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식 직썰 편집장 인터뷰 / 박다안
2020년 겨울의 한국 사회는 고3을 앞둔 학생의 입시만큼이나 정신없음을 보이고 있다. 양당의 매일 같은 썰전, ‘검찰대전’, 레거시 미디어의 이중 자아... 혼란하디 혼란한 시사 이슈를 정리하고,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럴 때마다 떠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직썰의 정주식 편집장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그는 언제나 침착한 시사평론을 통해 내 생각을 가다듬고, 성찰하게 만들었다. 정치인의 레토릭에 휘말리지 않고, 냉철하게 현상을 진단했다. 거대 양당의 마이크가 공론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작금의 시기에 더욱 귀중한 목소리였다.
정주식 편집장님을 직접 만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또 저널리스트로서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알아보고 싶었다.
2020년 와이파이의 마지막, 12월의 기사로 ‘직썰’의 정주식 편집장을 만나 ‘직썰’과 미디어, 현 시대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 세상을 바라보는 매력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부족한 인터뷰 실력이지만, 모쪼록 즐겁게 정 편집장님과의 대화를 엿봐주셨으면 한다.
2020년 12월 5일 토요일 구로디지털단지역 주변
인터뷰이: 정주식 (직썰 편집장)
인터뷰어: 박다안
박다안 (이하 ‘다’) :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주식 (이하 ‘주’) : 저는 정주식이라고 합니다. 직썰이라는 온라인 웹진 편집장을 맡고 있고, 이런저런 공적 글쓰기, 말하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제 이야기를 잘 못해요. (웃음)
다: 직썰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주: 직썰은 2014년 3월에 창간을 했습니다, 그 무렵에 유럽, 미국에서 ‘허핑턴포스트’, ‘버즈피드’ 같은 디지털, SNS 유통기반의 뉴미디어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모회사에서 한국에도 그런 식의 뉴미디어를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 제안을 받았어요. 그러고서 “좋다, 만들어보자” 했던 거죠. 또 그때가 박근혜 정권 때였잖아요. 한국의 언론 환경이 정권에 장악을 당하기도 했고, 주류 언론들이 제 목소리를 못 내던 열악한 시기였는데, 답답한 언론 환경을 뚫고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당시 언론들은 죄다 ‘엄근진’이었거든요. 항상 엄숙하고, 진지하고, 어른의 영역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에게도 사회 이슈는 중요한 문제이고, 관심을 가지는데 기성 언론이 젊은 층의 미디어 수요를 잘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젊은 감각으로 신랄하게 권력 비평을 할 수 있는 매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다: 당시 언론 환경을 이용해서 많은 뉴미디어가 탄생했던 시기였죠. 현재 직썰은 어떤 상황인가요?
주: 저희는 운 좋게도 시작하자마자 국내, 해외 매체에서 세월호 사건, 정부 비평 콘텐츠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기성 매체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분들이 많이 호응을 해주셨어요. 그때는 페이스북이 압도적인 주류 매체였던 시절이었는데, 지금이라면 불가능할 당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잘 활용하기도 했죠. 또, 저희 콘텐츠를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 진보매체에서 바로 공유를 해줬어요. 그래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때랑 언론 환경이 달라지기도 했고, 당시만큼 뉴미디어들이 성장할 수 있는 SNS 플랫폼이 없는 시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지속 가능한 매체를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좋은 매체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지속 가능한 매체’를 만드는 건 10배는 더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도 먹고 살 환경을 만들고 직원들 월급을 충분히 줘가며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는 걸 확인했죠. 지금은 올해 초에 제작 인력을 감축하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어요. 코로나가 끝날 즈음에 재창간에 준하는 변화를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방향을 두고 고민하는 상황이에요.
다: 결국 미디어도 비즈니스로 다루어져야 하고, 또 관리를 하셔야 하는데.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선의로만 미디어가 성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보니 한계, 어려움을 맛보셨다는 말인 거죠?
주: 네. 또, 관공서나 지자체에서 콘텐츠 제작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정기후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죠. 여러 수익구조가 있지만,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규모의 매체를 구성하는 데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죠. 조금만 타협하면 언론이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기사 어뷰징해서 수익을 얻는다던지, 광고를 받아내는 방법도 있고요. 여러 유혹들이 있는데, 바람직한 방법도 아니니까요. 사회에 공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유니크한 매체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아직도 고민이 완성되지 않은 단계죠.
다: 저도 이번에 나름 미디어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미디어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을 만났는데, 이 업계에서 정답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확실히 ‘이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어!’ 하는 길은 있지만 저널리즘의 윤리와 결합했을 때 확실한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는 것 같더라고요.
주: 사실 미디어를 운영하면서 ‘J커브’라 그러죠, 급격한 성장을 이루기는 불가능해요. 아마 하시는 분들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미디어를 해서 대박 나거나 벼락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시는 분들은 안 계실 거예요. 말씀 하신 것처럼 롤모델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고, 외로움이죠. 한국에서는 이미 너무 공고한 시장의 장벽 때문에 근 10년간 신규 매체가 성공한 사례가 한 건도 없어요. 그래서 미디어 스타트업을 하시는 분들은 대단한 분들이에요. 성공을 하든 못하든, 각자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이죠.
다: 그럼 여기까지 미디어/직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편집장님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어요. 최근 주목하거나 고민하는 사건, 이슈가 있으신가요?
주: 아무래도 ‘검찰개혁’ 혹은 ‘윤석열 찍어내기’라 불리는 갈등인데... 전반적으로 뉴스가 피로한 상황인 것 같아요.
다: 뉴스에 대한 피로감, 되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이번 총선 때 뉴스를 보면서 피로감을 처음으로 느꼈거든요. 정말 마음 가지 않는 소모적인 논쟁만이 가득하고, 그것들로 포털과 SNS에서 토론이 이어질 때, 정치혐오에 대한 마음이 처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거든요.
주: 제가 선거 때만 되면 의례적으로 투표 독려 게시물을 올려왔어요. 올해도 그런 것들을 제 SNS에 한 번 올렸는데, 평소에는 정치적 성향이 어떻게 되든 간에 투표 독려 게시물에 대해서는 대부분 우호적인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불쾌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어요. “찍을 사람이 없는데 어떡하라는 거냐.” 하는 항의죠. 그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신 분들이 가장 많았던 선거가 이번 총선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정당 투표만 하고, 지역구 선거에서 기권했거든요. 정치에 대한 불신이나 혐오가 팽배하는 상황인 것 같아요. 그럴수록 정치혐오가 위험하죠. 양비적인 정치 상황 아래서도 더 들여다보려는 변별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역할을 언론이 해주어야 하는 거죠. 대중은 삶이 바쁘고, 피곤하기 때문에 단순한 뉴스가 아니면 몰입해서 소화하기 쉽지 않아요.
다: 자신의 사고관이 미디어에 너무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아닐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잖아요. 언론이 혼란스러운 대중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뉴스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자기 가치관으로 형성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아요.
주: 나의 주체적 생각인지, 아니면 생각이 주변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또 그게 옳은 것인지 혼란이 있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가지면 세상은 굉장히 좋아질 거예요. 문제는 그런 의문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죠. 항상 반성은 반성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하거든요. 의심을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예요. 누가 봐도 주변의 스피커에 영향을 받는 게 분명하게 보이는데, 본인은 그런 의심을 못하고 주체적인 생각이라고 사고하는 게 문제인 거죠.
다: 그래서 모든 시민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고요.
주: 네.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 리터러시가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게 비교적 최근의 일이에요. 언론도, 정치도 부족화 되고, 양극화된 정파적 목소리가 주를 이루면서 내가 어떤 목소리를 수용하는 게 옳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거죠. 그런데 언론이 시민들의 미디어 수용 능력을 기르게 하는 건 어려워요. 편집장을 하면서 보니, 이미 어른이 된 상태에서 미디어 수용 능력을 기르는 건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언론인들도 스킬은 늘릴 수 있겠지만, 성인이 된 이후 기본적인 독해 능력, 작문 능력을 늘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저는 그래서 사실 고등학교에 언론 동아리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시작되면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봐요.
다: 하하..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곤 하죠. 저는 사실 교육 수준에 따라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이 높아질 거라는 관념이 있었는데, 요즘 보면 한 가지에 꽂히면 아무리 내가 그동안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글을 읽었던 사람이더라도...
주: 바보가 되죠? 공부를 하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고, 정치적 정념에 사로잡히는 것은 이성과 전혀 다른 반대쪽 뇌가 활성화 되어서 그래요. 이건 파토스의 영역,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활성화되기 시작하면 반대의 이성이 개입을 못하는 거죠. 감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필터 버블이 껴서 그래요. 지식의 문제라기보다는 태도의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아요.
다: 맞아요. 그래서 요즘 저는 포털 뉴스를 끊고, 구글 자동 알림이나 SNS를 통해서만 뉴스를 보고 있어요. 포털 뉴스를 보다보니 제 입장을 대변해줄만한 자극적 의견만을 찾게 되더라고요. 사실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이긴 하죠. 인터뷰 요청서에 이런 현상을 ‘정치적 노마드’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내 입장을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한 언론인도 필요하겠죠. 그런 점에서 최근 검찰 이슈에 대한 편집장님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주: 검찰 이슈에서, 제가 신뢰하는 사람들은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어요. 정부의 무리수고, 아무리 좋은 개혁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신뢰받지 못하면 지지를 받지 못하거든요. 사찰문건, 특활비, 윤석열 개인의 이런저런 문제를 둘러싼 시비 자체는 액면 상의 이유고,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은 그게 감정이거든요. 조국이나, 정권의 반대자들에 대한 숙청 작업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지지자들의 감정을 정치의 당위로 삼고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죠.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국정과제를 수행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그러면 대통령이 정무적 판단으로 잘라낼 수 있어요. 자르고서 평가를 받으면 되는데, 그럴 용기가 없으니 빌미를 찾다가 지금 같은 무리수를 두게 되는 거죠. 오히려 안 겪어도 될 반대여론에 마주하게 된 거예요. 정권이 좀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 근본적 원인인 것 같아요. 20~30%의 열혈 지지층들이야 어떤 빌미에도 수용하겠지만, 일반 대중이 보기에는 정부의 명분이 부실하다고 느껴지죠. 그게 이제 최근의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다: 정부나 여당, 지지자들의 특성이 이전 정권과 닮아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치적 무리수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덮어놓고 옹호하게 된다’는 건데요. 편집장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주: 지지자들은 상수라고 보고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열혈 지지자들이 있는데, 문제는 정치권력이 열혈 지지자들과 적절한 거리두기에 실패했을 때예요. 박근혜 정부의 실패 역시 비슷했죠. 정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에 기대서 무리하게 국정 운영을 하다가 파탄을 맞았죠. 이번 정권 초반에는 지지자들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보였어요. 그런데 조국 사태에서 국민적 반발을 넘어서기 위한 지렛대로 열혈 지지자들의 열망을 이용한 거죠. 그 이후로는 열혈 지지층이나 민주당이나 청와대에서 나온 메시지가 차이가 없어요. 지금이라도 지지자들과 적절한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면 저는 비슷한 말로를 맞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다: 박근혜 게이트 당시 집회에 나갈 때는 굉장한 희열을 느꼈고, 연대의 감정을 느꼈지만, 박근혜라는 거대 악에 묻혀 안 보였던 잘못된 습관들이 정치적인 이슈에만 휩쓸려서 교정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드네요.
주: 다안님은 관성을 짧게 경험하셨잖아요. 직전 정권에 대한 기억을 통해, ‘관성에서 못 벗어났다’는 의심을 하신 건데, 그 관성이 20년, 30년 된 사람들은 벗어나기가 정말 힘든 거죠. 단순히 국정농단에 분노했던 것만 아니라, 2000년대 초반부터 조중동이나 이명박근혜 시절의 말도 안 되는 전행에 적개심을 키워왔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바뀔 수는 없겠죠. 심지어 70~80년대부터 독재정권에 맞서 평생 싸워온 사람들은, 거악에 맞서 싸워왔던 관성이 “어, 문재인 정권이 비슷하게 닮아가고 있는 것 같으니까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겠네.” 하고 돌아서기 쉽지 않은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성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관성을 뛰어넘은 사람들이 사실은 대단한 거죠.
다: 그런 점에서 세대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방금 하신 얘기에서,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는데, 진중권씨가 떠올랐어요. 진중권씨가 정말 정치적 신념, 비판의식이 확고하신 분인지, 아님 현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 의식에 사로잡힌 분인 건지 평가가 갈리잖아요. 편집장님은 진중권씨를 관성을 이겨낸 인물로 보시나요?
주: 조국 사태를 겪으며 사람이 단편적이지 않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어요. 조국 사태 이후 멀쩡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이 안 멀쩡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진중권은 굉장히 복잡한 케이스인데, 그가 진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부조리를 개선해서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악의로 가득차서 자신을 공격했던 문재인 정부를 복수를 하겠다는 사심인 건지. 저는 중간 어디쯤에 있다고 봐요. 진중권이 10마디 하면 8-9마디는 새겨들을 만한 지점이 있는데, 평소의 진중권이면 하지 않을 무리수를 두거나 확인 되지 않은 정보로 단정지어서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어요. ‘논객 진중권’ 시절에는 나오지 않았던 실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어쩌다가 이 공론장에 큰 스피커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왜 자꾸 언론 지면에 올라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말이죠. 진중권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고, 현상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 박근혜 탄핵 이슈가 뜨거울 때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나중에 태극기집회에 나간 사람이 탄핵 반대 진영의 유튜브에서 자주 이용되었는데, 그런 식으로 ‘전향자에 대한 환영’이 아닐까 싶어요, 그만한 인지도나 화제성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요.
주: 물론 보수에서 환영도 하고, 이용도 하죠. 진중권도 화답을 해요. 그런데 저는 진중권이 이용하고 있다고 봐요. 초반에는 보수 진영의 러브콜을 “야, 난 아무리 그래도 니들하고 같지 않아. 까도 내가 깔 거야”라는 식으로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행사 참석도 하고, 보수 언론 지면에 글을 쓰죠. “그래, 니들이 옳다는 게 아니라 니들이 개혁해야 돼, 니들이 개혁할 마음이 있다면 내가 도와주겠어.” 라는 스탠스로 접근을 하는데, 저는 진심이 아니라고 봐요. 진중권이 진정 보수 개혁을 바라고 있다? 진중권에게도 관성이 있거든요. 20년 넘게 진보 논객으로, 진보정당의 스피커로서 진심을 가지고 활동해온 사람인데 갑자기 조국 사태를 맞고서 “아, 그러면 답은 보수 개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종의 이용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 그렇군요. 이번엔 평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평론을 하다보면 개인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 느끼는 부담이나 걱정이 있으실 것 같아요.
주: 그런 건 없어요. 그런 걸 걱정해야 되는 사회가 잘못된 거죠. 개인적으로는 메시지를 보내서 의견을 먼저 말하고, 그 이후에도 바뀌지 않거나 좋은 리액션이 오지 않으면 공적으로 비판하는 거죠. 조국 장관도 사실 그랬죠. 장관이 되기 전에 저희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같이 밥도 먹었거든요. 당시 굉장히 감명 받았어요. 바르고, 올곧고, 지성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었는데, 이런 찌질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죠.
다: 저는 피상적으로 보고 있지만, 여기 판에 오래 있으면 개인적인 상처가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알거나 관계가 있는 사람들조차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니까.
주: 그래서 사람의 이면을 안 보려고 해요.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이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면 객관적 비평에 실패하는 거죠. 누가 되었든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 실제로 하는 행동만 보고 판단하는 게 맞다고 봐요.
다: 그래도 이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어요. 칭찬을 할 수 없는 ,좋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힘든 게 포지션이 아닐까 싶은 거죠. 또 그렇다보면 피로도가 있으실 것 같아요.
주: 저와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도 사적으로는 대부분 친하게 잘 지내요. 그들과 진지하게 토론하지는 않죠. 만약에 정치 때문에 틀어질 관계면 그건 애초에 건강한 관계가 아니라고 봐요. 언제 틀어져도 틀어질 관계인 거죠. 또, 내가 아는 사람이라 비평을 할 수 없다? 그 순간 비평가로서의 가치가 상실되죠. 인간적 관계 때문에 할 말을 못하면 공적 말하기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관계 때문에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특히 권력 중심부로 나아갈수록, 아니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기대가 큰 사람일수록 조심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럴수록 비평의 순도는 떨어지게 되겠죠. 경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 그러면 누군가를 의식하다보니 아쉬웠던 비평을 한 경험도 있으신가요?
주: 저는 아쉬웠던 경우가 없는데, 제 비판 대상이 된 사람들은 저한테 서운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게 의식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개인적인 미안함을 느낄 수 있겠죠. 미안함과 비평의 영역은 별개니까. 그걸 잘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다: 여러 정보를 접하게 되고,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보다 보니 비평가는 항상 맞는 말만 할 수 없는 포지션이기도 하잖아요.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떤 태도를 취하시나요?
주: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자기 말을 잘 못 주워 담아요. 그래서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진중권 같은 사람이 되게 좋은 반면교사죠. 대부분 맞는 말을 하지만 틀릴 수도 있구나. 그런 사람들을 교훈으로 삼아요. 저도 물론 많이 틀렸을 거고, 나름 성찰하며 주워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누군가 보기엔 충분하지 못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두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자기 시야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옳고 그름을 다 못 가릴 수 있잖아요. 그럴 때 비판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얼마나 많이 두고 있는지가 중요한 자산인 것 같아요.
다: 그러기엔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이 나쁜 소리보다는 좋은 소리가 많이 갖춰지게 되는 시스템이지 않을까요?
주: 그렇죠. 그래도 제 페이스북에는 비판적 수용이 가능한 사람, 또 신뢰할만한 사람...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있다고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항상 의식하고 경계해야겠죠.
다: 뉴스를 읽을 때 보통 내가 경험한 바, 아니면 옳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신뢰하거나, 비판하게 되잖아요. 정보를 받아들일 때 사용하게 되는 나름의 원칙이 있으신가요?
주: 제가 신뢰할 만한 의견 그룹들이 있잖아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을 때는 그 사람들의 말을 적극적으로 들어요. 그래야 제 생각에서 틀린 부분이 깎이고 다듬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전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의 의견을 일부러 멀리하죠. 사실을 먼저 접하고, 그 다음에 의견이 만들어지는데, 의견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건 제가 갖고 있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얘기잖아요. 그럴 때는 의견보다는 정보를 먼저 들으려고 노력을 하죠. 백지상태일 때는 무슨 말을 해도 그럴싸하게 들리거든요. 굉장히 위험한 일이고, 조심해야 해요. 백지상태라면 정보를 먼저 취합을 해야겠죠.
다: 되게 중요한 원칙인 것 같아요. 언론인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죠.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사실을 접할 때 거기에 알맞은 나름의 원칙이 있어야겠네요.
다: 사회 평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현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면은 선천적이거나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혹시 삶에서 그런 계기나 경험이 있으셨나요?
주: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기질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체제에 순응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그냥 타고난 유전자 같아요. 그래서인지 학창시절을 굉장히 힘들게 보냈어요. 학교의 억압적인 분위기가 부당하다고 느꼈죠. 그때는 부당함에 대해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없었죠. 주변 어른들은 모두 “너는 문제아야, 왜 너는 삐딱해?” 그랬어요. 또, 학교에 가면 별 불만도 없이 선생님,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친구들을 보면서 견디는 게 더 힘들었어요. 다른 애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나만 쓰레기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 때, 서태지의 노래가 위로가 많이 되었어요. 최고의 스타가 ‘네가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그렇게 틀린 건 아니라는 위로를 얻었어요.
다: 저는 서태지 씨가 활동할 때 없었으니까 ‘서태지서태지’ 하는 걸 공감하지 못하는데, 그게 실제 삶에 영향을 주셨던 거군요.
주: 제가 어렴풋하게 갖고 있던, ‘반항심’이라 불렀던 감정에 이유를 찾게 된 거죠. 아, 이게 틀린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던 거죠.
다: 대중음악이 이런 순기능을 가지고 있네요. 혹시 집안이 진보적 의식을 가지거나 그러지는 않으신 건가요..?
주: 저희는 평범한 집안이었고, 그래서 부모님도 제가 갖고 있었던 반항심, 답답함을 이해를 못 하셨죠. 그때는 대안학교 이런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 시절에는 순응을 못하는 학생들은 견디거나, 아니면 탈출해서 비행청소년이 되거나.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저는 어찌어찌 졸업을 할 수 있었죠. 저는 학창시절이 참 아찔했던 기억이에요.
다: 이후에는 대학을 가셨던 건가요?
주: 대학을 가서, 대학에서 다행히 좋은 교수님을 만나서 사회 문제에 대한 제 시각을 갖게 되었죠. 그것도 군대를 다녀와서 일이에요.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본 모습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페이스북에도 쓴 것처럼 굉장히 놀라웠던 거죠. 제가 생각하는 10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데, (웃음) 놀라웠어요.
다: 부끄러웠습니다.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너무 기대를 가지신 게 아닌가 싶어서, 실망하시겠다 싶었죠. 교육 이야기하셨는데, 제 주변 친구들과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면, 항상 원인은 교육 문제로 귀결되거든요. 그런데, 경험한 게 교육문제 밖에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성인들 중에는 사회 문제에서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유독 적어요. 그러니까, 학생 집단에서는 유독 많고, 어른 집단에선 유독 적다는 거죠. 아까 말씀하신대로 답은 어디 중간에 있을 것 같은데요. 학생집단은 경험이 부족하니까 넘어가더라도, 언론이나 사회에서 교육에 대한 문제가 좀 더 많이 다뤄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주: 그건 오히려 다안님이 겪은 경험이 특수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저는 효능감이라고 이해하는데,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통해서 바뀐 걸 확인을 하신 거죠.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도 학교에서 이런 교육을 일찍 받으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거고요. 그런데 저같이 공교육을 나온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요.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각박해요. 근원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아요. 근원적인, 실리적인 고민을 하지 않고, 순수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일생에서 유일한 시기가 학창시절이라고 생각해요.
다: 그런 점에서 저는 학생 신분을 벗어나는 게 두렵기도 해요. ‘이우’ 학생 타이틀이 없었다면 지금 인터뷰 같은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해보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 거죠. 그러면서도 대안학교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너무 동떨어진 세상에, 세상의 일반적 가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기도 하죠.
주: 제가 아는 젊은 기자들 중 대안학교 출신이 몇 명이 있으신데, 비슷한 고민들을 사회에서도 하세요. 언론인들 중에도 진보적인 대안학교 나온 분들은 다들 굉장히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되셨어요. 세속적인 가치보다는 본인이 오래 품어왔던 공공선에 기여하겠다는 열망을 더 크게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다: 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세상과 소통하기가 오히려 어렵기도 하더라고요. 일상에서 정치/사회 얘기를 하는 건 쉽지 않은데, 관심이 그쪽으로 편중되어 있어 사람들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얘기가 많지 않은 거죠.
주: 저는 가족이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시사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물어봐도 저는 일부러 피하는 편이죠. 공적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나와 생활인으로서 나는 다를 수 있는 거니까요. 정치나 사회문제 같은 게 취미는 아니잖아요.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에요. 내 취향이 [연예인, 음악, 영화, 정치] 중에 정치를 고른 게 아니니까요. 정치 등 공적인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떤 시민이나 다 갖고 있어야 할, 많이 갖고 있을수록 좋은 소양인 거지, 마치 취향의 영역으로 이해하면 그런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다: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군요.
주: 우리가 대화를 하다가, 누가 돈 버는 데 관심이 많다고 해서 ‘경제병’ 걸렸다고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정치·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야, 쟤는 정치병 걸렸어, 정치덕후야” 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죠. 소양이 없는 사람들이 타자화 시키기 위해서 만든 표현인 거죠. 그런데 별개로, 내가 너무 무거운 이슈에 피로감을 느끼고 과몰입했다는 생각은 들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다른 쪽의 뇌를 써야죠.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읽거나 하면 그 자체로도 환기가 되거든요. 과몰입은 개인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까요.
다: 네. 그럼 마지막으로, 사회나 미디어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주: ‘어른을 너무 믿지 마라.’ 젊은 사람들은 공부 많이 하고, 오래 살고, 큰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 글은 믿고 본다, 저 사람 말은 신뢰한다.” 하는 이상향 같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게 없을수록 더 건강한 자아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훌륭한 사람들을 선망하는 건 좋으나 객관적 거리를 두고, 너무 맹신하지 마라. 어른들을 너무 믿는 건 좋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