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팀 랩 보더리스 알바생의 별 것 없는 관람 後기
일본에서 살던 때, 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한 팀랩 보더리스(teamLab Borderless)에서 잠시 일한 경험이 있다. enterance팀에서 일했으며, 당시 모종의 일로 언어에 자신감이 떨어져있던 내게 주어진 일치고는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실제로 일하는 동안에도 서투른 부분이 많았다. 여기서 외쳐보았자 들리지 않겠지만 디렉터들에게 다시 한 번 사죄를..) 그 곳에서 일했던 기억과 경험은 지금까지 내게 아주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니 어찌보면 인생의 터닝포인트 쯤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찾는 디지털 아트 뮤지엄을 만든 팀랩(teamLab)은 2001년 설립된 회사로, 도쿄대에서 계수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이노코 토시유키(猪子 寿之)가 그의 동문 다섯 명과 만든 '실험실'이다. 경계 없는 세계(境界のない世界)를 지향하고 있다.
현재 도쿄에만 오다이바(팀랩 보더리스), 토요스(팀랩 플래닛) 두 곳에서 상설전시 중이며, 이외에도 상하이(중국), 마리나베이 샌즈(싱가폴), 실리콘밸리(미국) 등지에서 전시를 한 이력이 있으니 매우 글로벌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렉션에 기반한 미디어 아트 작품 제작, 전시 기획을 하는 아트 팀이 소위 이 회사의 '간판'이기는 하나 시스템 설계, 기업/도시 브랜딩 등 다양한 사업 분야를 가진 곳이다. 클라이언트는 이름만 대면 다들 아는 무지루시, 유니클로, 디즈니 등. 일본 현지에서도 꽤 힙한 회사라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팀랩이 팀랩 라이프(teamLab:LIFE)라는 이름으로 서울에 오게 되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16년도에 잠실에서 팁랩 월드(teamLab World)라는 이름으로 왔던 적이 있으므로 두 번째가 되겠다. 처음엔 기존의 전시와 완전히 동일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므로 '팀랩이 결국 한국에 왔구나..'하고 조금 감상에 젖었을 뿐(이유1. 근무했던 곳 / 이유2. 더 일찍 한국 전시 계획이 있었으나 당시의 정치, 문화적 상황으로 보류되었던 것을 알고 있음) 실제로 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4월에 네이버 예약에서 30% 할인 받아 전시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됐고 前 보더리스 알바생인 나는 前 플래닛 알바생인 친구 J와 함께 DDP로 향했다.
팀랩 보더리스와 달랐던 점, 기억에 남았던 부분을 짧게 적어본다.
1. 정해져있는 관람 순서
J가 조금 늦을 예정이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관람하고 싶었던 나는 J와 협의 하에 먼저 입장을 시도했는데(보더리스에서는 관람객에게 전체 전시 관람에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안내한다), 현장 스탭에게 역주행이 안된다고 안내받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쁘걸에게만 허락된 역주행).
일본 현지에 있는 전시장들과 달리 공간이 좁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시장 안의 개별 전시장은 관람 순서가 정해져있고 그 전시장을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가장 첫번째 작품인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있다'는 1시간 동안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1시간 동안 서 있을 수는 없었던 탓에(...) 작품 일부의 일부의 일부 밖에 감상하지 못했다. 이번 팀랩 라이프, 그러니까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된 작품이었기에 아쉬움이 컸던 부분이다.
2. 신경 쓴 가벽 설치
아마도 1에서 잠시 언급했던 좁은 전시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인 듯했는데 꽤나 그럴 듯했다. 대표적으로 한 두 가지를 꼽아보자면, 'Black Waves: 거대한 몰입'의 경우 팀랩 보더리스에서는 텅 빈 넓은 공간에 벽면을 따라 작품을 재생하고, 관람객들은 공간 중앙에서 눕거나 앉는 등 편한 자세로 감상할 수 있게 되어있다. 한국에서는 작은 공간안에 미로처럼 가벽을 설치한 후 벽을 따라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해당 전시구역을 한 바퀴 돌게되어 관람을 끝내는 식이다. '교차하는 영원 속, 계속되는 생과 사' 역시 개별 전시장 자체는 가정집 방 한 칸 보다 조금 큰 정도의 크기로 좁은 편이지만, 작품이 전시되는 쪽을 제외한 벽면은 모두 거울로 구성함으로써 실공간보다 훨씬 광활하게 느껴졌고 그 안에 있는 관람자인 내가 작품과 공존하며 가득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3. 도슨트를 진행하는 스탭
보더리스에서는 개별 전시마다 스탭이 있기는 하지만 관람객 수 조절, 체험 진행, 작품 전시를 위한 기계 조작 등 원활한 관람을 위한 팔로워 정도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라이프에서는 개별 전시장마다 상주하고 있는 담당 스탭이 관객이 들어설 때마다 가벼운 도슨트 역할을 해준다. 설명을 듣고 관람을 시작하는 덕분에 팜플렛을 읽으며 감상한답시고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이게 뭔 작품인가 싶어 벽면의 작품 설명을 찾아다닐 일이 없어 편했다(그렇다고 전시장 내에 작품 설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전시장을 빠져나온 후 한 번에 확인 가능하다). 내가 구식의 아날로그 인간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설명도 사람의 음성으로 직접 듣는 것이 더 이해도 쉽고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4. 조금 다른 작품 설명
작품 설명을 가져오는 것에도 신경을 썼다고 느낀 것이, 팀랩 라이프에 전시된 작품 중 'Black Waves: 거대한 몰입'의 경우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의 작품 '神奈川沖浪裏(정식 번역을 알지 못해 원어로 적는다)'에서 그래픽적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호쿠사이는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浮世絵) 작가로,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 서민 계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회화의 한 양식이다. 일본 전근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며 그 시기에 무려 유럽에까지 유행해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인상을 남긴(...) 화풍인데, 동일한 작품이 전시되는 팀랩 보더리스에서는 해당 작품 설명 시 이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참고1). 하지만 팀랩 라이프에서는 이 부분이 해당 작품의 인사이트 역할을 함에도 불구, 관련 내용을 제외하고 파도의 움직임에 대해서만 언급한다(참고2). 아무래도 이 부분에 관해 한국으로서는 조금 씁쓸할 만한 부분도 있고(이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왜색으로 인한 혹시 모를 문제들을 방지하고자 한 건가?라며 J와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근데 나도 딱히 일본 전근대 미술사의 찬란함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긴 해ㅎ.
5. 첫 짧은 글을 끝내며
전시장 입장 전 스탭에게 관람 시의 제한 사항에 대해 안내 받을 때에는 '내가 아는 팀랩이라면, 관객의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관람을 끝내고 나온 후에는 그것이 이 전시회를 보더리스(Borderless)가 아니라 라이프(Life)라고 명명한 이유겠거니 싶었다. 지나온 길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 꽃들이 피고 지는 것, 나비들이 탄생과 죽음을 맞이하는 것. 모두 우리의 삶을 투영시킬 수 있는 요소이자 삶 그 자체였다.
중복되는 작품들을 가지고도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재구성하고 컨셉팅하는 것에 배울 점이 있다고 느끼며 돌아온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