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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물점 Feb 04. 2020

좌우를 넘나드는 자유로움

겨울 선재길에서 6화 < 나는 좌우를 넘나들고 싶다 >

 좌파, 우파, 양파?


여름 선재길을 찾는 이들은 월정사를 향하는 길 양쪽에 심어진 드넓은 파 밭을 보게 된다. 대규모로 파를 재배하고 출하하는 까닭에 여름만 되면 도로 양쪽 밭들은 짙푸른 파로 뒤덮여, 그야말로 파의 바다를 이룬다. 


"여기 오른쪽에 심어진 파는 우파, 저기 왼쪽에 심어진 파는 좌파네!"


작년 여름 운전을 하며 가족들에게 내가 던진 농담이다.

가족들은 내가 던진 아재 개그 중에서 그나마 쓸모 있고 제대로 하나 건졌다며 웃음으로 내게 축하해 주었다.

기분이 한껏 부풀어진 나는 연이어 관련된 말장난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기, 길 양편으로 모두 심어져 있는 파들은 양파야!"

파가 좌우로 심어진 파 밭 / 사잇길이 이들을 좌우로 가르고 있다

그저 웃자는 생각에 던진 말장난이었지만, 곱씹어 본 뒤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단어로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낱말이 '다양성'이다. 집단적 이념보다 자유로운 개인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다양성은 현대 사회의 특징이고, 현대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집단 이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길가에 심어진 파를 보고 좌파와 우파를 생각하는 나 자신이야말로 어쩌면 이념의 소용돌이에 갇혀 스스로를 익사시키는 불쌍한 구시대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더라도 파는 파일뿐, 어느 쪽에서 자라든  실하게 잘 커서 농부나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면 족한데도 말이다. 


 '인류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이념에서 자유로웠던 시대는 없었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통찰을 나는 지지한다. 생각하는 인간이 어찌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인간이 모인 사회에서 어찌 이념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게다가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전쟁까지 치른 나라에서 집단 이념의 그림자가 쉽게 사라지리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망상에 불과할 것이다. 좌우든 전후든 사람 사는 사회에서 생각의 차이는 언제나 존재하는 게 자연스러울 테니까. 


그러나 이념에 따른 가치관의 대립이 아무리 보편적인 사회현상이라 하더라도,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배타적 이념화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 공정한 시각으로 여론을 형성해야 할 언론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편 가르기에 몰두할 뿐, 사회 통합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유튜브나 팟캐스트와 같은 새로운 매체들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의 담론으로 무장한 이들은 모든 사건에서 사사건건 대립하며, 자신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철옹성 같은 '우리 편 담론'에 가둔다. 0과 1의 다양한 조합으로 정보화를 일궈낸 디지털 시대에, 0과 1의 조화가 무너지고 있다. 철옹성 같은 이념의 장벽이 '0' 아니면 '1'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선재길은 오대천의 좌우를 넘나 든다.


오대천은 선재길을 나누지 않으며, 선재길은 오대천을 구분 짓지 않는다. 선재길을 걷다 보면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어느 편이든 걷기가 단조롭게 느껴지거나 건너편 사정이 궁금해질 즈음, 어김없이 작은 다리들이 나타나 나를 반긴다. 왜 건너려는지 이유도 묻지 않는다. 그저 이쪽 사람과 저쪽 사람은 맞을 뿐이다. 그 다리를 통해 선재길을 걷는 이는 오대천의 좌우를 넘나 든다. 


오대천의 좌우를 넘나들며 걸으면 걷는 이의 목에도 부담이 덜하다. 어느 한쪽 길로만 걷는다면 한 방향으로만 계곡을 응시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목 근육도 피곤해지고 쉽게 질리게 된다. 어쩌면 당신은 어느 순간 계곡에서 눈을 떼게 될지도 모른다. 경직된 당신의 목 근육이 짜증을 내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짧은 다리를 거너면 시선 방향이 바뀌며 경직되었던 목의 근육도 자연스레 풀린다. 


좌우를 넘나들며 걷기 때문에 선재길 전체에 대한 조망이 가능하다. 조망이란 말 그대로 관찰 대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이다. 왼편으로 난 길을 걸으면 왼편에 자리한 나무와 풀들만을 자세히 볼 수 있고, 오른편에 난 길을 걸을 때는 그 반대가 된다. 좌우를 넘나드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오대천의 왼편과 오른편을 고르게 이해하게 되고 선재길 전체의 모습도 짐작하게 된다. 조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망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현재 위치와 미래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위험이 오기 전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우를 넘나드는 선재길의 지혜


나는 때때로 오래된 것에서 미래를 본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이 오래된 진리는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진리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흔들림 없는 진실을 담고 있다. 좌우를 끊임없이 넘나들어야 사회를 통찰하는 지혜와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사회는 균형을 유지하고 높이 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이념의 선재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생각들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허용된 자유로운 이념의 선재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유롭게 동맥과 정맥을 연결해주는 모세혈관 같은 사상의 모세혈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념의 좌우를 넘나드는 자유는 사회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혈관과 조직 사이에서 산소와 영양분, 노폐물 교환을 담당하는 모세혈관이 생명 작동의 기본 원리이듯, 좌우를 넘나드는 이념의 다리는 건강한 사회 작동의 기본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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