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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변호사
정의를 말하지 않는 바보 변호사
by
Faust Lucas
Nov 23. 2020
정의를 말하지 않는 바보 변호사
2020 0920
'우리 인생길 반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이 길을 벗어나고 싶다면 너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사후 세계로의 여행을 주제로 단테가 1308년부터 1321년, 죽을 때까지 쓴 서사시이다. 언제인가부터 이 구절을 되새기며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머리를 비우겠다며 저녁 시간에 혼자 걷는 것, 쇼팽의 녹턴을 들으며 앉아 있는 것이 즐거움이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사치를 방해하는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누구야?' 하며 핸드폰을 보니 '충장공 김덕령 장군 13대손 ㅇㅇㅇ'이라 나온다.
'형! 왜? 전화했어요?'
'내가? 전화한 적 없는데?'
'전화를 못 받아서 다시 한 건데'
'아이~~ 오늘 재판을 두 개나 하고 바빴어요.'
잠시 조용하더니,
'에이, 형이 낮에 전화했네. 재판 중일 때'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했는지는 모르겠다. 전방에서 재판이 있어 갔다가 조금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재판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참 바쁜 친구이자 동생이다.
누가 먼저 전화했는지도 헷갈리고 전화한 사람은 왜 전화했는지도 기억 못 하는 바보들 같다. 다른 게 있다면 내 눈에 그는 더 바보 같다. 가끔은 그도 날더러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가끔 법률 자문도 구할 겸, 안부도 물을 겸 통화를 한다. 때로는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결론은 바보이다. 헛 똑똑이 변호사이다.
뻔한 소송이라고 수임료를 할인해 주고 계급이 낮다고 할인해 준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는 한심하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지금까지 만난 부류들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사전적 정의는 '법률에 규정된 자격을 가지고 소송 당사자나 관계인의 의뢰 또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피고나 원고를 변론하며 그 밖의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한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돈을 받는다'라는 사실이다. 돈만 주면 나쁜 짓 한 사람을 위해 무죄를 주장한다.
그게 어려울 것 같으면 받을 벌을 최대한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를 두고서 정의구현이나 봉사, 희생 등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그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바보 변호사, 자원봉사 변호사, 의료인이 전우인 줄 헷갈리는 변호사'이다.
우리는 보통의 그들을 '법률 서비스 자영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약간 비꼬는 뉘앙스도 조금은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그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끔 언론을 통해 인권변호사니 무료 법률 서비스니 하는 말로 포장된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미지 메이킹한 걸로 밝혀지는 경우를 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도리(道理)란 '일반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길'이라고 한다. 변호사란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아니다.
'아직도 군법무관인 줄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바른 말하는 자신을 한직으로 밀어내는 등 능력을 발휘할 기회마저 박탈한 군을 사랑하는 것이다.
많은 군인을 부당한 징계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준다. 수임료만 받고 대충대충 하거나 상관을 모함하는 고소장을 써주며 돈만을 챙기지는 않는다.
의뢰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자기 일처럼 챙긴다.
한 번은 지휘관을 하던 한 간부가 보직해임에 감봉 3개월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부하의 고소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임료만 1,000만 원!
감봉은 경징계에 포함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징계나 다름없다. 이 정도면 변호사를 선임안 하거나 국선변호인을 택해도 나올 정도이다.
군내에서 수많은 징계 업무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었다.
아마도 그 간부는 매달 광고비 2~300백만을 주며 '군 사건 전문 변호사'로 스스로를 광고하는 누군가에게 맡긴 것 같다.
변호사 3만 명 시대에 광고 안 하고 법조타운 같은 곳에 사무실도 내지 않으니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걱정되었다. 이 밤도 돈 없고 억울한 또 누군가를 위해 총성 없는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가 무슨 나라를 구한 충장공 할아버지도 아닌데 착각하는 것 같아 전화를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ㅇ변! 너 그러다 죽는다. 좀 쉬면서 해, 남들처럼 하시게, 돈도 깎아 주고, 왜 그렇게 해? 돈을 많이 벌던지 건강을 챙기던지 하나는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나?'
'형! 놔 뒤요, 난 이러다 갈 거요!'
'그럼 내 법률자문은 누가 하니?'
'형은 알아서 잘하잖아요~~~'
'다음 출간 때 법률 검토와 추천 사는 누가 혀?'
'아이~~ 형! 바빠요! 내일 재판 가야 돼!'
바쁘다며 빨리 끊자고 한다. 괜히 방해만 한 것이다. 조만간 출간한 책을 들고 가서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 동양고전을 즐겨 읽고 글쓰기를 쉬지 않는 나의 방패!
'동생아! 건강도 챙기며 일해라!'
마음속으로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정의니 가치니 하는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것들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그 영혼이 부럽다.
지금처럼 오래오래 튼튼히 버티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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