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철학카페]
그는, 기회가 올 때마다 마치 내 남자 친구라도 되는 양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사람이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였고,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 풍자 작가, 연구자 등 다양한 타이틀로 불릴 만한 업적을 남겼다. 98년의 생애 동안 다양한 분야의 100권이 넘는 저서를 썼으니 책만 쓰기도 바빴을 것 같지만 여성 참정권, 전쟁반대, 평화를 위한 인도주의적 정치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네 번의 결혼을 했고, 수차례의 연애를 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나쁘게 바라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가 쓴 결혼과 도덕에 관한 10가지 철학적 성찰 등을 읽으며 그야말로 진정한 사랑꾼이라 생각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표현된 그의 말 중 하나는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가 아닐까? 내가 이해한 그는 정말이지 사람을 목적으로 보고 애정으로 위하는 멋진 사람이다.
1935년에 발간된 이 책은 80년의 세월이 무상하게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향하는 미래상으로 다가온다. "영국"과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의 차이가 그 시간의 차이를 줄이는데 한몫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유럽을 생각해 보더라도 이 세상이 기계의 시대에서 컴퓨터의 시대로 변화하면서 초고속으로 향상된 정보 접근성과 삶의 편의를 고려하면 도대체 왜 그가 말하는 모두의 저노동, 고여가 시대는 아직도 보편화되지 않았는지 씁쓸하기만 하다.
굳이 그의 책에서 그 씁쓸함의 원인을 찾아보자면
우리 세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두 가지는 <사회주의>와 <평화>이지만 우리 시대 가장 힘 있는 사람들의 이익에 정면 대치되는 것도 바로 이 두 가지이다.
라는 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한 주간 진행한 철학카페 [일] 편과 팟캐스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게으름에 대한 찬양] 편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현대인의 일에 대한 인지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줄어든 생산 총시간 및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 세대에 비해 많이 변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사고 깊숙이 깔려있는 노동을 미덕으로 인지하는 자세와 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습관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가를 따져보니 우리의 삶이 참으로 쓸데없이 무겁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그 긴 이야기들을 모두 풀어놓을 수는 없겠지만 나누었던 질문과 나누고 싶던 책의 부분을 공유하고 싶어 글을 시작하였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주변의 친구와 한 번쯤은 진지하게 일과 여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눠볼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말이다.
1. 러셀은 말한다.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것이다.” 당신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약, 동의한다면 일을 줄이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책 속 공유하고 싶은 한 단락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없다. - 게으름에 대한 찬양 中
2. 이 시대의 국가가 자동화에 따른 기업의 일자리 감소, 국민의 삶의 만족도 유지 혹은 증진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적 지원은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책 속 공유하고 싶은 한 단락
나는 사회주의를 일차적으로 기계 생산 체제에 대한 적응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식 수준에서 요구되는 적응책이며 무산 계급의 행복뿐 아니라 미미한 소수를 제외한 모든 인류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데 적합한 적응책이다. ... 중략... 먼저 사회주의의 정의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이 정의는 경제와 정치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경제면으로 볼 때 적어도 토지와 광물, 자본, 은행, 신용, 무역을 포함한 기본 경제권을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 정치면에서는 기본 정치권력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 中
3. 일이나 성과, 사회적 유용성 말고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당신의 삶을 진정 풍요롭게 만드는 것(활동)은 무엇이며, 그것은 당신의 일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책 속 공유하고 싶은 한 단락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현재의 즐거움 이외엔 아무 목적도 없는 행위에 빠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놀이가 제 구실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일과 관계없는 부분에서도 기쁨과 흥미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점점 더 수동적이고 집단적인 여흥, 즉 다른 사람들의 능란한 활동을 피동적으로 구경하는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 중략.... 여가를 가진 인구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교육받은 인구이며, 또한 그 교육은 직접적 유용성을 가진 과학/기술적 지식뿐 아니라 정신적 기쁨도 목표했음이 틀림없다. -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中
당신은 왜 일을 하나요?
당신은 무슨(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일 [Work]과 직업 [Job], 그리고 경력 [Career]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나요?
만약 지금 가진 직업으로 돈을 벌 수 없다면 혹은 돈을 벌 필요가 없다면 그래도 그 직업을 계속 유지하겠습니까?
월 100만 원의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주워진다면 당신은 추가로 일을 하겠습니까? 만약 한다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당신의 1시간 노동은 얼마의 금전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합니까? (현재 급여를 시급으로 계산한다면 그만큼 받고 있는지요?)
당신은 한 달의 생활을 위해 얼마의 생활비를 필요로 합니까? (수입과 생활비 사이에 얼마의 차액이 있으며 그 돈은 어떻게 쓰이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일하는 시간과 그 외 시간의 균형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하루 업무 시간은?
혹시 업무 외 시간에 하는 다른 일이 있습니까? 그 일이 업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일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일은 우리의 삶에 많은 시간과 부분을 차지한다. 일부는 사람을 그 사람이 하는 일 자체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게 무서우리만큼 중요한 부분인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일과 삶에 대한 이슈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어쩔 수 없음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음을 느낀다. 왜 자신은 일을 하는지, 왜 약속한 근무시간을 넘겨 야근을 해야만 하는지, 왜 일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효율과 불합리가 반복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요즘 워라밸, 시발 비용, N잡러 등 일에 대한 새로운 용어들이 귀에 들린다. 아마도 누군가는 일을 마주 보고 문제를 인지해 변화를 위한 작은 도전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은 누군가가 할 일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도전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오래간만에 이 책을 다시 읽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부 좀 한 서민이라면 사회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멍청하거나 음흉한 게 아닐까라고. 러셀의 말처럼 우리는 긴 세월동안 쭉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없다.
* 철학카페는 수시로 진행되는 토론 모임입니다. 참여에 관심 있으신 분은 페이스북 페이지 철학카페 에서 일정을 확인하신 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은 다양한 책과 영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관련 대화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아이튠즈 팟캐스트, 팟빵, 파티에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 검색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