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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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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과 정의 정 Jan 04. 2022

시청률 고공행진, <옷소매 붉은 끝동> 이유 있는 성적

<옷소매 붉은 끝동> 리뷰

<옷소매 붉은 끝동>의 시청률이 상승세다. 처음에는 사극치곤 가볍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한 회 한 회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본, 연출, 연기 뭐 하나 빠질 게 없었다. 그중 대사(대본)와 드라마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사가 좋다 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캐릭터 감정을 잘 표현했다 거나, 공감되는 대사라든가, 아니면 현실감 넘쳐 주변에서 들었을 법하거나 말이다. 반대로 좋지 않은 대사는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한다거나, 뜬금없이 어울리지 않는 대사를 한다 거나, ‘오글거리는’ 대사가 있을 것이다. <옷소매>는 어떨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상황에 빵 터뜨리는 대사가 시청자의 마음을 울린다. 수많은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장면을 소개한다.


썸 타는 이들이 감귤로 싸운다면

산은 그 당시 귀하던 감귤 하나를 가져와 덕임에게 준다. 애초부터 하나였던 감귤을 “그냥 하나 남아서” 준다고 말하는 이산을 보며, 덕임은 산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자신은 궁녀이고, 산은 세손이다. 신분 차이를 염려한 덕임은 감귤을 거절한다.

“수라상이나 올리는 귀한 과일입니다. 감히 받들 수 없으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귀하다 한들 그저 과일일 뿐인데 받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
“송구하옵니다”
“순순히 받고 기뻐해라. 그러면 되질 않느냐.”
“귀한 것입니다. 소인에게는 과분한 것이지요. 하여, 사양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원치 않는 것이옵니다. 한낱 궁녀에게는 처음부터 사양할 자유조차 없는 것이옵니까. 부디 소인이 사양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우리가 지금 감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느냐."

덕임은 시선을 피하고, 산은 자리를 떠난다. 감귤은 산이의 덕임에 대한 애정이다. 직접적으로 고백하고 거절한다면, 덕임의 복잡한 마음이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귀한 감귤로 표현된 산이의 사랑과 이를 거절하는 덕임의 모습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진다.


글씨를 잘 쓴다는 말이 흔한 칭찬이 아닌 이유

덕임은 영빈 자가의 유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영조 앞에 서게 된다. 영조는 매병(치매)에 걸려, 과거에 자신이 덕임에게 진짜로 영빈 자가의 서책을 덕임에게 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평소 덕임을 좋게 보던 중전은 “덕임이 필사한 책을 전하에게 받쳤을 때 전하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라고 말한다. 영조는 덕임이 필사한 책을 받쳤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덕임에게 단근형을 내린다. 평소 구연을 잘하던 덕임은 영조에게 과거 영조와 덕임이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영조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며 덕임에게 “너는 단근형이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어쩔 줄 모르는 덕임에게 묻는다. “왜 내가 네게 영빈의 책을 주었는지 아니?” 덕임은 기억하지 못한다.


“네가 글씨를 잘 쓰는 궁녀가 되고 싶다며. 그래서 영빈의 책을 준 거야. 영빈이 참 글씨는 잘 썼거든. 그래도 책을 준 보람이 있네. 성가 덕임. 너는 썩 글씨를 잘 써.”


덕임은 성은이 망극하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단순히 옛 인연이 기억난 게 아니다. 글씨를 잘 쓴다는 말도 단순히 영조가 덕임의 필사 능력을 칭찬한 게 아니다. 덕임이 오랜 시간 걸려 필사한 책을 영조에게 받쳤던 그 기억이 매병 속에 아주 사라진 게 아니라는, 너의 충심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다.


라마를 관통하는 완벽한 제목

끝으로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궁녀들의 끝동은 붉은색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궁녀였던 덕임 자체를 가리키면서도, 그녀가 궁녀로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바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는 제조상궁을 필두로 한 궁녀들의 사조직 ‘광안궁’이 이산과 대적하며 긴장감을 높인다.  덕임의 궁녀 친구들 복연, 영희 경희가 나와 궁녀들의 애환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드라마는 덕임을 비롯한 ‘궁녀들의 삶’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드라마를 관통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감성적인 제목으로 느껴진다. ‘궁녀’, ‘왕의 여인’, ‘성덕임’, 이랬으면 지금과 같은 감성은 아니지 않았을까.


대사와 제목 외에도 연출과 연기도 칭찬하려면 끝이 없다. 클리셰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보편적 재미를 느끼고, 클리셰를 깨는 장면에선 감탄을 자아낸다.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옷소매 붉은 끝동>의 용두용미 결말과 계속되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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