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물점 Nov 21. 2019

군대와 시간

아빠가 군에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4/100)

군대에서 시간은 정말 느리게 갈까?


아들아, 어제는 때아닌 가을비가 내렸어. 훈련을 받고 있을 널 생각하면 얄미운 비였고, 수확이 한창인 농민들을 생각하면 야속한 비였겠지. 그런데 어제 내린 비는 엄마와 아빠에게 쓸쓸함과 허전함이더구나.

어제, 곱게 싸서 보낸 너의 옷가지들과 신발 그리고 상자에 담아 함께 보낸 편지를 받았다. 엄마는 늘 네 짐이 언제나 오려나 근심이셨는데, 막상 우체국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진 네 소포를 받고 나서는 뭔가 많이 서운해하시는 것 같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무언가가 나에게 왔을 때 느끼는 허무함, 상실감 같은 느낌이셨을 거야. 군에서 보낸 네 첫 편지를 여러 번 곱씹어 읽고 또 읽었어. 문장마다 글자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너의 마음이 지면을 뚫고 나와 가슴에 심어지는 느낌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그래도 그 마음들이 허전함과 쓸쓸함을 모두 채워주지는 못했단다. 우리는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네 옷들과 가방, 신발을 빨아서 네 방에 잘 정리해 두었다. 마치 내일 네가 첫 휴가라도 나올 예정 인양 허둥지둥 그렇게 서둘러 정리를 했구나. 천천히 해도 될 일들을 말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시계가 있다면 그건 바로 국방부 시계라는 말이 있었다. 시간 흐름이 처한 환경이나 심리 작용의 영향을 받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어쩌면 이리도 짧은 문장에 정확하게 담아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말을 처음 생각한 누군가는 틀림없이 군생활을 참 힘들게 했겠다는 생각을 해. 왜냐하면 위대한 문장은 피나는 경험의 산물이라고 아빠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오늘은 '시간'에 대하여 너와 생각을 나누고 싶구나. 너도 국방부 시계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요즘 무척 가슴에 와 닿지? 만약 지금 훈련소에 있는 네 동기들에게 '시간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같은 속도로 흐르냐, 다른 속도로 흐르냐?' 묻는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당연히 다르게 흐른다고 대답할 것이고, 뭐니 뭐니 해도 자신들의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흐른다고 말하겠지. 네 생각도 아마 비슷한 테고. 그렇지? 

시간의 흐름에 대한 느낌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굳이 과학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일이지. 나이 많은 어른들이나 시험장의 수험생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다고 하소연하고, 갓 입대한 군인들이나 방학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른다고 아우성이지.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이러한 차이는 그저 느낌일 뿐, 현실 세계에서 측정되는 시간의 속도와 개인에게 맡겨진 시간의 절대량은 누구에게나 똑같다는 생각이 과학적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인류를 사로잡았어. 정밀한 시계가 발명되면서 이런 믿음은 더 단단하게 굳어졌고, 20세기 초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나타나기까지 절대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졌어. '왕이든 노예든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절대 상식과 같았던 이 명제에 인류 최초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이란다.


시간은 운동하는 관성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특수 상대성 이론'

'아인슈타인과 시간' 하면 떠오르는 게 상대성 이론이야. 워낙 상식이 된 것 같은 이론이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단다. 어느 정도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사람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정도로 알고 있지. 물론 맞는 말이고 이러한 개념 때문에 쌍둥이의 역설이 등장하게 된단다. 쌍둥이의 역설이란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이 빛의 속도로 먼 우주를 여행하고 지구로 돌아온다면, 나이가 들어 늙어버린 쌍둥이 형제를 만나게 된 다는 거야. 우주여행을 한 쌍둥이는 빛의 속도로 여행하는 동안 시간이 느리게 흘러 늙지 않지만, 지구에서  남아 있는 쌍둥이 형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늙는다는 생각이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이런 개념이 잘 묘사되어 있잖니? 딸보다 훨씬 젊은 모습으로 늙은 딸을 만나는 장면은 쌍둥이의 역설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지. 이런 생각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란다. 그리고 이 이론의 배경에는 바로 '빛'이 있었단다.

만약 네가 시속 50Km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타고 있고, 그 옆에 시속 100km로 움직이는 기차가 있다고 가정하자. 네가 보기에 기차는 시속 50km의 속도로 너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거야. 마찬가지 원리를 빛에 대하여 실험을 했는데, 빛은 내가 어떤 속도로 운동하더라도 늘 초속 30만 km라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관측되었단다.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제트기 속에서 관측한 빛의 속도도 항상 일정했지.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를 불변하는 고정 속도로 생각하게 되었어. 이 세상에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여기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그럼 이제 네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 우주선 속에서 옆을 지나가는 빛을 관측한다고 생각해 보자. 빛의 속도가 관측자와 상관없이 불변하다면 그때 네가 관측한 빛의 속도도 일정하게 관측되겠지? 너도 빛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말이야. 그렇다면 네가 관측한 빛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것도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과 맞지 않지. 그때 아인슈타인은 번뜩이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빛의 속도가 고정이라면 다른 무엇인가가 변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시간이라고 생각한 거야. '속도=이동 거리/시간'이라는 공식을 생각해 보렴. 빛의 속도는 변할 수 없는데, 네가 관측한 빛은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어. 이동 거리가 길어졌는데 속도에 변화가 없으려면 시간이 늘어나야만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확장하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시간 팽창'이라고 한단다. 시간이 팽창한다는 건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뜻이고, 만약 지구의 시계를 그 우주선에 싣고 간다면 시계는 마치 고장 난 것처럼 매우 느리게 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시계가 느리게 갈까?

과학자들은 1971년 네 개의 똑같은 원자시계를 빠르게 비행하는 비행기에 태워 날리는 실험을 실시했어. 두 비행기는 동쪽으로, 다른 두 비행기는 서쪽으로 비행을 했지. 그 후 비행을 하지 않고 땅에 있었던 원자시계와 비행기에 태웠던 원자시계의 시간을 비교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단다. 비행기에 실려 있던 원자시계들이 땅에 있던 원자시계보다 몇 분의 1초 정도 더디게 간 것이 확인되었단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맞는 실험 결과였단다. 비록 1초도 되지 않는 미미한 차이였지만 운동하는 관성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 드디어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른다는 인류의 오랜 믿음이 깨지게 된 거야.

 


오늘 국방부에서 제공하는 군생활 앱을 보았더니 어느덧 너의 군 생활이 2% 지나갔다고 하더라. 2/100는 매우 작은 수이고 약분을 해도 1/50이니 아직 네 군생활은 많이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군생활 2% 달성'이라는 문구를 보며 아빠는 '이렇게 시간은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오늘 아침도 너에게 편지를 더 자주 보내라는 성화를 잊지 않으셨다. 그러는 엄마는 너에게 편지를 자주 보내고 있는지 되묻고 싶지만 그냥 알겠다고만 대답했어. 나중에 네가 받은 모든 손편지와 전자우편을 모아서 대결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빠는 오늘도 비장한 각오로 네게로 향하는 자판을 두드린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 편승하고 있는 사람의 시간이 주변의 관찰자들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는 점을 알려 주고 있어. 그러니 하루하루 조급하게 서두르거나 빨리 하려고만 하다가는 실수만 남기게 될 거야. 게다가 시간 또한 0.000000001초라도 더디 흐르게 되니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닐 거다.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안전하게 생활하는 게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도 알맞다는 얘기겠지. 너에게 주어진 길이 멀다고 가정한다면, 천천히 여유 있게 가는 게 오히려 시간도 잘 가고 체력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이야. 네가 서둘러 갈수록 그만큼 시간이 절약되었다고 느낄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남는 시간이 생기게 마련이니 오히려 여유롭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가는 게 슬기로운 군생활의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들아! 그러니 너는 시간에 대한 조급함을 버리고 그냥 순간순간을 느긋하게 생활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너도 모르는 사이에 전역이라는 골문이 네게 웃으며 손짓하는 걸 보게 될 거란다.

어느덧 6시가 넘었으니 오늘 교육 훈련도 마무리되었겠다. 오늘 하루 열심히 산 너에게 스스로 대견하다는 칭찬을 마음껏 하렴. 그리고 휴일이나 일과 후 무료함이 느껴진다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간과 빛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즐거움을 느껴 봐. 어떤 이는 '밤하늘이 왜 검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부터 우주가 유한하다는 결론을 추론했단다. 전자 장비도 망원경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아인슈타인은 기꺼이 반대하겠지만, 공상이든 상상이든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우리의 생체 시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흐른다는 점을 기억해.


 * 상대 시간량 = (절대적 시간량) - (몰입하며 보낸 시간)  =>

   실제 군생활 = ( 1년 6개월 21일) - (네가 뭔가에 몰입하며 보낸 시간) / 상대 시간량의 법칙 (by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