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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Apr 20. 2022

TO BE 는 몰라도 TO DO 를 알면 되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든 뒤돌아 봤을 때 후회 없는 삶을 꿈꾸며... Li.ED

스스로를 소박한 철학자의 삶을 꿈꾸는 방랑 여행자라고 소개하며 산지 곧 10년이다. 새삼 뒤돌아보니 정치인이 되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기업을 일으켜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겠다는 것, 훌륭한 스승이 되어 나라의 미래가 될 인재를 양성해 보겠다는 등의 야무지고 원대한 꿈이 아닌 그저 나 하나 챙기며 기왕이면 세상에 무해하게, 내 한 몸은 건강하게 두루 다니며 배우고 성장하다 좋은 것을 알게 되면 주변에 조금씩 나누며 살겠다는 이 소박한 꿈을 왜 아직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내 본질 혹은 성질과 어긋난 꿈을 세운 것일까? 아니면 아직 한 자락 다른 욕망이나 미련이 남아 있는가? 그도 아니면 좋을 것 없이 들어 버린 나쁜 습들 사이에서 그저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나? 일 탐구를 하고 있자니 스스로 일잘러라 생각해왔던 내가 실은 일을 그저 요청받아 "할 뿐" 종종 "왜 하는지"를 잊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꿈에 이르지 못하고 방황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란 의구심이 들었다.


일을 잘하면 뭐하나? 왜 하는지도 모르는데?

일을 안 해도 먹고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먹고살겠다고 일하는 것도 아니오,  일찌감치 어릴 적부터 알바로 돈을 번 가장 큰 이유는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떠나고자 그리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일을 썩 잘하게 되고, 많이 하게 되고, 습관이 되어 어느덧 일이 내가 된 듯하다. 그게 싫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썩 달갑지 않다는 것이다. 기똥차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다른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를 쓰고 일에서 벗어나는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사는 fire족이 되고 싶은 것도, 일에서 성취감을 찾으며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닌 나는 묘하게 어느 순간 이번 일 탐구가 좀 껄끄럽게 느껴졌다. 크루들에게 전처럼 목표를 구체화하기 위해 비전을 세워보자 했는데, 이상하게 "삶 탐구"와 "창의성 탐구"처럼 쉬이 맥락 있는 미래가 그려지질 않아서였다. 한참을 표를 보고 있다가 알게 되었다. 삶 탐구나 창의성 탐구에서는 내가 모든 기본 키워드를 "TO DO/행동형"으로 썼었는데, 일 탐구에서는 과거/현재가 "TO DO"가 아닌 "TO BE"형으로 쓰여있었다. 알바를 했다가 아닌 아르바이트생, 창업을 했다가 아닌 대표, 그리고 이런저런 다양한 업무, 직무,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은 포트폴리오 워커라고 상태를 표기해 놓았으니,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은 있어도 뭐가 될진 모르겠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게다. 나는 일과 관련해서는 아직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만 있지 되고 싶은 게 없다. 그래도 뭐라도 꾸역꾸역 써보자 하니 말이 늘어지고 두서가 없어졌다. 이래저래 말 만들기를 해보다 포기했다. 어찌 갑자기 되고 싶은 게 생기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이쁜 맥락을 포기하고 그냥 멋대로 써 버렸다. 지금 내 수준, 나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사실 나는 기본이 여행자라 뭐가 되는 것보다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무슨 말?)

제멋대로 만든 커리어 저니 맵


좋아하는 소설을 한 구절을 인용해 무엇이 되는 게 그리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닐 거란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_ 연금술사 중, 멜기세덱 왈


나는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며 즐기고 있고,  숟가락에  기름  방울을 식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려 훗날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할지는 알고 있으며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저 아직 다다르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은 이거면 되었다. 이리 방랑하다  하나의 관문에 이르러 열쇠 없이도 문을 여는 법을 배웠으니 기쁘다. 언젠가 어디에  닿아서가 아니라 원하는 곳을 향해 걷고 있어  기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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