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집단에 오래 머물다 보면 애착이 생기고 이입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생 때는 학교가 나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느껴 대항전에서 학교 대표팀들이 지면 나까지 분개하고 낙담했다. 반대로 팀이 이기면 마치 내가 이긴 것 마냥 성취적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학교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루 8시간 이상씩 길게는 몇십 년을 다녀야 하는 회사에서는 더욱 조직에 나를 이입하게 된다.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고 동기부여라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회사가 성장하면 나에 대한 처우도 좋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아지게 된다. 또한, 직장 내에서의 원활한 관계에서 우린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다. 경제적 보상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제공하는 회사를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동기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나는 '회사는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회사라는 조직이 가지는 권한을 마치 내가 가진 권한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직장인이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룬 업적을 회사 밖에 나와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쉽지 않다. 회사 안에서 나의 영향력과 실력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회사를 나오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러한 현실에 대비하지 못한 채 퇴직한다면, '내가 왕년에 말이야~ 어디 소속이었는데 어쩌고 저쩌고'하며 공공장소, 관공서, 서비스센터 등에서 갑질을 하려는 어르신처럼 변해 있을 것만 같다.
엄밀히 따지면 직장인은 회사라는 큰 시스템에 들어가는 하나의 톱니바퀴이자 부품이라고 생각한다. 인력은 쉽게 대체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들의 변동 여부와 상관없이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이다. 씁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정년을 채우고 퇴직을 하든 새로운 꿈을 찾아 퇴사를 하든, 아니면 타의에 의해서 회사에서 해고가 되든 우린 모두 언젠가는 회사를 나오게 되어 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우린 모두 조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의사결정을 내리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리랜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회사의 무슨 직급을 가진 홍길동', 이런 조직적 수식어를 떼고 온전한 '홍길동' 자체로 사회에 존재할 수 있어야 진짜 나를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적인 문제 말고도 나는 내 건강한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회사를 나와 동일시 여기지 않으려 한다.
내가 느낀 회사라는 곳은 '교과서스럽게' 움직이지만은 않았다.일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이 교과서스럽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아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기도 한다. 어떤 상사는, 소위 직원들을 길 들이기 위해 잘하는 직원인데도 일부러 무시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기도 하며, 비교 대상을 만들어 경쟁을 부추긴다. 승진을 위해서 업무적인 성과보다는 정치질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 과정에서 후배 직원들의 피해를 못 본 척 눈 감는 사람들 역시 꽤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뒷얘기 하는 것을 즐기며 그 소문이 사실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회사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함수처럼 논리적으로 산출되지도 않으며, 비양심적이고 비윤리적인 일이 종종 일상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고, 회사의 흥망성쇠는 직원들의 노력 이외에도 시대의 흐름에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의 평판이나 회사 상황에 크게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칭찬이나 인정에 목을 매지 않으려 하고, 욕을 먹거나 비난을 받아도 훌훌 털어버리려고 한다. '너희들이 뭔데 날 욕해'처럼 '너희들이 뭔데 날 칭찬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려 한다. 조금 이상해 보이지만 그게 마음이 편했다.
회사와 거리두기. 회사 안에서의 나에 대한 평가가 내 정체성의 전부는 아니라는 믿음. 회사라는 타이틀을 버렸을 때 온전히 '나'라는 사람만 남는다면 어떨지 고민해 보기. 이러한 생각들이 오히려 직장 생활을 의연하게 이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었고, 회사를 넘어 그 이후의 인생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준비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