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승준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타국의 분쟁을 다루는 시간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항상 국가 간 치열한 분쟁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하루에만 몇 만 명이 목숨을 잃지만 대한민국도 파국을 향해 가는 현 정국에서 타국의 소식까지 팔로우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세계의 수많은 시사 정보를 알아가는 것이 나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인간 본성은 자꾸만 찌라시에 손이 가게 만든다.
세계에는 '아찔', '충격고백' 등의 타이들을 목에 건 저질 삼류 기사 따위보다 더욱 흥미롭고 자극적인 이슈들이 넘쳐난다. 특히 남미 정치는 말할 것도 없다. 마약과 인신매매를 합법화하자는 대통령부터 전 국민의 2%를 콩밥 먹이고 비트코인으로 대박을 친 대통령까지. 아메리카의 정세는 한 편의 막장드라마와도 같다. 그중에서 오늘 소개할 이슈는 이웃나라가 잭팟 터진 것이 너무 배가 아파서 무려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대기업을 상대로 맞다이를 신청한 상남자, 니콜라스 마두로의 이야기이다.
1) 과야나에세키바
과야나에세키바는 가이아나에 위치한 에세키보 강의 서부 지역의 통칭이며, 가이아나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곳은 스페인이 남아메리카 식민지를 세우던 때부터 베네수엘라의 영토로 복속되었으나 1814년 대영제국이 영란조약을 통해 네덜란드로부터 가이아나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과야나에세키바를 자국의 영토로 포함시켰으며 실효지배하였다. 1899년 중재재판소의 판결로 가이아나의 영토로 확정되었으며 이에 가이아나가 독립하고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이아나가 지배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과야나 지방을 다시 자국의 영토로 포함시키고자 UN에 제소하는 등 각종 노력을 지속하였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석유 산업으로 국가의 재정이 안정되고 GDP가 인당 4,800달러를 돌파하는 등 경제 대국의 위치에까지 오르자 과야나에세키바 문제는 여유로운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관심사에서 잠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한때는 베네수엘라의 구세주로 불렸던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2013년 사망하고 차기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차베스의 무사안일한 포퓰리즘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여 저유가의 폭격을 온몸으로 맞고 베네수엘라가 북한도 혀를 내두르는 막장 국가가 된 지금 이 시점,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는 찬란한 산유국의 영광스러운 시절을 되찾고자 과야나에세키바 지방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2) 갈등의 시작
베네수엘라가 과야나 지방에 혈안이 된 근원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미국의 엑슨모빌이 과야나 지방 앞 가이아나 영해에서 110억 달러 규모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2023년 가이아나 정부는 베네수엘라가 서방 제재에 허덕이는 동안 재빠르게 미국 기업들에게 대형 계약을 안기며 채굴권을 양도하였고 권리를 독점하였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 수입이 막혀 비상이 걸린 미국이 베네수엘라 상대로 원유 수입을 재개하게 되며 국가 재정에 숨이 트이게 된 베네수엘라는 가이아나에 비하면 압도적 군사력으로 밀어붙여 가이아나를 점령하고자 하였다.
3) 베네수엘라의 주장
상술한 대로 과야나 지방은 예로부터 베네수엘라의 영토였으나 15세기 네덜란드인들이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지역을 개발하면서 국제법상 네덜란드 영토로 복속되었다. 그 후 400년가량이 흘러 1814년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해당 지방을 양도받게 되는데 이때 영란조약에서 과야나에세키바의 서쪽 지역의 영토선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19세기에 베네수엘라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하였다. 1830년 스페인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이루어낸 베네수엘라는 국제재판소에 이 문제를 회부했으나 최종적으로 1899년 파리 중재에 따라 대영제국의 땅으로 확정되었다. 사실 상대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에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이기는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베네수엘라는 저 판결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재판관들이 모두 미국, 영국 등 식민지배국 출신이었기 때문에 공모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현재도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자국의 영토가 강탈당한 것이라고 배운다.
4) 막 나가는 베네수엘라
2023년 12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과야나에세키바 지방에 대해 가이아나와 권리 분쟁을 벌이는 것에 대한 국민투표를 예고하였는데, 가이아나 대통령 이르판 알리는 이에 맞서 베네수엘라의 일방적 국민투표를 저지하기 위해 국제재판소에 금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국민투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으며 95%의 압도적 지지율로 마두로 대통령은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베네수엘라가 요구하는 것은 과야나에세키바 지방의 2/3을 병합하는 것으로, 가이아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베네수엘라는 독단적으로 과야나에세키바 지방을 자국의 8번째 주로 편입했으며 이 사업을 위해 69조 원을 베팅한 미국의 액슨모빌에게 3개월 안에 나가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자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간주하고 가이아나 군대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5) 전망?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현재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어 기세등등한 상태인데, 현재 마두로 대통령이 경제제재 해소를 조건으로 미국과 약속한 정적의 석방 등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 사태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액슨모빌이나 셰브론 등의 미국 기업이 협박당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개입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
한 달 뒤인 7월 28일 베네수엘라 대선이 예정되어 있는데, 마두로가 패배할 것으로 예상될 시 그가 군대를 이끌고 가이아나를 수복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이 현재 러우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때문에 정신없는 상황에서 이것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전쟁에서 실패할 시 그대로 정권의 파멸로 직결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브라질도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가이아나 국경지대인 보아비스타에 병력을 배치했다는 소식이 있는데, 이는 브라질이 가이아나와 수리남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으로,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어떠한 스탠스를 취할지도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