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2박3일 여행기
불국사는 공사 중이었다. 경내에 들어서서 청운교, 백운교 위를 올려다보는데 아주 불길하게 생긴 파란 가림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대웅전의 용마루가 보여야 할 자리였다. 계단을 올라가니 대웅전은 ‘긴급보수공사’ 중이었고 성의 없이 설치된 비계와 가림막은 건물의 사방을 가로막고 있었다. 플라스틱 방음판 위에는 대웅전의 빛바랜 사진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몹시 우스꽝스러웠다. 불국사만큼 전국민이 다 가본 건축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수학여행 1번지 경주의 대표 관광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지만 그것이 유지보수되는 광경은 몹시 초라했다. 목가구조 건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건물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기에 끊임없는 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갈 때마다 건물이 공사중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유지 보수되는 풍경 또한 문화재의 일부로 인정하고 충분히 다듬을 필요가 있다. 도심에서 대수선 공사를 벌일 때는 지자체 가이드라인에 맞게 디자인된 가림막을 세워야 한다. 불과 15년 된 건물을 수선할 때도 디자인된 임시구조물을 세우는데, 천 년도 넘은(중건 연도 기준으로는 400년) 문화재를 이런 식으로 수선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몇 년 전 교토의 기요미즈데라에 갔을 때는 공사 중인 가림막이 아주 교묘해서 정확히 어느 부분이 공사 중인 것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당에 갔을 때도 파사드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가림막에는 1:1로 출력된 기존 파사드 이미지가 정위치에 붙어 있어 원래의 모습을 근소하게나마 재현하고 있었다. 반면 불국사의 가림막은 차라리 가리지 않는 게 좋다고 느껴질 정도로 엉성해서 허탈할 지경이었다. 불국사는 지어지는 데 무려 30년이 걸렸다. 이렇게 치밀하게 지은 건물에 졸속으로 세운 가림막이 들어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 단체 사진
가림막을 제외한 불국사의 나머지 부분은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 가본 산지 사찰에서는 경사를 따라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고 아기자기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불국사는 산자락에 있음에도 건물들을 모두 평지에 배치해서 이들 사이의 레벨 차이가 극심했다. 그래서 건축사시험에서 배치하듯이 건물들이 모두 다른 레벨에 위치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돌로 쌓은 석축과 계단이 존재했다. 그런데 석축을 단독주택 옹벽 쌓듯이 쌓지 않고, 나무로 이루어진 것처럼 짜임새 있게 쌓아서 전혀 우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청운교와 백운교 아래의 넓은 마당은 100년 넘게 단체 사진의 명소로 활약해 왔다. 수학여행 때 누구나 이곳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어봤을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일제강점기 자료집을 열람했는데 당시에 찍은 불국사 사진도 같은 곳에서 같은 구도로 촬영되었다. 기단이 다소 무너지고 일부 건물이 사라졌기는 해도 석축의 엄청난 힘은 오래된 흑백사진에서도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앞에서 본 석축은 듣던 대로 굉장했다. 마치 돌로 쌓은 불국사 위에 나무로 조립한 불국사가 올라온 듯한 광경이었다.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일견 대강 쌓은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가공된 석재와 정교하게 결구 되어 있었다. 나무가 돌로 번지는 듯한 느낌이 좋아서 오랫동안 석축 주변을 걸어 다녔다.
3. 계단 단수
대웅전에서 극락전 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누군가 ”계단 단 수를 세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냥 만든 계단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16단의 계단 세 개가 나란히 있어 총 48개였고, 이는 아미타불의 48개의 서원을 의미한다고 했다. 김봉렬은 불국사 각 영역에 교리가 충실하게 재현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며 불국사를 ”공간적인 팔만대장경“이라고 요약한다. 의미 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요소에도 의도와 서사가 한가득 담겨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건축 실무에서는 가장 설계하기 귀찮고 어려운 부분이 계단이다. 입구나 창문은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계단은 ‘풀었다’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금만 원칙에 어긋나도 금방 불편하고 어색해지는 데다,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규격도 엄정하다. 그렇기에 설계하면서 가장 의미를 담기 어렵고 되는대로 해결하게 되는 부분이 계단이기도 하다. 최근에 체스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얼마 전 배운 행마의 대원칙은 ”모든 수에 의미를 부여하라“는 것이다. 아주 작은 부분에도 의도를 담을 것. 올지아티는 <비참조적 건축>에서 극도로 개념화된 건축물을 찾아가면 “말문이 막힌다”고 이야기한다. 말문이 트이는 건축물에 오니 이렇게나 구경이 재밌을 수 없었다. 앞으로 계단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