용히 옷을 벗으며 갈아입는 순간, 안방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두 사람이 있다. 여하간 들어가야 한다. 다시 옷을 입고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방바닥에 하나, 침대에 나머지, 자매가 있었다. 둘 다 사람이 왔는데도 일어나지도 않고 눈인사만 짧게 한다. 받은 대로 그대로 이자를 붙여 좀 길게 눈인사를 쌍으로 했다. 옷을 들고 조용히 나가려는데 부른다. 돌아보니 뭐 해 줄 말 없냐고 한다.

“도움도 안 되는 말 들어서 뭐 하려고요?”

“그래도 오늘처럼 중요한 날, 오랜만에 봤는데, 뭐라도 조언해 주세요. 작가님이 뭐 그러세요!”

“그냥 글로 써 보낼게”

“성격 급한데, 말로 해 주세요”

정말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다 한 말, 해도 듣지 않는 말, 뻔한 말일뿐이고 공감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불편할 것이다. 게다가 날씨도 침울한데, 무슨 말을 해도 안된다. 또 부른다. 어쩔 수 없이 양해를 구했다. 혹 예전에 했던 말이어도 괜찮은지? 불편하고 거북해도 될는지?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다. 얼른 하라고 이제는 두 여성이 합창한다.

“한 3분만 짧게 할게요.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나는 말했습니다.”

“서두가 길어요. 숨넘어가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면서 공감 능력과 EQ가 떨어지는 사람이 짧은 연설을 했다.

“자식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못 한 걸 대신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장점을 찾고 홀로 세상을 살아갈 가슴 뛰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켜봐야 합니다. 혹, 그들이 도와 달라고 하면 그때 비빌 언덕이 되어 주면 됩니다. 공부 잘하는 게 그리 부러우면 처제 당신이 해야지! 자기는 싫어 애먼 짓 해 놓고, 왜? 왜? 다른 개체에 억지로 시키는지? 지네들이 좋아 그래 놓은 결과로, 공짜로 생명을 선물 받아 놓고, 무슨 권리로 선물에 생채기를 주고 그래? 그만할게, 3분 넘었네. goodnight!”

거실로 나와 잠시 쉬며 반성했다. 돌아올 반응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의 힘을 빌어 소파와 한 몸이 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새벽 몇 시가 되었을까? 부스럭 소리에 눈을 떴다. 식탁에 딸과 어제의 주인공 녀석이 뭔가를 소곤소곤 거렸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학교 이름들이 짧게 들렸다. 눈만 뜨고 잘 들리지 않는 대화를 엿듣는 것 같아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시계는 2시 반을 훌쩍 넘었다. 오누이의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고 사촌 동생을 위해 조언하는 딸아이의 훌쩍 커 보이는 모습이 눈을 가득 채웠다. 공부하기 싫은데도 엄마의 등쌀에 밀려 억지로 학원에, 재수까지 했던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다. 꼴통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대한민국 모든 엄마들에게 공통적인 걱정거리가 아이들, 특히나 아들 녀석들 아니던가? 돌아보면, 저 나이에 속 쫌 썩이는 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나를 포함한 나름 요즘 말로 엄친아였던 중년의 아저씨 들치고 철없이 사고 치는 사람들이 한 둘이던가?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바로 내 이야기이다. 역시, 누가 뭐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조선의 철 안 드는 유교 보이 마인드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었다.

“시험도 끝났고 했으니 맥주나 한잔하자!”

“예?”

두 개체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동시에 나오는 질문인지? 대답인지 알 수 없는 반응을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허둥지둥 따라 나오는 덩치 큰 아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수고했어! 그래 시험도 끝났는데 친구들하고 한잔했니?”
말이 없다.

“어디 갔었니?”

홍대 앞에 같이 재수한 친구들과 갔다고 한다.

“맥주 한잔할래?”

“아니요. 엄마가 뭐라 해요”

그렇게 늦가을의 새벽에 이모부와 처조카가 벤치에 앉았다. 대화는 무겁고 느리게 시작했다. 조선의 유교 보이와 대한민국의 MZ가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훈시는 시작되었다. 갑자기 얼떨결에 끌려 나온 청춘은 엄마 아빠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훈계를 버텨야 했다. 몇 년 만에 따뜻한 수능일이라고 했지만 새벽바람은 차가웠을 것이다. 재수를 했는데도 오르지 않은 성적이 그 수온계를 더욱 차갑게 짓눌렀을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끌려다니느라 얼마나 힘겨웠을까? 하지만 물질적 풍요로 가득한 삶, 이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덩치 큰 어린이에게 수능의 상처를 연민이라는 단어로 덮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그것은 이미 부족하지 않게 받은 것처럼 보였다. 말은 했으나 대답은 요구하지 않았다. ‘지금 나이가 몇이냐? 네가 해 놓은 것이 무엇이냐? 인생은 결국 혼자 가는 여행인데, 네게서 부모님 것이 없다면? 공부 한 번 시켜보겠다고 그 비싼 동네에서, 그 돈 많이 드는 학원, 과외를 시켰는데도 남들보다 시간도 낭비해, 그렇다고 성적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등 말은 새벽의 냉기보다 차가웠다. 그래서일까?

“운동은 좀 합니다.” 대꾸가 나왔다.

“너 정도 나이에 체대를 가겠다고 돈을 들일 정도면 그건 잘하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이 공 가지고 노는 수준이야.”

발언권을 박탈하고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 하려 하지 말고 너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너만이 가진 재능과 소질을 계발하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 하기 싫은 것을 마치 좋아하는 것인 양 해야 한다는 말로 끝냈다. 추워서 다리를 후들거리는 것이 진작에 눈에 들어왔지만, 벌을 받고 머릿속에 깊이 새기고 오기라도 생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을 어어 나갔지만, 그동안 하기 싫은 공부 하느라, 엄마 눈치 보느라 마음고생 한 아이를 계속 보려니 마음이 약해졌다. 굳이 안 해도 되는 말, 말한다고 따를 것이라는 담보도 없는 아이에게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처제는 인사도 없이 바로 갔다. 속상했을 것이다. 현실적인 팩트체크, 아픈 조언보다는 달콤한 공감을 원했음을 안다. 하지만, 사랑과 관심, 양분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욕심, 대리만족을 욕심의 발로가 아닐까 성찰해야 한다. 우리가 화분 하나를 키우더라도 각각의 특성에 맞게 물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 외친다!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들의 부모에게 팩폭을 날린다!

“자식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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